내가 만든 억울함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다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을 읽었다. 논리를 풀어내는 방식이 조금 길고 에둘러 가는 느낌이라,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꼬아서 설명해야 할까 싶은 생각에 잠시 몰입이 흩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마음에 돌덩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결국 그 복잡한 말들이 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였다. 내가 타인을 비난하고, 상황을 원망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순간, 나는 내 발로 '상자' 속에 걸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그 상자 안에서는 오직 나의 고통만이 우주의 중심이고, 타인은 그저 내 고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책장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쌓아 올린 견고한 상자의 벽들이 보였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세상이 나를 배신했는데"라며 쌓아 올린 그 원망의 벽들이 결국 나를 가장 깊은 어둠 속에 가두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설정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내가 피해자가 되면, 지금의 실패와 고통에 대한 면죄부를 얻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배반'이라 부르지만, 나에게는 '가장 달콤한 도피'였다. 상자 속에서는 내 잘못을 볼 필요가 없다. 밖에서 나를 찌르는 화살들만 탓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자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이다. 상자 속에서 나는 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내 문제를 해결해줘야 할 도구이거나, 내 앞길을 막는 걸림돌로만 본다. 빚더미에 앉아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때, 나는 얼마나 많은 상자를 지어 올렸던가. 나를 돕지 않는 지인들을 원망하고, 야속한 세상을 탓하며 상자의 두께를 키웠다. 그 안에서 나는 안전한 듯 보였지만, 실상은 숨이 막혀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상자의 문은 더 굳게 닫혔다.
책은 상자 밖으로 나가는 거창한 비결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상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상대를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바로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요즘 내가 말을 아끼고 들으려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말을 쏟아낼 때는 내 상자를 타인에게 씌우려 안달하지만, 입을 닫고 듣기 시작하면 비로소 상대방의 상처와 진심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사람도 힘들겠구나", "저 사람도 나처럼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지"라는 지극히 평범한 깨달음. 그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순간, 상자의 벽은 허물어진다. 상자 밖의 공기는 차갑지만, 적어도 숨을 쉴 수 있다. 억지로 상황을 주도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기로 한 선택은, 결국 내가 만든 상자에서 걸어 나오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구'로 써왔는지 보인다. 내 자존심을 세워줄 도구, 내 성공을 증명할 도구, 혹은 내 실패를 탓할 도구들. 하지만 상자 밖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나와 함께 이 거친 물결 위를 떠가는 동료 여행자들일뿐이다.
"인간은 타자의 눈을 통해서만 자신을 발견한다"는 말처럼, 내가 상자를 부수고 나갔을 때 마주한 타인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누군가의 아픔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간다운 나 말이다. 이것이 내가 바닥에서 건져 올린 가장 소중한 수확이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은 끊임없이 상자를 짓고, 다시 그 상자를 부수는 과정의 반복일지도 모른다고. 인간인 이상 우리는 또다시 억울함의 상자, 원망의 상자를 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상자 안의 안락함은 가짜라는 것을.
나는 이제 상자가 없는 강물로 나아간다. 벽이 없으니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만큼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말을 줄이고, 고통을 가불 하지 않으며, 그저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나는 상자 밖의 삶을 배운다.
"내가 만든 감옥의 열쇠는, 언제나 내 손바닥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