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는 조각상을 조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돌 안에 만들어져 있는 완성품을 꺼낼 뿐이다"라고.
처음 춤을 통해 아름다움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한 사람이 나에게 해 주었던 조언이었다. 그때에는 그저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졌던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은 춤을 시작하고 난 뒤에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결국 각자에겐 자신의 춤이 있을 뿐, '완벽한 춤'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돌을 조각할 수는 있지만, 본체인 돌을 만들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조각해도, '완벽'이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미완성일 때 오히려 완전하다. '노예들'이란 작품의 인물들은 인간의 형상이 일부만 밖으로 나와있고, 돌 속에서 아직도 몸부림치며, 해방의 순간을 꿈꾸는 조각들로 남아있다. 어깨와 팔은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다리는 여전히 대리석에 묶여 있다. 그런데, 그 안의 존재들은 돌 밖으로 나와있을 때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돌 속에 있을 때 본체 상태의 그대로(신성성)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에, 미완의 형상으로 신에게 닿으려 애쓰는 '인간'을 돌에 새겼다. 오히려 돌 속에서 완성된 조각을 꺼냈을 때 보다도 더 진실하다. 인간은 절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며 언제나 ‘되는 중’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완벽한 조각상이란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스스로를 완벽하게 만들려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생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이미 완벽한 존재임에도, 집착하는 것은 역으로 그 생명력을 깎아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조각이 아니라, 돌 그 자체이다. 돌을 깎아내는 일에 집착하는 순간 이미 주어져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나다움'이라는 고유함 역시, '신성성' 그 자체다. 신을 닮은 존재로 태어난 인간에게는, 이미 그 완전한 신성성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미 완성된 나만의 것이다. 그 고유함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돌 속에 존재하듯, 인간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길고 긴 나와의 싸움 끝에서 깨달았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없다는 것.
'가장 큰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것을.
이미 주어진 내 안의 아름다움이 이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