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애를 키우겠다고??"
모두들 경악했다.
나 스스로도 그랬다.
내가??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아주 단호하게 '가'라고 말했다.
'아이가 예뻐지기 시작하면 시집갈 때'라고 하던데, 나에게 '그때'란 영영 오지 않는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인간'을 낳아서 기른다는 게, 그리고 그 인간을 성인이 되서 스스로 제 앞가림할 때까지 책임진다는 게 나에겐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앞가림하는 일조차 때론 버거운 인간이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건강하지 않았던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유년기의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단 나 자신을 돌보고 건강하게 양육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내 유년기의 정서적 결핍이 현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극복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고군분투중이다.
그래서 때론 삶이 투쟁처럼 느껴지는 날이 많기에, 굳이 이런 삶에 다른 인간을 '초대'해야 하는건가?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래도 핏줄은 다르다,고 했다.
사촌언니가 아이를 낳았다.
언니의 아들과 잘 노는 나를 보고 이모도 언니도 "너는 정말 아이랑 잘 놀아준다"며, "시집가면 애 잘 키우겠네!"라고 말했다.
나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아이들도 나랑 노는 걸 좋아하지만 뭔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이가 예쁘다'라는 생각은 일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을 성가셔하는 편이었다.
주말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웨이팅중일 때, 지루해진 자그마한 아이가 다가와서 인사를 하면 아이의 엄마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고개를 돌려 버리곤 했다.
일리자베스 바댕테르의 <만들어진 모성> 속 주장이 맞는 것 같았다.
모성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강요된 거라는 주장. 그렇다면 굳이 강요된 삶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한, 이번생은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생 모토가 '빚과 애만 없으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다.'였던 때도 있었으니까.
'엄마'가 되는 일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케빈에 대하여>를 빼놓을 수 없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 혹은 '불쾌'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어떤 아이'가 나에게 올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 랜덤한 뽑기의 장에서 '어떤 아이든 엄마에게 오기만 하렴.'하는 마음가짐이 없는 이상 아이는 역시 낳지 않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친구가 임신 중 양수 검사를 했는데,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아이가 다운증후군일지도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며칠 뒤, '문제가 없다'는 검사결과를 듣고 안심했지만 아무래도 좋으니 무사히 엄마에게 와줘,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나는 엄마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이'에 대한 내 생각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건, 사노 요코 때문이다.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가 한창 베스트셀러 일때, 이 책을 읽고는 '이게 뭐야' 싶었다.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드러누워서 욘사마 드라마나 보는 이 할머니가 도대체 왜 이렇게 인기가 있는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와 관련된 나의 상처를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치유하기로 마음 먹은 뒤,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한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 보던 중, <시즈코상>으로 다시 사노 요코를 만났다.
'성격장애'가 있는 것 같은 엄마를 이해하려고 한평생을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그런 엄마를 감당할 수 없어 자기 한 달 생활비의 몇 배나 되는 좋은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고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야기, 평생 '미안해' '고마워'말을 할 줄 모르던 엄마가 치매에 걸리고나자, 비로소 엄마와 화해할 수 있었던 이야기.
그 날 이후로 나는 사노 요코의 모든 책을 찾아 읽었다. 책장이 줄어드는 게 너무 아까워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읽었다.
괜찮아, 아직 읽지 않은 사노요코의 에세이가 한 가득 남아있어!라고 생각하면서. '다' 읽고나니, 어쩐지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듯한 헛헛함마저 느꼈다.
나랑은 상관도 없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 할머니에게 절절한 동지애를 느꼈다. 아직 살아 계시기만 하다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극성스러운 사생팬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찾아서 한 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였다.
사노 요코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관해 쓴 글들을 읽으며 처음으로 '어쩌면 인생에서 한 번쯤 아이를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 뱃속에서 태동을 하면 숭고한 기분은 커녕 그저 똥이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는 부분이 너무 사노 요코 다워서 웃기기도 하고. 8살이었을 때를 회상하며 '고작 아이였을 뿐'인데 뭘 그렇게 심각했나 반성하는 부분, 이혼으로 아이의 '가정'을 깬듯한 자책을 하는 부분 등...
어쩌면 인생에서 '아이'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호기심같은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여전히 내가 '낳는' 건 내키지 않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들고 내가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날, 인연이 닿는 아이가 생긴다면 돌봐줄 수도 있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레는 하나뿐인 남동생의 아들이자 나의 조카이다.
2016년, 하레가 태어났을 때도 내 반응은 '음. 아기가 태어났군.' 정도였다.
만난지 한 달만에 서둘러 혼인신고부터 먼저 하고는 양가 가족들에게 '통보'를 한 하레 엄마, 아빠의 결혼의 시작. 나를 비롯한 가족들은 당연히 어리둥절하며 걱정을 했는데, 동생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누나라면 이해해줄 줄 알았다.'며 서운해했다.
심지어 하레의 엄마는 겨우 20살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둘 다 자리잡을 때까지 피임이나 잘 해. 아직 아이 낳기에 좋은 때가 아니야."라고 나는 당연한 충고를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소식이 들려온터라 그저 절레절레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하레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이 작은 생명체에 놀라울 정도로 빠져 들었다. 하레는 나에게 '인생의 새로운 차원들'을 열어 보여주었다. 정말 핏줄은 달랐다!
하레와 함께한 시간들을 통해 어쩌면 내 인생에서 영영 알 수 없었을 자식(혹은 자식같은 존재)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것, 그런 존재와만 주고받을 수 있는 종류의 특별한 사랑에 대해 배웠다. 또 내가 누리지 못했던, 잊혀진 유년기를 하레와 함께 다시 한 번 경험하면서 인생을 두 배로 사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런 하레가 30개월이 됐을 무렵,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누나, 나 이혼하려고.
합의이혼을 하기로 했고, 친권과 양육권은 아빠인 동생이 갖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가서 아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내가 가지 않으면 하레는 '우리 엄마(하레의 할머니)'가 키우게 되겠지. 최악이다.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을 하레가 고스란히 겪을거라고 생각하니,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고 싶었다.
혹은 돌보미 아주머니가 오실 수도 있다. 아직 3살. 0~7살까지는 인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라는데, 좋은 돌보미 아주머니를 만나면 좋겠지만, 어디까지나 운이다.
돌보미 아주머니가 개인사정으로 그만두거나 자주 바뀌게 되면 아이에게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딱 4년, 아이가 7살이 될때까지, 아이가 인생의 기초공사를 끝내는 동안만은 내가 어떻게든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 전까지 하레는 100일 잔치, 돌잔치외에 일 년에 2,3번 만나는 '랜선조카'나 마찬가지였다. 내 결정에 주변사람들 모두가 놀라고 그 누구도 선뜻 '힘내서 잘 해보라'고 말해주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도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하레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는 충분하니 최선을 다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레의 아빠가 다시 좋은 인연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까지 나는 하레의 고모이자 '주5일 엄마', '전업 주부'로 20개월을 살았다.
육아는 매일 매일이 챌린지며, 극기훈련이었다. 살면서 이토록 커다란 성취감과 깊은 절망감의 낙폭을 느껴본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하레'는 나의 스승이자, 나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경험한 모성은 당연한 본능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져 주입되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내 안에 '씨앗'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적당한 환경이 갖춰지자 싹을 틔우고 꽃처럼 피어난듯한 느낌이었다. '하레'가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나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걸 내 아이를 낳아서 경험하고 싶은가?
답은 여전히 '노 NO'다.
또 하레와의 경험을 통해서 나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를 세상에 낳아준 사람인 동시에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갔던 사람. 여전히 엄마가 '왜' 그런 행동들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째서' 엄마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해, 그냥 엄마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대해 좀 더 연민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과극의 반응을 보였다.
'세상에 그런 엄마는 없어! 니가 뭘 몰라서 그러는거야!'하고 불편해 하거나,
'진짜 이상한데?'하고 엄청나게 흥미를 보이거나.
그냥 솔직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예상치 못한 반응들 앞에서 점점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며 점점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었다.
그 어딘가가 '여기'가 맞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육아일기 育我日記'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놓은지 한 달이 되어가도록 첫 글을 올리는 일이 망설여졌다. 그리고 그 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