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덟번 째 생일을 기념하며
새해가 된다고 해서 어제의 내가 새로운 나로 탈바꿈하지는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새해 첫 날은 왠지모를 설레임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뭐든지 마음먹고 계획만 세우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에 찬 마음은 재야의 종소리를 듣느라 늦어진 취침시간이나 새해 첫 일출을 보느라 평소보다 앞당겨진 기상시간과 더불어 조금씩 사그러 들고, 그렇게 1월이 스르르 지나다 보면 음력설이라는 두 번째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두 번째 기회와 더불어 나에게는 1월 말에 있는 내 생일이 무언가를 상상하며 기대할 수 있는 나만의 세 번째 기회가 된다.
30대에 접어들며 처음 발견한 새치 한 가닥과 40대에 접어들며 더 이상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테마파크의 회전 놀이기구가 새삼스레 나이들어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면, 깨알같은 글씨를 보기 위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해야 하거나 한 쪽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 구부정하게 앉아있다가 일어설 때 곧바로 허리를 펴기 힘든 요즘의 내 모습은 서서히 하지만 꾸준히 진행중인 자연스런 노화를 절감하게 한다. 이제 두 해만 지나면 나이 50에 접어들게 되니 남의 눈에는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겠지만, 정신과 마음의 나이보다 훨씬 더 앞서가는 듯한 몸의 노화 속도에 가끔은 아찔한 간극을 느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나이만큼의 속도로 흘러간다는 화살같은 시간을 붙잡으려 마흔 여덟번 째 생일을 즈음해 두 가지를 시작했다. 첫째는 운동. 유투브나 넷플릭스를 붙잡고 있을 때는 순식간에 흘러가는 30분이 홈트 영상을 보며 근력운동을 할 때는 아주 천천히, 느리게 지나가는 걸 느낀다. 아직도 15분 밖에 안됐다고?? 라는 생각을 하며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에 전에 없던 생동감과 뿌듯함이 조금씩 차오르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할까 말까'의 마음 속 줄다리기를 치뤄야 하고 여기에서 이겨야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궤도이탈. 늘 해 왔던 선택이나 익숙했던 일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거나 예전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시도해 보기. 낯선 환경과 모르는 대상을 접할 때의 설레임과 긴장감은 평소 너무나 습관적으로 하던 일이나 대상에게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다. 얼굴만 알고 있는 같은 층 다른 팀 직원들에게 씩씩하게 눈인사를, 아침 인사를, 간단한 일상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하며 그렇게 갖게 된 찰나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점점 친숙하고 편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낯설고 어색한 만큼 상대방도 내가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작은 용기를 내어 건넨 나의 미소와 인사와 안부 한 마디가 따뜻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며 일상이 조금씩이나마 다채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의 오늘은 과거 어느 날의 내가 뿌린 말과 행동의 결과치이다. 그리고 오늘 뿌린 나의 말과 행동은 미래의 어느 날 생각치 못했던 순간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작년 말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된 브런치 작가 등록과 난생 처음 발행해 본 브런치북이 몇 개월이 지난 오늘 새로운 독자의 좋아요와 구독 알림으로 내 입가에 반가운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처럼,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자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에 가까운 일이라면 일단 용기내어 오늘 그 씨앗을 뿌려볼 일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뿌려진 나의 씨앗이 우연히 나와 결이 비슷한 이의 토양에 자리잡아 운좋게도 적합한 날씨의 힘을 입어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피울지도 모를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오늘이 조금은 더 특별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도 할까말까의 운동 줄다리기에서 할까 편에 무게중심을, 하던 대로 편하게 갈까 좀 힘들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볼까 하는 고민에서 내 생각과 경험의 반경을 넓히는 쪽에 눈을 돌려보려 한다. 이 작은 일상의 의식적인 노력이 사십대의 아홉수에 서서 낯설고 조금은 두려운 50대 진입을 바라보고 있을 내년의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좋은 생일선물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나와 나란히 길을 걷고 있을 용띠 동갑내기들에게 화이팅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