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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대한민국 만들기(完)

당신을 위한 세레나데

by 백안

따뜻한 진동 속에서



춤이 가진 속성에는 크게 세가지가 있어.



첫째로는, 춤은 가장 ‘자기창조적’ 이면서도 파급력이 있다는 점이야. 누군가의 흥겨운 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신나는 리듬에 전염되어져 나도 모르게 들썩거리게 된 적 다들 있지?

춤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큰 즐거움으로 전염돼. 아이에서부터 어른에게까지. 본능적이지.

데모에서든 축제에서든, 어떤 현장에서든, 춤은 경계를 넘나들고 또 사람들을 하나의 호흡으로 모아주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



두번째로 춤은 모두의 호흡으로 공간의 공기를 뜨겁게 데우는 힘이 있어. 춤을 추는 순간, 서로의 호흡과 에너지가 겹겹이 쌓여가며, 그 공기는 점점 더 따스해지지. 함께 땀을 흘리고 숨을 나누며 움직이다 보면, 그 따스함은 벅차오르는 호흡과 함께 그 공간은 어느새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오르곤 하지. 또 안무를 통해 내가 움직여본 방향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 본 다는것은, 누군가의 오랜 노력과 경험을 전수받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해. 그 동작을 해보면서 내가 아니라 안무가의 입장이 잠깐 되어보는 거지. 그의 디렉션이 나의 몸과 만날때 나만의 동작을 창조하는 경험을 하고, 그 공간에 있는 모두와 그 경험들을 나누는 거야. 춤을 추다보면, 우리가 모두하나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느낄수 있어. 공기로도, 움직임을 나누는 것으로도.



마지막으로, 춤은 우리의 다양한 몸.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걸 알려줘. 우리 사회는 흔히 다들 같은 움직임을 하고, 같은 길을 걷길 바라지만, 춤은 그렇지 않아. 춤은 나만의 독특한 움직임으로도 세상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거든. 한 달 동안 단체작품영상을 함께 준비했던 적이 있는데, 그 순간 깨달았어. 모두가 같은 춤을 추는 것 같아도, 각자의 움직임과 해석이 달라서 더 멋진 그림이 완성된다는 걸.


우리가 각자 다르기에, 그 다양함이 어우러질 때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는 거야.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멋진 존재로 빛날 수 있었다는 거야.


빛나는 춤을 추는건, 결국 외모와는 상관이 없었어. 각자의 아름다운 조각들을 '자신감 있게 분출'하면 그만이야. 멋진 춤은 반복된 연습으로 다져진 실력과,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감의 표현이였어. 삶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내가 멋지다고 믿는 삶이 멋진 거야.


https://youtu.be/20ZSipuGCO0?si=oRgsewjE_7j5S3VV

출처 : 유튜브 '디프런트 프롬 세임'



춤을 배우면서 가장 감사했던 건, 늘 나를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고 느껴왔던 그 무거운 감정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점이야. 춤을 통해 각자의 존재가 그 자체로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됐거든.

처음 춤을 배워야 겠다고 느꼈을때는, 꼭 엄청난 조회수를 얻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서 나를 증명해 보여야 겠다는 집착이 강했지만, 사실 그 상태의 마음으로는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없다는것을 느꼈어.

춤은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반영해서, 음악과 함께 '나'라는 조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어떤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면 오히려 춤을 출 수가 없게 돼. 처음부터 '나'라는 조각은, 남들에게 증명받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이미 내가가진 아름다움과 자신감! 그 자체를 보여주면 돼.


그리고 또 한가지 알게 됐어. 사람의 다양한 조각들, 그 다름을 이유로 혐오하거나 폭력을 일삼는 행동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당한 것인지 말이야. 춤은 오히려 그 다양함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그림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니까, 그런 행동들이 더욱더 말이 안 된다고 느껴졌어.

춤은 나에게 사람의 다름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다양함이 세상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가르쳐줬어.




애초에 나는, 나라는 조각을 증명할 필요도, 비교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그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만 하면 됐던 거지!




안무가 Jemma Lee 수업 중. '선우정아 - 도망가자'




이 영상에서 나는 안무를 한것이 아니라, 프리스타일로 춤을 춘거야. 그럴수 밖에 없었던건,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라는 노래가 너무나도 슬펐거든. 어디론가 가고 싶어도, 바디디스포리아를 심하게 앓고있는 내가 나의 몸으로부터 도망갈 곳은 없잖아. 거의 수업도 못듣고 40분가까이 펑펑 울다가 마지막 발표시간에는, 프리스타일로 음악을 느끼는 대로 표현해 봤어. 함께 춤을 춰주었던 수강생 분이 연기를 끌어내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마지막에 그 결과물이 영상에 잘 담긴 것 같아. 누군가의 손을 잡을 힘이 없었지만, 결국에는 손을 잡고 다시 힘을 낸 거야.

제목은 "움직임을 잃은날, 손잡고 다시 일어나기" 라고 지어봤어.


사람과 사람의 호흡과 연대의 힘은 강력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지..

덕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어서 많이많이 고마웠어.






그래서, 나는 정말 춤을 사랑해. 그 따뜻한 진동을, 그럼. 사랑하고 말고!





그리고 함께 춤출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따뜻한 소란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내게 허락되었다는 것.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행복이더라.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그곳에서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는 게,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어.

늘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주는 든든한 선생님들과 열정적인 학생들 덕분에, 나도 그 따뜻한 진동 안에서 춤을 추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나의 꿈은 '춤추는 대한민국' 만들기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뱉지 않은 언어’라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일거야. 나 역시 삶에서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내부고발자 공무원’이라는 세 가지 꼬리표를 항상 달고 살아가는 사람이야. 그런 라벨에 갇힌 채 사람들에게 인식되다 보니, 그 언어가 마치 차가운 공기처럼 느껴질 때가 드물지는 않았어.

그로 인해 내 마음도 종종 그 공기처럼 차가워지는 순간들도 꽤나 있었지.

하지만, 춤을 추는 시간만큼은 그 공기가 뜨겁게 변하더라. 사람에서 사람으로, 공간에서 공간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공기는 나의 온몸을 감싸서, 어떤 역경이 찾아오더라도 춤추듯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도록 만들어줘. 그 뜨거운 공기 속에서 힘입어, 나는 비로소 나를 규정짓는 그 언어에 담긴 혐오를 바꿔야 겠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지.


내 꿈은 구체적이야.

모든 존재들이 혐오와 차별에서 자유롭고, 잡스럽거나 수준 이하의 언어적 표현들이 사회적 언어로 자리 잡지 않는 세상을 꿈꿔. 살기 힘들어서 대한민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각자의 존재 자체로 잘 살아갈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났으면 해.


나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잖아. 공무원인 나는 ‘대한민국 그 자체’이기도 해. 그래서 이 사회의 수많은 약자와 소수자들의 아픔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따뜻한 진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대한민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고 싶어.





그 춤이, 바로 너를 위한 세레나데야.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기억하며


너도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지? 2021년, 육군의 부당한 전역 처분으로 세상과 싸우다가 생을 마감한 트랜스젠더 군인이야. 그녀는 군인인 자신을 사랑했기에 군인으로 남고 싶었지만, 단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국방부의 강제전역 처리를 받았고, 사회적 살인을 당했어.

그녀의 죽음은 나에게도 나의 죽음처럼 느껴졌어. 그녀는 내가 가진 정체성(성소수자)과 같은 이유로 직업을 잃고 생을 마감했으니까. 나는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고 싶어. 그녀를 잊지 않는 것이, 더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첫걸음이니까.

만약 그녀가 이 땅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그녀의 용기를 이어받아 나 또한 내 목소리를 드러내고,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거야. 멀리까지, 그녀에게도 닿을 정도로.



Shall we dance?


세상에 없는 ‘어떤 상태’를 꿈꾸는 건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야.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진동들이 존재해. 내가 경험했던 친절과 온기를 떠올리면, 세상은 이미 조금씩 소수자들에게 열려 있고, 더 안전한 곳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걸 믿게 돼.


그 진동이 계속되는 한, 아무리 큰 장벽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거라고 믿어. 우리가 그 틈 안에서 살아가며, 단단한 모퉁잇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 돌들이 모여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겠지.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세상, ‘춤추는 대한민국’이야.


나는 춤을 통해 뜨거운 온기와 기적 같은 사랑을 느꼈어. 이제는 내가 그 온기를 너에게 전해줄 차례인 것 같아. 겨울이라 많이 춥지만, 한바탕 춤을 춰서 몸을 덥혀볼게.


“후… 하… 후… 하…”


그 온기가 올라오면, 우리 같이 춤추러 가지 않을래? 분명히 함께 춤추면 엄청나게 재밌을 거야. 그러니까 이 지겹고 힘든 세상에서, 춤으로 잠시라도 숨을 돌리며 내일도 함께 살아가자. 네가 있는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면서, 우리 이곳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가자.








파란장미의 꽃말은 기적의 사랑이래.. 출처: 핀터레스트




부디 내 숨소리가 너가 있는 곳까지 닿기를,
그렇게 우리의 숨소리가 같이 이어져 가기를..






사랑해...
이 말이 참 무겁지만.
늘 너를 기억할게.



故 변희수 하사님. 그녀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천국에 계신 당신을 만날 때까지, 즐거운 춤을 추다가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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