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불안감.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방송 활동들과 개인 스케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아이는 종종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잊곤 한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가방에서 늘 가지고 다니는, 아버지가 매년 선물해 주는 크고 널찍한 사무용 다이어리를 꺼낸다. 그 안에는 이번 달에 해야 할 일과 이번 주의 중요한 일정이 꼼꼼히 적혀 있다. 평소 정리를 좋아하는 그녀지만, 너무 바쁜 날에는 핸드폰으로 대강 큰 일정을 등록해 기억해 두기도 한다.
아이의 하루는 보통 새벽에 가장 바쁘다. 팀 연습도 새벽, 안무 준비도 새벽, 그리고 동종 업계 사람들과의 업무 문의도 밤에 활발히 이루어진다. 그렇게 밤낮이 뒤바뀐 삶 속에서 일에만 매진한 지 벌써 몇 해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프리랜서이자 1인 기업의 CEO로서, 그녀의 외모와 춤은 작품 그 자체다.
언제나 자신감 넘쳐 보이는 그녀에게도 비밀이 있다. 바로 만성적인 불안감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매번 살아남아야 했던 그녀는 항상 새로운 콘텐츠와 새로운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안고 산다. 대부분 좋은 피드백을 받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면 감정적으로 큰 피로를 느낀다.
또한 팀의 리더로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춤은 그녀에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과 많은 어려움을 마주해야 한다.
때로는 예술과 상업적 인정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한다. 그녀의 예술적 퍼포먼스를 보고 대중이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칭찬이 외적 모습에 대한 평가로만 그칠 때 내적 공허감을 느낀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감각에서 비롯된 춤의 표현으로 소통하고 싶지만, 대중의 관심과 인기라는 직업적 특성상 트렌드에 맞는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 유리하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아이에게 춤이란 자신을 표현하며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이지만, 때로는 트렌드라는 이름의 정답에 갇히는 딜레마를 겪는다.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칭찬하지만, 그녀는 진정성 있는 댄서로서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이는, 그녀가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매일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자 숙제이다.
그녀는 눈에 띄는 열정을 가진 장미가 수업에 자주 오길 바란다. 춤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즐기는 장미에게 자기다움을 찾는 방법을 전해주고 싶어서다. 춤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장미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그녀는 오래전 자신이 시작했을 때처럼, 장미가 춤 자체를 즐기길 바랐다.
순수한 마음 그대로의 춤을 전수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장미가 수업에 오면 그녀의 눈길은 더욱 꼼꼼해진다. 장미의 표정과 몸 상태를 세심히 살피며 매번 새로운 안무로 장미의 가능성을 이끌어내고 싶어 한다. 비록 장미의 동작은 서툴지만, 그녀는 열정 가득한 댄서로서의 잠재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오늘따라 장미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어딘가 비장한 표정과 모두 앞에서 쉬지 않고 안무를 따라가는 열정적인 모습. 그런 장미를 바라보며 그녀 역시 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처럼, 그녀의 등에도 어느새 땀이 배어들기 시작한다. 장미를 볼 때면, 처음 춤을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춤을 가장 즐겼던 그 시절, 잊고 있던 순수함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춤은 자신만의 무대다. 가장 당당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최고의 무대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장미가 어떤 무대에 서더라도, 누군가와 경쟁하기보다 자신의 무대를 매순간 즐기기를 바랐다. 장미의 모습은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조각이었으므로,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장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면서, 그녀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장미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위축되지 않도록, 그 자신감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녀는 몸이 많이 아플 때도 무대에 서야 했던 댄서로서, 장미에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입술을 질끈 물고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표현이 서툴지만, 그녀는 오늘도 그 진심을 온몸으로 전하기 위해 느슨한 고무줄을 챙긴다.
아이의 눈은 어느덧 은하수를 담은 듯 반짝였다. 수많은 별빛들이 두 눈 가득 차오른 것처럼, 투명한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에 손을 뻗어 눈가를 닦았다. 그런데 손끝이 젖어 있었다.
"내가 지금 울고 있는 건가?"
귓속말처럼 흘러나온 독백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아래로 툭 떨어졌다. 곧이어 또 하나의 눈물이, 그리고 또 하나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오랫동안 눈물을 흘려본 적 없는 그녀는 그 순간, 무엇을 먼저 느껴야 할지 몰랐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가슴 속 어딘가에서 뭉쳐 있던 무거운 매듭을 풀어헤쳤다. 매듭을 단단히 조이고 있던 것들은 과거의 불안과 고통, 끝없는 노력 속에서도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그러나 그 매듭은 이제 풀려버렸고, 눈물은 억눌려있던 감정들이 흘러나오는 통로가 되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손에서 내려놓는 기분으로,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춤을 처음 알게 되었던 그때의 자신이 떠올랐다. 대회도 경쟁도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 단지 춤이 좋았던 그 단순한 기쁨.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그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을 조각내며 끊임없이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 그리고 그 속에서 점점 닳아가는 마음. 그런 자신이 장미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숨을 쉬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장미의 자유로운 춤은 나에게 큰 위안이 돼... 장미는 자신만의 춤을 계속 출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 말은 마치 장미를 위한 다짐처럼 들렸지만, 어쩌면 그녀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했다.
그녀는 깊은 숨을 내쉬며 다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뺨을 타고 떨어진 눈물방울이 바닥에 잔잔한 소리를 냈다. 지금 이 순간의 눈물은 슬픔이 아니었다. 해방이었다. 치유였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내 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한 것이야.’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무줄을 손에 꼭 쥐었다. 눈가가 아직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다시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