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대로 사는 건 이제 재미가 없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브런치북 소개글의 첫 번째 문장부터 짚고 넘어가 보려 한다. ‘한국 나이 스물여덟,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룰을 한번 더 무시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 내가 한국 사회의 룰을 깬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이렇게 말을 하면 자칫 사회부적응자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정확히 대학교 4학년 스물셋까지 사회의 그 어떤 규칙도 깨지 않고 오히려 누구보다도 그것들을 잘 따르는 ‘바람직한 주류’로 살았다.
초중고를 아무 문제 없이 졸업했으며, (나와 1분 30초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 동생은 돌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싶다며 부모님 속을 썩였던 적이 있었음에도, 나는 말 잘 듣는 첫째 딸 포지션을 굳건히 지켰다.) 입시를 끝내고 대학을 진학할 때는 전공과목으로 무엇을 고를지 모르겠으면서도 ‘내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대학을 왜 가야 해?’라는 의문조차 갖지 않았다. 남들 다 가는 대학, 나만 못 가면 안 되지. 그렇게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20대였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을 일 년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분명 1학년, 아니 2학년때까지만 해도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활기차고 유쾌하며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술과 안주로 밤을 지새우는 불타오르는 청춘 그 자체였다. 그런데 졸업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 사람들에게서 내가 좋아했던 그 모습들이 희미해지고, 대신에 ‘취업 걱정’의 탈을 쓴 현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취업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문제는, 그 모든 과정들이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누는 모든 대화는 신세한탄과 한숨으로 끝이 났고, 이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속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몇 년 뒤 내 모습일까?’
사실 답답함의 원인은 그런 류의 힘 빠지는 대화 말고도 더 있었다. 당시 나는 내가 졸업 후에 가고 싶은 회사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기에,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노력’ 조차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되는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그냥 지겨웠다. 문득, 대학 입시를 끝내고 전공을 무엇으로 선택할지 혼자서 열심히 고심 중인 열아홉 살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 아니, 변한 건 분명히 있었다. 이제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취업을 해야 하지?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게 먼저 아닌가?’ ‘나는 왜 여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거지?’ ‘전공 고를 때 헤맸던 걸로 모자라서, 일에 있어서도 이런다고?’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마치 그동안 누군가 건드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내 머릿속의 의문 버튼이 제대로 눌렸고, 동시에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나 자신에게 물밀듯이 쏟아졌다.
이것은 분명 한국 사회의 룰에 순응만 하며 살아오던 내게 큰 변화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처음으로 룰을 깨봤다. 졸업 후 취업이라는 모범답안을 선택하는 대신, ‘단기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캐나다 밴쿠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무시한 룰의 정확한 명칭은 <4년제 대학 졸업 후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 이다.
밴쿠버 어학연수 시리즈로 따로 연재를 할 수도 있을 만큼, 6개월동안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왔다. 그리고 그 시간을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짚을 만큼, 삶에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여러분이 읽게 될 내용은 스물넷의 달기만 한 어학연수 스토리가 아닌, 스물여덟 버블리의 단짠단짠 유학 스토리이다.
나의 이야기가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