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그림자

매 순간을 마지막 처럼

by 나는

사랑이 깊을 수록 걱정도 진해진다. 사랑하는 만큼 마음이 쓰이고 사랑하는 대상이 행여나 잘못될 세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이나 하고 나서 후회했던 일들을 사랑하는 이는 굳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어보지도 않은 조언을 하게 되고 예상 가능한 가장 불운한 상황을 가정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그것이 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뿐, 사랑을 받는 이에게 구속이나 잔소리로 여겨질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


멀리 사는 탓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는 전화로만 간간이 소식을 전한다. 나는 부모님의 불필요한 걱정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없는 내용들을 고르고 골라 계획중인 가족여행이나 아이의 새로운 취미 같은 소소한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의 대답에는 여전히 사랑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여행은 안전히 다녀올 수 있을지, 여행지에서의 치안은 믿을 만한지, 아이의 취미가 자세나 시력에 나쁘지는 않을지와 같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걱정을 전하신다.


보편적인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리 걸리지 않았다. 나 역시 아이의 학교생활과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와 공감을 넘어 각종 시나리오에 따른 주의를 주었고, 그 때 아이의 얼굴에 스치는 불편한 표정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제가 알아서 할께요"라고 볼멘 소리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이 사람과 함께 하는 마지막 순간이라면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을까. 어떻게 기억하고 싶을까. 마지막이 아니라는 생각에 먼 미래를 가정하며 계획하고 평가하고 조언하는 대신,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지을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공감해 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 순간들을 쌓아나가다 보면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는 조금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의 대화가 종종 불편하게 흘렀던 이유는 내가 상대를 잘 알고 있다는 자만심 때문이 아닐까. 상대가 뭘 원하고, 뭘 할 수 있고, 무엇이 상대에게 가장 바람직한지를 내가 다 안다고 믿으며, 나에게만 통하는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정작 나 스스로도 하고 싶던 것일지라도 누군가가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었던 청개구리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해결책도 나에게 있다고 믿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 차오를 때 아, 이게 내 욕심이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내 잣대로 평가하기에 앞서 그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 원인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려 노력하는 것,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미루어 짐작해 주는 여유가 사랑하는 이를 더욱 자유롭게 하리라 믿는다. 그 무한한 자유와 믿음 속에서 사랑하는 이는 스스로 선택하고 그 속에서 배우며 책임을 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것이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사랑의 그림자에서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는 2025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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