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뿐인 오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껏 살면서 매일 꾸준히 글을 썼던 기억을 되짚어 본다. 결혼하자 마자 미국으로 이민와서 하루 세 끼를 외식이나 타인의 도움없이 내 손으로 직접 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매 끼니 뭘 먹었는지와 남편이 회사 간 낮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기록했던 신혼초 몇 년 간의 일기가 첫 번째. 차 한 대를 겨우 살 수 있는 돈과 이민가방 두 개를 달랑 들고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벤처기업의 월급에 의존해 낯선 곳에서의 정착을 시도했던 젊은 날들. 모든 것이 새롭고 두려웠던 그 때 나는 한국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정했던 과거에 대한 후회도, 과연 남편이 다니는 벤처기업이 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미국 비자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돌아서면 다가오는 다음 끼니에 빈약한 요리실력으로 뭘 해 먹어야 할 지, 언어부터 문화까지 낯선 이 곳에서 갑자기 생긴 수 많은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억은 아버지께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였다. 병원 호흡기가 필요하신 상황이어서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기셨을 즈음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스러움과 병상에서 편치않은 호흡으로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지실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찾아낸 것이 장문의 카톡 편지를 매일 보내드리는 일이었다. 업무상 특허소송에 관한 영문뉴스를 요약 번역해서 본사 경영진에 매일 보고해 오던 나는 회사를 위해 뭔가를 매일 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아버지에게 띄우는 편지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그날 떠오르는 단상, 나의 일상 이야기, 아버지에 대한 추억,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한 나의 독백이 아버지에게 전해졌다. 아버지는 110일차 편지까지를 받아보실 수 있었고, 병상 옆에서 매일 내 편지를 아버지께 읽어 드렸던 어머니는 떠나신 아버지를 그리며 쓴 나의 마지막 111일차 카톡편지를 아버지 영정사진 앞에서 읽어드렸다.
그 두 번의 경험은 나에게 매일 쓰는 글의 힘을 어렴풋이 나마 알려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흩어지고 희미해질 뿐인 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기록해 미래의 나와 조우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상에 생각을 더해 사랑과 공감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과거나 미래보다는 오늘 하루 한 줄의 일기에, 한 통의 편지에 집중했던 날들의 기억. 하지만 새로운 자극이 익숙해지며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되어 버리고, 꼭 오늘이어야 할 필요가 줄어들면서 글쓰는 일도 점점 사그러 들었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 근력은 시나브로 퇴화되었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그 마법같은 힘은 조금씩 잊혀졌다.
그리고 만나게 된 라라크루 12기. 뭔가를 꾸준히 하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좀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도 함께. 그렇게 이번 달을 꾸준히 글을 쓰는 내 인생의 세 번째 기회로 삼고자 한다. 글감을 찾기 위해서라도 나의 감각은 매일 조금씩 더 예민해 질 것이고, 그냥 지나칠 뻔 한 일상에 나만의 시각과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고, 글을 쓰는 데 훌륭한 자산이 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데 좀 더 용기를 내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마주할 나의 내면을 통해 나와 좀 더 가까워지고,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한 공명으로 내 시야가 좀 더 확장되며, 완벽한 타인이었던 이를 마음이 통하는 벗으로 만들어 가는 뿌듯한 8월이 되기를 소망한다. 마치 하루살이처럼 하루뿐인 오늘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