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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s I am Oct 31. 2023

줄다리기(관계) 게임의 본래 목적

'나' 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서 줄다리기 게임에 참여하는 것.


나와 가까워 지는 줄다리기

나와 가까워 지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대단히 중요하다.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는 어느정도 상대와 나 사이의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나에게 좀 더 가까이 왔다가도 반대로 상대에게 좀 더 가까워 지다 보면 나로부터 좀 더 멀어지기도 한다.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이쪽으로 끌려 갔다가 저쪽으로 끌려 갔다가 하다 보면 나의 중심이 이쪽으로 이동했다가 저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나와 상대가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힘이 그때 끄때 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때는 상대에게 더 쎈 힘으로 끌려 가기도 한다. 쎈 힘으로 끌려 갔다가 온 날은 왠지 모르게 '내가 오늘 무엇을 한건가' 허무해지고 공허함에 휩쌓여서 기력없이 늘어져 있다가 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그 줄다리기 속에서 내가 어떤 부분에서 약하고 강한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하고 뛰어난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나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 나를 알아가기도 하지만, 관계들 속에서 비교할 수 있는 대조군이 있을 때 실험군(나)의 퍼포먼스를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단순히 치열하게 일을 함으로 인해서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같이 스포츠를 즐기거나 독서를 하고 여행을 하고 감상을 하는 등의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와중에도 나의 몸과 마음이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 에너지가 생겨나고 에너지가 소진되는지도 알아갈 수 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면 바깥으로 나왔을 때의 나도 두루두루 알아가봐도 좋지 않는가. 단, 줄다리기에서도 상대쪽으로 끝까지 끌려가지 않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지점을 넘어가게 되었을때 신속하게 멈춤을 고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줄다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서 줄다리기 게임에 참여한 것이니 본래 목적에 어긋난다면 게임을 끝까지 하지 않고 호루라기를 불러 포기가 아닌 양보하는 마음으로 '나' 를 지키는 것이다. 



나와나와 

Come out & With me

그래서, 나는 '나' 에 집중하는 비즈니스의 핵심 철학을 스타트업의 소소한 문화에 녹이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나와나와' 이벤트이다. '나와나와' 란 Come out! 밖으로 나와라! 라는 의미도 있지만 With me 나와 함께~ 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벤트 타이틀이다. 나와나와 이벤트의 첫 액티비티로 테니스를 선택했다. 테니스 랠리는 사람들과 팀으로 진행되는 스포츠이지만 사이사이에 혼자가 되는 시간들이 있는데 상대방의 공을 받아칠 준비를 하는 그 순간에 '나' 는 본의 아니게 '나' 에게 집중하게 된다. 나의 몸은 지금 안정적인지, 나의 자세는 올바른지, 나는 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과 같이 나의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서 나는 잊고 있었던 나의 존재를 더 감각적으로 분명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테니스 레슨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랠리를 하기에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함께한 멤버들이 꽤 수준급으로 테니스를 쳐서 나는 깍뚜기가 되어 그들과의 줄다리기에 참여하여 그 안에서 나를 관찰하였다. 그러던 중 쎈 공이 나의 얼굴 정면을 향해 아주 빠른 속도로 - 빛의 속도처럼 느껴졌다. - 날아오고 있었다. 테니스 라켓을 얼굴 정면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공을 막거나 또는 몸을 움직여서 얼굴 정면으로 오는 공을 옆길로 새도록 했어야 했는데 순간 얼음이 되었었나 보다. 결국 테니스 공은 나의 왼쪽 눈으로 우주의 운석이 지구로 떨어져 지구의 표면이 움푹 패이듯이 나의 눈을 강타하였다. 엄청난 충격이였다. 공을 맞은 것은 눈 부위였는데 얼굴 전체가 흔들흔들 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나는 이 충격으로 인해 내 몸에 있던 다른 고통들이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고통에 놓여져 있을 때 더 큰 고통이 그 고통을 덮는다는 말이 있듯이 맞는 순간에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순간적인 충격에 아파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 앉았지만, 아프다는 생각 만큼 시원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통쾌한 타격감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시원하다는 느낌을 갖는다니 엉뚱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때때로 고통이 즐거울 수 있구나 싶기도 했다. 얼음 찜질을 신속하게 하고 나니 살짝 부었었던 것도 금방 가라앉았고 집에 돌아와서 손과 발을 따고 혹시라도 있을 충격 후의 멍을 가라앉혔다. 비록 쎄게 공을 맞았지만 나와나와 액티비티 취지에 맞게 나는 누군가가 던진 공으로부터 나를 더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프지마. 



PS.

제가 창업한 <노타이틀플레이> 회사 사이트에 놀러와 주세요~ 홈페이지에는 첫 대문 페이지에 "나의 바탕색" 을 적는 란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나에게 찾아드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은 과거의 무의식으로 부터 행해지는 분별의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나는 지금 현재 여기에만 존재하는데, 지금 찾아드는 나의 생각과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럼, 그러한 과거로부터 분별의 시나리오를 덜어내고 나면 나는 어떤 바탕색을 가지고 있는 존재일까요? 한번 쯤은 상상해 보시고 적어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

https://www.notitlepla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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