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탄생은 경험과 상상력으로부터
퇴근길,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붉은 태양이 위엄 있게 떠있는 모습을 보니 순간 "달고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편의점을 갔고 서울우유 달고나 우유를 찾았다. 다행히도 2+1 행사 중인 달고나 우유가 딱 3개 남아 있었다. 굿!!! 그리고, 서울우유 추억 하나, 둘과 달고나 추억 하나, 둘이 동시에 생각이 났다. 평소에는 잘 기억도 나지 않던 것들이 우연적으로 붉은 태양 > 달고나 > 서울우유 > 추억들로 사고의 흐름이 흘러갔다.
어떤 글이든, 이러한 우연적인 사건이나 장면이 모티브가 되고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이 이뤄지는 것 같다. 최근에 지인이 시나리오 작가 공모전에 당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시나리오 초안을 작성할 때 본인이 경험한 아주 작은 파편의 조각으로 주인공의 페르소나와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무에서 유로의 완전한 창작은 없는 것 같다. 땅에 발에 닿고 있는 지금-여기에서 본인이 겪고 있는 찰나의 경험으로부터 창작의 파편이 떠오르고 그 파편에 또 다른 직/간접적인 경험들의 파편이 덧붙여지고, 그 지점에서 상상력이 발휘되어 그림이든 글이든, 작가의 세계관이 담긴 작품이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엄청난 과정인 것 같다. 모두의 결과물은 각자의 경험과 상상력이 응축되고 응용되는 과정들의 집합이 아닐까.
우유를 싫어해서 거의 안 마시는데, 서울우유는 가끔 마신다. 초등학교 때 키가 뒤에서 두번째였어서 첫 번째 친구와 내가 우유 배달 당번과 교실 뒤에 스케치북 걸기를 도맡아서 했었는데, 초록 박스에 우리 반 우유 수량만큼 담아서 교실로 배달했었던 우유가 서울우유였었다. 빨간 로고만 봐도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추억 팔이 같은 대상인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서울우유에서 장학금을 받았었는데, 사유는 초등학교 6년 동안 받았던 상장이 전교에서 가장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림 대회, 글짓기 대회, 웅변대회, 서예 대회, 음악 감상문 쓰기 등등 온갖 대회에 다 참여를 시키셨었는데 지원자들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예체능 계열에서 꽤나 다재다능함(?)을 가진 아이였었다. 조~용하니 내성적인 아이가 예체능 과목 수업 시간만큼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즐겁고 신이 나서 으쓱해졌던 것 같다. 수많은 상장을 타왔었지만 집에서 칭찬을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렇게 나의 부모님들은 칭찬에 인색하셨을까.. 아직도 종종 "어떻게 한 번도 칭찬을 안 하셨어요?"라는 말을 꺼내곤 한다. 부모님도 칭찬을 안 해주셨는데 서울우유가 장학금을 주셔서 졸업식 때 전교생들 앞에서 상장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니, 서울우유에 감사하는 마음을 깊이깊이 간직하며 딴 우유는 안 마셔도 아주 가끔 서울우유는 마셔 준다. 서울우유님 감사했습니다~ 졸업식날, 상장을 손에 쥐며 어른이 되면 '서울우유에 취업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던 것 같다.
편의점에서 2+1을 하고 있는 서울우유 달고나를 몇 번째 마시고 있다. 우유 애호가는 아니다 보니, 우유보다는 달달한 달고나가 먹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우유이기도 하고~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인해 달고나 열풍이 불면서 이러한 우유도 출시가 되었나 보다. 달고나 맛이 살짝 난다.
어렸을 때, 동네에는 이동식 대형 퐁퐁(=트램펄린) 놀이터가 지금의 팝업스토어처럼 열렸었는데, 퐁퐁 놀이기구 옆에는 항상 달고나를 파는 아줌마들이 있었다. 어린이들이 지나칠 수 없는 달달한 냄새와 부풀어 가는 설탕 덩어리를 보는 재미와 도형 맞춤 깨부수기를 완성하면 경품을 주었기에 인기가 참 많았었다. 내 기억에 퐁퐁은 500원? 달고나는 200원? 이였나.. 음 기억이 잘은 나지는 않지만 몇백 원이었다. 어린이들이 돈이 어디 있나.. 부모님한테 돈을 타와야 하는데 군것질한다고 돈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해서 언니, 친척 오빠들, 옆집 오빠랑 소꿉장난 하고 놀다가 언니오빠들 사이에 껴서 하나 두 개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아무도 없는 날(집에 아무도 없는 날이 참... 드물었다.)이 생겼다. 그래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라면 냄비보다 더 큰 냄비에 달고나를 한가득 만들어 놓고 오래 두고 조금씩 꺼내 먹어야겠다며 설탕을 가득 붓고 휘휘 저으면서 "달고나야~ 만들어져랏!!!" 했는데, 그 큰 냄비를 통째로 새까맣게 태우고 말았다. 베이킹소다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달고나 아줌마가 넣은 것이 설탕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분명히 혼나겠구나.. 싶어서 집으로 할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거실 찬장에 까맣게 타버린 냄비를 몰래 숨겨 두었었다. 돌아오신 할머니는 눈치를 못 채셨고 며칠을 무사히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 냄비를 쓰시려고 찾다가 찬장의 냄비를 발견하고는 혼을 내셨다. 그래도, 크게 혼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몇 년 전에 -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이전이니까 4-5년 전? - 신사 가로수길에서 젠틀몬스터 선글라스를 샀는데 구매 고객 대상으로만 입장 가능한 팝업 전시관에 갔을 때, 그곳에서 달고나를 제조해서 공짜로 주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 되어 달고나 제조 과정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도형 맞춤 깨부수기를 했는데, 달고나! 하면 그날의 그때 그 장면이 흐뭇하게 기억이 난다. 좋았었나 보다. 달고나 해 먹고 싶네~ 단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꼼냥꼼냥 달고나를 만드는 과정과 깨부수는 재미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