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2024년은 어떤 해가 될까? 1월 1일 첫날 나는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나를 대변해 주는 어떤 것이자 나와 함께 이 세계라는 여행지에서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갈 친구가 있다면 덜 외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떤 캐릭터를 만들면 좋을까? 여러 가지 동물을 상상해 보았다. 나를 어떤 동물에게 대입시켰을 때, 내가 가장 만족스러울까? 머리를 식혀보고자 올라갔던 26층 옥상에서 저 멀리 산 등성이를 바라보는데 하얀 새 한 마리가 두 날개를 양 쪽으로 뻗어 바람을 가르면서 자기 만의 길을 비행하는 모습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결정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온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자유"였다. 그때는 나비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새가 되고 싶어졌다. 나비처럼 동네 꽃밭에서 노니는 것이 아니라, 이 산에서 저 산 너머로 날아갈 수 있는 새가 되고 싶어졌다. 그래! 나는 새가 되리라. 새는 새인데, 21세기 AI 시대를 살아가는 로봇새로 만들자. 우주로부터 양자 에너지를 송신받아 생명을 유지하는 새이다. 로봇새이니 머리만큼은 로봇 느낌이 나면 좋겠지. 그렇게 2024년 새해 첫날 아이패드를 펼치고 나는 나와 1년을 함께 동거동락할 로봇새 캐릭터를 그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헤세 <데미안>의 말처럼 나에게 올 해는 한 세계를 파괴하는 해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내가 쥐고 있었던 과거의 자아를 파괴하자. 이쁘게 귀엽게 그리는 것에는 소질이 없지만, 그 어떤 누구를 위한 그림도 아닌 나만을 위한 그림이라면 그 무엇인들 어떠하리. 내 손이 그리고 싶은 것을, 내 마음이 말하고 싶은 것을 그려봐야지. 그렇게 365일 시간 여행을 채워봐야지.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로봇새를 통해서 내가 가지 못하는 세상까지 가볼 수 있다면 좋겠다. 새가 되어서 이 세계의 자아로부터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누리며 날아가리라.
너무 오래 나는 맹목적으로 무감각하게 기어 다녔고, 너무 오랫동안 내 마음은 침묵을 지키면서 빈곤하게 한쪽 구석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이와 같은 자기 탄식과 공포와 무서운 감정에까지도 환영의 손을 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도 감정은 있었고, 불꽃도 타올랐으며, 심장은 움직였다! 비참한 가운데서 나는 어수선하게 자유와 봄과 같은 무엇을 느꼈다.
_헤르만 헤세 <데미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