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기회에 관하여
". . . 00님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인사팀에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도록 공식 요청하기 전에 앞서 00님의 입사 의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합니다. . . "
한 회사의 인터뷰를 마치고 별다른 소식이 없는 며칠을 보내며 이번에도 역시나 탈락인가 보다 하며 작아지려는 마음을 다독이고 있을 즈음 받게 된 이메일이 그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살아 온 방식과 완전히 반대로 한 번 살아보자는 나의 작지만 단단한 다짐의 시작이.
언제나 안정을 추구하고 신속한 결과를 원했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늘 신중한 모습을 본보이셨고, 딸 다섯의 넷째라는 가정환경은 내 인생에 재수나 휴학과 같은 여유를 허락치 않았다. 나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운까지 따라주어 소위 사회에서 정석이라고 말하는 삶의 노선과 나이대별 과업을 무난히 수행해 올 수 있었다.
그러다 마주치게 된 벽. 열심히만 하면 되던 일이 되어지지 않는 걸 느꼈다. 부딪히고 또 부딪혀 봤지만 내 몸과 마음에 멍이 들어갈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 느꼈다.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멈춰섰다. 혹자는 한번쯤 쉬어가도 좋다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했지만, 멈춰선 나는 그래서 길을 잃은 듯한 나는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를 배신한 것 같았다. 놀고싶고 자고싶던 본능을 이성으로 누르며 꾸역꾸역 노력해 여기까지 걸어와 주었던 과거의 기특한 내가 건네준 바통을 그냥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주저앉아 버린 것 같았다.
절박했다. 머리로는 내 감정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를 가둬놓은 것 뿐이라고, 잠시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 뿐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스스로를 믿고 가위에 눌린 것 같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천천히 손발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려 애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나에 대한 믿음이 흐려져 가는 걸 느꼈다. 믿으려면 그 대상을 잘 알아야 하는데 과연 내가 나를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건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상실과 좌절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느낌이 이거구나 싶었다. 누군가의 좌절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더 이상 재미가 아니라 가슴 한 편이 아려오는 공감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겸손해졌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점, 과거의 내가 걸어온 궤적을 고수해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야만 내가 원하는 곳에 좀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의 오만이고 착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안정을 추구하면서 성장을 원했던 내가 마치 먹고싶은 걸 마음껏 먹으면서도 날씬한 몸을 유지하고 싶다는 상충된 욕망을 가진 미숙아였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안정을 버리기로 했다. 더 이상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하던 일만 하고 안전해 보이는 일에만 발을 들이는 일은 그만하기로. 그렇게 살아 온 지난 날이 낯선 벽 앞에서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내 몸과 마음과 생각에 유연성을 불어넣어주기로 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고 안하던 일을 해보고 어찌 될 지 모르는 일에 발을 담궈보는 것, 불편하고 두렵겠지만 불편함의 크기 만큼 성장의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에 주목하기로 했다. 운동 끝의 근육통이 더욱 단단한 근력으로 거듭나는 것처럼.
그리고 사람을 믿기로 했다.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 뿐이라는 생각에 타인과의 교류를 등한시하며 살아 왔던 내가 지난 몇 달 간의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내 안부를 물어주고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나눠주려 한 몇 안되는 지인의 따뜻한 관심이었다. 너무 가까워 나의 감정을 증폭해서 느낄 수 있는 가족보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어주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툭툭 쳐 줄 수 있는 타인의 무심한 듯 다정한 배려. 가족이니까 당연히가 아니라 남인데도 고맙게 삶의 일부를 공유해 주는 친구.
어디선가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인식하는 나의 목소리는 내 입에서 공기를 통해 귀로 들어오는 소리(공기 전도)와 내 몸 안의 뼈와 달팽이관으로 직접 전달되는 소리(골전도)의 합이어서 훨씬 풍부한 소리로 인식되지만, 녹음된 목소리는 공기 전도로 전달되는 소리만 포착하기 때문에 가볍고 이상하게 들린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관계에도 이 논리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래서 때로는 그들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믿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말과 행동(공기 전도) 만을 바라볼 뿐 그 뒤에 숨겨진 의도와 심리(골전도)를 알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고. 보이지 않고 느끼기 어려운 타인의 의도가 그저 좋을 것이다 믿어주기만 해도 우리의 삶은, 적어도 내 마음은 좀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
타인의 좋은 의도를 무작정 믿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삶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타인의 과거를 궁금해 하니 그의 말과 행동이 좀 더 이해가 되었고, 타인의 꿈을 들으니 내 꿈도 함께 커졌다. 타인과 함께 하니 16킬로 달리기도 지겹지 않았고, 타인과 말을 나누니 내 견문이 조금씩 더 넓어졌다. 무엇보다도 그들과 교류하고 온 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더 밝아 보였다.
오늘도 아직은 낯선 내 일터로 걸어들어 가며 타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작은 용기를 내어 본다. 나를 본듯만듯 지나치려 한 저 시선은 나보다 더 낯을 많이 가리는 수줍은 성격 탓일 거라고, 같이 점심을 먹자 먼저 말걸지 않는 것은 너무 바쁘거나 유난히 지치는 일이 많아 자신의 우울함을 나에게 옮기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업무를 알려주거나 적응을 도와주기 위해 먼저 다가오지 않는 것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파악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고 내멋대로, 나 좋을 대로 타인의 의도를 밝고 맑고 명랑하게 추정해 본다.
사실이 아니면 어떤가. 잃을 것이 없는 것을. 내가 쌓아올린 장벽이 없는 만큼 그들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고 삶을 나눌 기회는 좀 더 많을 것이고, 오해를 이해로 바꿀 수 있는 계기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 것을. 그렇게 다정한 타인을 내 삶에 한 명 더 초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분좋은 새해의 하루하루가 오롯이 채워질 것 같은 느낌이다. 말(馬)의 해를 맞아 다정한 말(話)의 힘을 믿어본다.
#라라크루 1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