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예찬

춤이 내게 준 세 가지 선물: '자유, 치유, 행복'

by 백안


직장인들은 매일 긴장된 24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서 울리는 알람을 끄는 긴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옷을 하나씩 하나씩 입으면서 점점 몸을 옥죄게 된다. 회사원들은 으레 사무직 특유의 정장스타일의 복식을 갖추는 것이 예절이라 여겨진다. 옥죄는 의복 안에 몸을 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직장인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하루 종일 몸에 꼭 끼는 옷을 입고,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감당하며,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하루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오후 4시쯤 피곤함과 함께 우울감이 몰려온다. 또 그 지루한 하루를 이겨낸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생기게 되어서 '오늘 고생한 나를 위해 퇴근 후 어떤 선물을 해줄까?'에 대한 고민도 같이 생겨난다. 종종 퇴근하고 나서 춤을 연습하거나 배우러 가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자주 선물해 주곤 한다. 늘 똑같은 풍경인 사무실의 삭막한 환경과는 대조적으로 춤이 주는 엄청난 시너지의 세 가지 선물이 있기 때문이다.


춤이주는 첫 번째 선물은 '자유'다.

춤은 사람을 자유롭게 해 준다. 춤은 정해진 규칙이 없다. 늘 해야 할 일을 하고, 정해진 일상을 루틴대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만큼 자신의 내면으로부터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표현방법이 없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는 댄스 연습실을 빌려서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틀어두고, 자유롭게 마음껏 움직인다. 시간당 6천 원씩 3시간 정도 대여를 하면, 그 비용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을 너무 사랑한다. 그 시간들을 통해 온전히 자유로운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면 무언가에 사로잡혀 고통스러웠던 생각들도 내려앉게 되고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지게 된다.

두 번째는 '치유'다.

춤은 마음의 고통을 치료해 준다. 나 이외의 세상에서 한바탕 잡음이 나는 소리들을 들으면,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 차오른다. 춤은 잠시나마 그 고통을 내려놓고 나에게 돌아와 호흡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도와준다.

나는 춤을 배우기 시작하고 나서, 우울증 약들을 전부 끊게 되었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무언가 딱딱해진 나의 상태에서 걸리기 쉬운 병인 것 같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들과 또 앞으로 받아갈지도 모르는 상처에 대해 괴로워하며 나를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서 나도 모르게 마음 근육을 과하게 쓰다 보면 마음 근육이 점점 딱딱해진다.


그러면, 세상을 향해 즐거움으로 뛰어들고 유희를 즐기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울증에 걸리면 즐거움이라는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루하루가 그저 견뎌내어야 하는 일상정도로만 여겨지기 때문이다. 춤의 세상에서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호흡 안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한바탕 춤을 추고 나면, 세상의 답답한 시름들이 가라앉게 된다. 세상이 내는 소음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내는 온전한 소란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분리해 주고 또 지켜준다.


세 번째는 '즐거움'이다.

춤은 오래전 잊어버렸던 아이처럼 '깔깔' 웃는 순간들을 선물해 준다.

어린 시절 넓은 장소만 보이면 즐거워 뛰어가고 싶었던 그 순수했던 무한한 자유로움 안에서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었다. 움직임 그 자체가 재미였고,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옆 친구를 보면서 달리기 시합을 하고, 숨바꼭질을 하며 눈을 맞췄을 때 깔깔 웃는 즐거움.

물론 춤은 어려운 예술이다. 음악에 맞춰 동작을 구현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익숙하지도 느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 어색한 동작들을 하면서 끝없이 내가 지금 이상한가?라고 생각하고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웃게 된다. 나 스스로 뚝딱거리는 게 어이가 없고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잘 못하는 내 모습을 비웃게 되고, 나를 비웃으며 즐거워하게 된다. 이 시간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시간인지 어른이 되면 알 수 있다.

어른이 되면, '즐거움'이란 시간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 목적지향적으로 시키지 않아도 바뀌어 살아가게 된다.


어른이 되면 점점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춤을 출 때면 내 안에 가둬둔 수치심들로부터 벗어나 가장 순수하고 맑은 영혼인 나를 만나게 될 수 있다. 그 감정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복과 자유.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그런 상태에서는 어떤 것이든 도전하는 것도 두렵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패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성공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느샌가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당연히 느끼고 누려야 할 아이 같은 순수함과 자유를 잃게 되었다.

춤을 추다 보면 느끼게 된다. 그저 목적 없이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는 나의 움직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기뻐하고 경탄하며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그 모습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그보다 더 중요한 움직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삶의 유희란 '콩콩 뛰면서' 생기는 것이다. '쾅-쾅!' 발을 구르면서 정신없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생기는 것이다. 발가벗고 뛰노는 게 전혀 창피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마냥 행복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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