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학교 다문화 행사에 처음 선보인 한국 테이블
"엄마, 우리 학교에 한국 학생은 있는데 신기하게도 한국 테이블은 본 적이 없어요 (Interestingly, I have never seen a Korean table even though there are a few Korean students per class)."
매년 학부모회에서 주관하는 다문화 행사(Multicultural Day)를 다녀 온 아이가 무심히 건넨 말에 나는 살짝 부끄러워졌다. 자원봉사로 참여한 부모들이 모국의 문화와 특징을 소개하는 테이블을 꾸며 전교 학생을 대상으로 전시하는데, 학교에서 한국 친구는 여럿 만났지만 정작 한국 테이블은 본 적이 없다는 아이의 말이 자원봉사와 학교행사에 무심했던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듯 해서였다. 그런 마음도 잠깐, 곧이어 나만 참여 안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곧 중학교도 졸업인데 뭘.. 하는 안이한 생각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부모회에서 다문화 행사에 참여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전체 이메일을 보내 왔지만 나는 차일피일 답장을 미루며 기한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아이 친구의 엄마이자 학부모회에 참여하는 중국계 미국인 엄마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한국 테이블이 있다면 돕고 싶다는 신청자가 한 명 나왔는데 혹시 그 분과 함께 한국 테이블을 신설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나보다 좀 더 용기를 내어 나서 준 이름모를 그 분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아이 학교에도 한국 테이블이 자리잡을 수 있을 좋은 계기라는 생각에 나는 흔쾌히 오케이를 했고, 그렇게 한 주 동안 나의 한국문화 알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막상 일을 벌이고 보니 의외로 신이 났다. 마치 학생때로 돌아간 것처럼 나는 발표에 쓸 삼단 보드를 사서 그 안을 채울 내용을 구상하고, 외국 아이들이 한국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을 고르고 골라 슬라이드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사진과 문구를 디자인하고, 아이들의 호감을 살 만한 간식과 놀잇감을 선정하기 위해 구글 검색과 시장조사를 진행했다. 겉으로는 처음 준비하는 행사라 부담된다 힘들다라고 되뇌었지만 가족들은 내 얼굴에 돌기 시작한 생기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걸 대변하는 거라 행복한 거예요 (You are happy because you represent something you feel proud of)."
아이는 나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흥겨움의 근원을 간파해 주었고, 그러면서 보드에 쓰인 어색한 영어 문구와 오자를 바로잡아 주며 적극적으로 한국 테이블의 탄생 준비를 돕기 시작했다. 나보다 훨씬 손끝이 야무진 남편도 보드에 부착될 슬라이드의 더 나은 배치를 함께 고민해 주고 각을 맞춰 제대로 붙여주며 마지막까지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길어진 이민 생활에 희미해져만 가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빛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2025년 캘리포니아의 한 중학교 다문화 행사에 한국 테이블이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두 명으로 시작된 한국인 자원봉사자는 알음알음으로 연결되어 총 5명으로 늘어났고, 330명의 학생과 십여 명의 선생님들에게 한국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위치, 수도, 인구, 언어, 음식)와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의 문화 컨텐츠(K-pop과 드라마, 영화), 그리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운동선수와 노벨상 수상자)을 소개할 수 있었다. 더불어 준비한 간단한 간식(미니 붕어빵, 미니 꿀약과, 뻥튀기)과 재미난 놀이(딱지치기, 공기놀이, 제기차지)도 외국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문화의 힘. 무력이나 경제력이나 이념이 아닌 문화가 가진 독특하고 신명나는 강력한 힘을 나는 그렇게 체감할 수 있었다. 오징어 게임 2시즌을 봤거나 알고 있던 아이들은 한국 테이블에 놓여진 공기와 딱지와 제기에 큰 관심을 보였고, 그 드라마가 만들어진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며 보드 내용을 살피고 한국 간식을 즐겼다. 동그란 뻥튀기를 앞접시 삼아 그 위에 미니 약과와 미니 붕어빵을 올려놓고 먹으며 한국 테이블을 꼼꼼히 살펴보는 아이들의 참신한 모습에 보드 내용을 설명하는 나의 목소리에도 흥겨운 힘이 실렸다.
사실 오징어 게임을 보긴 했어도 스토리 라인의 먹먹함(돈 때문에 일상이 지옥이 되어버린 절박한 이들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 때문에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었는데,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컨텐츠라는 생각에 절로 고마운 마음이 든다. 동일한 대상을 함께 바라보고 그 느낌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멀게만 느껴지던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사람들이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 그 순간을 가능하게 해 준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한국의 모든 문화 컨텐츠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