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연봉협상보다 중요했던 건
인생 첫 탈주나 마찬가지였던 스물넷의 캐나다 어학연수로 나는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1. 남들이 가는 길이라는 이유로 목적지도 모른 채 따라갈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그 무리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남에 있었다.
2. Present is present. 살면서 지금처럼 ‘현재’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살았을까?
3. 1번과 2번을 스스로 깨닫게 된 이상, 나는 앞으로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의 기준을 내 마음으로 두기로 했다.
타인의 기대, 사회의 기준, 세상의 잣대 이런 것들은 미안하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서 안녕이다.
이제 ‘진짜’ 내 삶이 시작되었다.
나의 첫 직업은 영어 강사였다. 내 이전 글을 읽고 온 분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대학 졸업 후 취업’ 이라는 룰을 깼기 때문에 (굳이 비교하자면) 주변 친구들보다 약 1년 정도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심지어, 공식적인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룰’을 한번 더 깼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더라. 그래서 두 번째로 깬 룰의 명칭은 뭐냐고? <회사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1년은 버티기> 다.
당시 내 나이는 스물다섯이었고, 기쁘게 얻은 첫 직장은 영어 사교육 업계에서 꽤나 네임밸류가 있던 회사였다. 예전의 나라면 그 명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내 취업 소식에 나보다 더 기뻐해준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아직 오지 않은 내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안간힘을 쓰며 ‘1년은 버티기’ 룰을 지켜보려 했겠지. 그렇지만 나는 분명히 그러한 외부 요인들에게 이미 안녕을 고했다. 이제는 내 마음, 정확히 말하면 ‘현재 내 마음 상태’가 가장 중요했다. 입사 3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요약해서 한 줄로 말하면 회사를 다니는 내 마음이 기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날 입사했던 두 명의 동기들도 나와 함께 퇴사했던걸 보면, 내게만 맞지 않는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운 좋게도, 새 직장을 빠르게 구하게 되어 동일한 직무로 칼이직에 성공했다. 심지어 그곳은 첫 회사의 경쟁사이기도 해서, 일이 더 재밌어진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회사를 다니면서는 출퇴근길에 ‘이게 맞나?’ 와 같은 의문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제는 기쁘게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바람직한 신입의 자세로 3개월의 교육 기간을 지나, 무려 일 년이라는 시간을 그곳에서 더 있었다. 일 년이라는 귀여운 근무 기간 앞에 ‘무려’ 라는 부사를 붙인 이유가 있다.
내가 1년 하고 3개월 동안 한 곳에서 근무를 했다는 건, 그 15개월 동안 (정확히는 18개월) 비행기 한번 타지 않고 한국에서 개미처럼 일만 했다는 걸 의미한다. 휴가도 없는 회사였냐고? 휴가가 주어지면 국내 여행만 갔다. 지금이 나만의 여행 철학에 대해 짚고 넘어갈 타이밍인 것 같다. 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동안만큼은 그토록 좋아하던 여행을 끊었다. 그동안의 숱한 여행 경험을 통해, 나라는 인간에게는 ‘회사생활 도중 간신히 짬을 내서 주말 또는 연휴와 같은 극성수기에 반짝 다녀오는 단기여행’ 은 안 가느니만 못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여행을 세상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나만의 여행 철학이다.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 본격적인 여행글을 연재할 때,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오겠지.
아무튼 그렇게 일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난 과감하게 비행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가까운 제주도도 안 갔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내가 좀 극단적인 면이 있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 맞냐고? 퇴사하고 미친 애처럼 돌아다녔다.)
직장생활 얘기 도중 갑자기 웬 여행이냐고 묻는다면, 여행은 내가 스물여덟에 캐나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이다.
보통은 한국에서 스물일곱•스물여덟이라고 하면, 자신의 분야에서 한창 경력을 쌓는 중이거나, 그간의 커리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곳으로의 이직을 준비하는 시기라고들 한다. 나 역시 스물다섯에 영어 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제 막 경력의 시작점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쯤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정확히 일 년 반 만이었다.
당시의 나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가능성 1. 강사라는 직업이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가능성 2. 일의 강도가 버거웠다.
가능성 3. 월급이 적었다.
영어 강사로 근무했던 기간 동안 목표했던 금액을 모을 수 있었던 만큼 월급은 내게 부족하지 않았고, 강사 한 명에게 주어지는 수업은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회사 방침 덕에 일의 강도가 세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꼈던 보람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깊게 남아 있어 때때로 강사 일을 다시 해볼까 고민할 정도였다.
> 퇴사의 이유는 결코 일에 대한 불만족이 아니었다.
나는 스무 살이 되고 도전했던 첫 나 홀로 여행을 기점으로, 여행을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냐면, 영어강사로 문제없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젠가는 여행을 업으로 한다.’ 라는 생각을 늘 가슴 한편에 품고 살았다.
강사로 일하며 오후 두 시에 출근해서 밤 열 시에 퇴근하면, 집 근처 24시간 카페에 가서 언젠가 여행가이드로 일하는 나를 꿈꾸며 (가끔씩 졸기도 하면서) 관광통역안내사 시험공부를 했다. 이때 했던 공부는 캐나다 유학 계획 수립과 동시에 중단했지만.
나는 퇴사하고 캐나다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그리고 늘 마음속으로 그리워했던 밴쿠버에 가서 관광경영학을 제대로 배워보는 거야.
대학 전공으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열아홉 살의 나는 이제 없었다. 원하는 것을 꿈꾸던 곳에서 배울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설레기 시작한 스물일곱의 나만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경력 쌓기에 한창인 나이’인 스물일곱에 다시 한번 한국사회의 룰을 깨기로 했다.
세 번째로 깬 룰의 명칭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
<만족스러운 연봉협상으로 한층 더 안정기로 접어들기> 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