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명품이 없다. 사실 좋다는 브랜드에 전혀 관심도 없다. 그 무지함 때문에 대학 신입생 때는 동네 리어카에서 파는 괜찮아 보이는 티셔츠와 자켓을 사 입었다가 친구들의 웃음을 산 적도 있다. 잘 알려진 의류 브랜드의 스펠링 한 두 글자만 바꿔 놓은 옷을 멋모르고 입고 다닌다고 면박을 준 한 친구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씌여있는 옷을 입고 다니라고 조언해 주기도 했다.
아이가 어릴 적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종종 쇼핑몰에서 모임을 가졌었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잠드는 낮잠 시간이 될 무렵이면 쇼핑몰 내 명품샵으로 아이쇼핑을 하러 가거나, 일부는 육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큰 맘 먹고 명품가방 하나 정도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위해 돈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남들이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는 명품 가방이 내게는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 더러 ‘그 돈이면 차라리..’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다 하기 때문에, 내 눈에 좋아 보여서 라기 보다는 남들 눈에 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적잖은 지출을 하기에 나는 지나치게 실용주의자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기업 명함이 나를 수식하는 말에서 사라진 지금. 나는 명품으로 나를 치장하기를 원치 않았던 내가 왜 명함으로 나를 수식하는 일에서는 쉽게 벗어나기 못하는지를 의아해 하고 있다. 회사 명함이 나라는 정체성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그걸로 더 이상 스스로를 남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안심보험이었을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안주했던 그 때의 편안함이 그리운 것일까. 나의 하루가 충만함으로 가득했는지에 대한 주관적 행복지수 보다는 객관적인 그럴듯함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었던 것일까.
나를 꾸미는 수식어가 아닌, 나 자체가 명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이다. 무얼 소유하고 있는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보다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깊이있는 철학과 강건한 정신으로 무장된 튼튼한 닻이 되어야 인생의 항해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 지금까지 너무 피상적으로 살아왔다는 자기 반성이, 그래서 내 글에는 만족할 만한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들다. 그럴 때 마다 글쓰기가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지 까지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지나 온 삶처럼 관성적으로 산다면 앞으로의 삶도 지금까지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은 나를 두렵게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읽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제대로 읽고 생각하고 소화하지 않으며 살아 온 날들의 결과가 오늘날 이렇게 나를 수식하는 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취약한 나로 귀결되었으니까.
오늘도 여러 브런치 작가분들의 글과 라라크루 12기 글벗들의 글에서 나를 일깨워 주는 문장을 접한다. 어느 작가분은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을 나눠주고, 어느 글벗은 기다림의 미학과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묻는다. 삶의 교훈을 나누고 인생의 법칙을 일깨우며 소중한 일상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해 주는 값진 인연에 의지하여 어제보다 나은 오늘 하루를 채워보려 한다. 참 감사한 인연이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