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선물. 믿음

믿음 : 나의 '역과녁'

by 백안


오늘은 당신에게 저의 믿음에 가장 큰 근간이 되는, 저라는 사람의 과녁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먼저 저는 '스트릿댄스'라는 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춤을 잘 추지는 못하지만, 그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너무나도 즐겁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스트릿 댄스를 배우러 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저만의 춤을 추고 있을 때이지요. 저만의 춤이란, 바로. 사랑이 확장되는 저만의 과녁을 만들어 갈 때입니다. 오늘 저는 사랑이 확장되는 저만의 과녁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저는 사랑이 저를 중심으로 세상을 향해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의 과녁은 과녁을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 그 자체가 저의 과녁입니다. 과녁이 생긴다면, 인간에게 과연 유익할까요? 누군가는 과녁이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을 것입니다. 너는 삶의 꿈도 없느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녁을 만들지 않는 것은, 목표를 갖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을 '목표 안에서만 사랑하는 행위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멋지고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 목표를 증명하기 위해 위계로 가른 '과녁'을 만든다면 자신의 삶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과녁자체가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끝없이 평가하게 되는 삶 안에서 갇혀버리게 됩니다. 화살은 정 중앙에 맞을 때보다 끝없이 빗나갈 때가 훨씬 많습니다. 때로 명중에 성공해서 좋은 점수록 받더라도, 다시 더 큰 과녁을 만들게 되어 자신을 가둘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마음 안에 과녁이 생긴다면, 그 과녁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 밖에 비켜난 존재들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나와 세상을 스스로 가르고 비애감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과녁이란 것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놓은 수치심들을 내면화하여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수치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 자체가 과녁을 만들어 놓은 것뿐입니다. 아름다움은 과녁 밖에 있습니다. 그것을 믿어내는 순간, 삶은 증명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순간들을 찾아가는 시간들로 바뀌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과녁 밖에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100점 맞는 것이 학교의 목표라고 생각하면 그 학생의 삶은 고달플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서로 깔깔거리며 웃는 순간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시험이 인생의 전부라는 말이 아니라, 따뜻한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의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유도 갖게 될 것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같은 공간이 너무나 달라지는 것이지요.


저는 삶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꼭 무언가를 잘 해낸다거나 성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 사회적 언어가 멸시와 모욕으로 뒤덮여 있는 이. 사회는 그들에게 노력으로 자신을 극복해 내서 성공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 중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성소수자와 같은 오염된 언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염된 언어 속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아름다움은 삶 그 자체에 이미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 고통이 될 수도 있고, 선물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도 삶에서 갖고 있는 가장 큰 욕망이 있다면, 누군가를 위해 병 속에 든 편지가 되어주는 따뜻한 글을 남기는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일이 제 삶에서 가장 가치가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의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선물과도 같은 순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가끔 저도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서 지나치게 노력할 때가 있습니다. 제 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들어가고, 제 글이 충분히 아름답지 못한다거나 의미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판단할 때면, 저는 수치스럽습니다. 그럴 때면 그저 삶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들에 대한 고백이 아닌, 무언가 힘주어 어떤 것을 증명해 내야 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러한 마음은 저에게 큰 비애감을 주고, 제가 사랑하는 글쓰기를 마치 숙제처럼 느끼게 하지요.


저는 사회가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과녁에서 영 거리가 먼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가난하고, 멸시와 차별을 받는 순간이 드물지 않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제 모습이 가끔은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비애감을 갖게 될 때가 있곤 합니다. 평가와 판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저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고 초라하고 또 삶을 증명해 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 안에 있는 수치심을 들여다보고, 세상의 이쁜 것들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으로 채워야 하는 것인데, 저도 모르게 증명이라는 과녁에 저를 가두게 되는 것이지요. 글로써 무언가 대단한 개념과 대단한 것을 이야기해 줘야 할 것 같고, 사람들에게 감동과 갈채를 자아내기 위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실 어떤 글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조롭게 진실한 저의 이야기를 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과녁을 향한 이야기가 아닌, 저의 역과녁을 담담하게 만들어가려는 노력 자체가 바로 저의 과녁이자, 아름다움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려 합니다. 어떠한 과녁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에게, 제 글은 도서관 책꽂이의 빈 공간과도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한 생각이나 개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좋아하는 당신이 과학 코너가 가득 꽂혀있는 책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말입니다. 대단치 않는 글을 통해서, 건너편 세상을 엿볼 수 있는 다정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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