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아와 지연의 이야기.
수업이 끝난 강의실 밖에는 아이를 기다리는 학생들로 붐볐다.
그들 사이에서 가장 작고 눈에 띄는 두 사람, 민아와 지연이 나란히 서 있었다.
민아는 지친 숨을 고르며 환한 미소로 지연을 바라봤다.
“지연아, 오늘 수업 진짜 재밌다! 다음엔 우리 새벽에 안무연습도 해보자, 어때?”
민아는 늘 크롭탑과 하이웨이스트 팬츠로 자신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녀의 밝은 에너지는 주변을 환히 밝히는 듯했다. 반면, 지연은 오버사이즈 후드티와 조거 팬츠로 캐주얼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스트릿 스타일을 완성했다. 둥글게 잘린 단발머리와 동그란 안경, 풀립으로 바르는 빨간색의 립스틱. 그리고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보조개는 그녀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지연은 민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었다.
“응, 좋아. 같이 하자.”
그러나 그 미소는 차마 말하지 못한 그녀의 깊은 진심을 감추고 있었다.
민아와 지연은 중학생 때부터 10년 동안 이어진 우정을 자랑했다. 주변에서도 항상 붙어다니는 친구 1,2로 유명했을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뗄레야 뗄 수 없이 익숙한 관계다.
그러나 지연은 단순히 우정이라 생각했던 그 마음을 지난 10년동안 숨겨왔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4개월전부터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깨닫고 난 뒤로, 지연은 민아를 향한 마음을 숨겨왔다.
민아가 남자친구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동안에도, 지연은 춤 수업이라는 유일한 연결고리를 통해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민아가 그저 친구로 생각하는 자신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지연이 민아의 옆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수업 내내, 민아의 춤추는 모습이 지연의 시선을 붙들었다. 그녀의 밝은 웃음, 동작에 맞춰 흔들리던 머리카락, 그리고 격렬한 춤 동작 후 헐떡이던 숨소리. 지연은 그 모든 순간을 마음속에 새겼다.
그날 밤, 지연은 침대에 누워 민아와 함께했던 시간을 곱씹었다.
'너도 수업이 끝난 뒤, 가끔 내 생각을 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도 대답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민아를 너무 잘 알고있기에, 민아의 일상은 자신 없이도 충분히 밝고 행복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널 이렇게 좋아하는데, 넌 정말 모르는 걸까? 아니야... 절대로 몰라야 해. 난 우정마저 잃고 싶진않아.”
지연은 속삭이듯 다짐했다.
기침을 크게 한번 하고, 마른듯한 입안을 축이기 위해 혀로 입안을 한바퀴 크게 굴려보았다.
따끔거리는 목의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삼킬 때마다 목구멍 안쪽에서 찌릿찌릿한 감각이 밀려왔다. 뜨거운 불씨가 목 안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어제 민아에게 목도리를 내어준 탓일 것이다. 민아가 추위에 떨며 손을 비비던 모습이 떠오르자, 지연은 목의 통증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아니었다면 민아가 더 추웠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따끔거리는 고통을 애써 무시했다.
통증을 애써 외면한 채, 지연은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어 민아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확인했다. 화면 속 민아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연은 목이 따끔거리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만 괜찮으면 됐어.’ 그런 생각을 하며, 목의 불편함을 이내 마음속 깊이 삼켜냈다.
화면 속에는 민아가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늘상먹덕 마라탕이 아니라 더 따뜻해 보이는 샤브샤브를 먹고 있는 사진이었다.
‘요즘 민아가 맨날 매운 거 먹어서 배 아프다고 했는데, 잘하고 있네. 칼국수 면은 제대로 익혀 먹고 있는 걸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장의 사진에서도 민아를 걱정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에 만나면 집에 있는 유산균이라도 챙겨줘야겠다.'
창문 밖에서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지연은 눈을 감고 조용히 속삭였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또 춤연습을 같이 하겠지? 그 시간만큼은 네가 내 옆에 있으니까.. 나는 그걸로도 충분해.”
달빛 아래에서, 지연은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자신을 다독이며 잠을 청한다.
지연은 다시한번 입안 한가득 혀를 한바퀴 돌려본다. 어느샌가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고인 침을 꿀꺽 삼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