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소우주
오늘은 장미가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다.
아이의 수업이 있는 날이었고, 지난 수업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솔로 영상을 잘 찍으면 선생님이 이끄시는 팀의 오디션을 볼 기회를, 제가 얻을 수 있을까요?"
용기 내어 물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질문 이후, 장미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수업이 중요한 만큼, 완벽히 준비하고 싶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준비한 뒤, 자신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아침부터 조깅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몸을 충분히 풀고 수업장으로 향하는 길 내내 장미는 결의를 다졌다.
'오늘은 보여줄 거야. 내가 이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준비됐는지...'
춤추다가 이대로 쓰러지더라도 아이의 눈앞에서 꼭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욕망의 크기를..
수업장에 들어서자,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장미는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마음속에서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교실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전 수업의 열기로 유리창에는 성에가 끼고, 습기로 가득 찬 물방울이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렸다.
아이의 지도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순간적으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우주의 중심에서 퍼져나오는 중력처럼 학생들을 하나로 이끌었다.
교실 안의 각자는 저마다 고유한 빛을 가진 별과 같았다. 민아는 신중하게 동작을 따라가며 자신의 자리에서 빛났고, 지연은 조금 느리지만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중심에서 그 모든 별들을 끌어당기는 중력처럼, 춤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마치 작은 은하수 같았다. 모든 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큰 곡선을 그리며 조화를 이루었다. 아이의 손짓과 목소리는 별들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지휘자의 지팡이와 같았다. 그 순간, 춤은 단순히 동작의 반복이 아니었다. 각자가 다른 속도로 돌아가는 행성이지만, 이순간만큼은 하나의 흐름을 타고 아름답게 조율되는 순간이다. 마치 우주의 노랫소리처럼.
민아와 지연도 어느때보다 진지하다. 눈빛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진지하게 안무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옆에서 장미는 온몸으로 춤을 표현하며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도 잊은 채 몰입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에너지가 서로를 비추며 빛났다.
춤이 진행될수록 교실 안의 공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서로 다른 별들이지만, 같은 하늘 아래서 하나가 되는 듯한 이 시간. 아이는 느낄 수 있었다. 이 교실을 채운 모든 존재가 ‘춤’을 통해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좋아요. 모두 잘하고 있어요!!! 조금 더~ 하면 동작이 몸에 익숙하게 붙을거에요! 여기서 조금만 더 에너지를 올려볼까요?"
아이의 말에 학생들의 동작은 더욱 힘을 얻었다. 서로의 호흡, 서로의 열정, 서로의 움직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 교실은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은하수가 되어 반짝였다. 각자의 빛깔로 춤을 추며, 이 시간만큼은 민아도, 지연도, 아이도, 장미도 모두 하나였다.
그 순간, 교실은 단순한 연습 공간을 넘어선 우주였다. 춤은 그들을 잇는 다리가 되었고, 별들로 이루어진 은하수가 만들어졌다. 누구도 홀로 빛나지 않았지만, 함께였기에 더 찬란했다. 이들은 단순히 춤을 춘 것이 아니라, 함께 빛나는 우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드디어 솔로영상을 찍을 차례가 다가오자, 장미는 아랫입술을 질끈 물었다. 귓가에서는 오늘 하루종일 스스로 다짐했던 말을 반복하며 멘탈을 잡으려 노력했다. 오늘 하루종일 장미는 생각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안돼..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몸을 못움직이게 돼. 나라는 조각을 보여주자. 보여주고 표현하자. 나는 그거면 돼...!!!!!’
그러나 굳은 다짐에도 솔로영상을 찍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의 앞에서 완벽하게 보여줄 만한 춤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아이의 옆에 서기에는 한참 부족하고,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느꼈던 탓이다. 사실 장미는 스스로가 아이의 곁에 다가가기에 충분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믿고 있었다.
아이를 너무 원하지만, 그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이 그럴만한 자격이 없고, 자신의 존재가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크게 두렵기도 했다.
자신을 언제나 아이의 그림자로 제한해 둔 탓에, 아이와 같은 빛 안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것은 믿음의 문제였다.
아이의 곁에 다가서지 못하는 것도, 모두 자신이 아이 옆에 서기에는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고 믿는 탓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보여줘야 평가의 기회라도 얻을텐데, 장미는 그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연습실 창문에 낀 성에가 굵은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장면이 장미는 자신의 마음과 겹쳐 보였다. 마치 굵은 눈물방울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열등감과 지나친 자기성찰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이의 옆에 선 댄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장미는, 오늘 더 한 걸음 아이의 은하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배운 날이 되었을 것이다.
장미는 아이와 자신만의 은하계를 상상했다. 그곳은 서로의 춤과 열정으로 연결된 별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아이의 곁에 선다는 것은 단순히 춤을 잘 추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 장미는 그 은하계에 닿기 위해 더 이상 자신의 빛을 감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별 하나가 태어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