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육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유주 Oct 17. 2020

25. 나는 정말 나쁜 아이였을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부모를 나쁘다고 인식하지 않으려는 것은 생존기제다. 

영아는 양육자의 관심을 끌어 유대감을 유지하려는 생물학적 본능을 타고나며 그렇게 하도록 신경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따라서 양육자가 그 유대감을 위협하는 행위를 할 때 아이는 양육자에게서 잘못을 찾기보다 자신을 비난하기 쉽다. 이처럼 나쁜 점을 내면화하는 것이 투사적 동일시의 시작이다.


<당신은 왜 나를 괴롭히는가 Emotional Terrorism> p.52 - 에린 K.레너드




하레는 오늘은 뭘해서 고모를 도발할까,를 매일 고심하는 것 같다.

집에 와서 일부러 신발을 신은채 거실로 뛰어 들어 가면서 신나한다.

나는 "어서 나와!! 신발 벗고 가야지!!"하고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며, 장난의 장단을 맞춰준다. 


아침에 메이크업을 하고 있으면, 유심히 보고 있다가 바로 다음 단계의 화장품을 들고 냅다 도망을 간다.

내가 별 반응 없이 계속 메이크업을 하면 화장대로 돌아와서 이번엔 다른 걸 들고 도망간다.

별로 안 중요한 걸 들고갈 때, 오히려 더 호들갑을 떨어준다.

그러면 하레는 하레대로 신나고, 나는 나대로 하던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어느 날 아침엔 면봉을 통째로 들고 나갔는데,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하레는 바깥에서 '조용~'하게 뭔가를 했다.

이런 조용함은 분명 '뭔가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신호인데? 


하레는 다시 내방으로 와서 내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서 '자! 이것 좀 봐 어때?'하듯 한껏 솟아오른 개구장이 광대뼈를 하고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거실 한가득 면봉을 쏟아서 흩어놨다.

"이게 뭐야!!!"하면서 발을 동동 굴러 줬더니 몸까지 부르르 떨면서 좋아한다. 

오늘도 성공!! 이런 느낌이다.

그리고는 흩어진 면봉을 나랑 같이 열심히 주워 다시 통에 담는다.




오랫동안 나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게 싫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시절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숨죽이고 울었지만 또 다른 내가 나를 달래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편이 인간다운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고개를 흔들며 눈을 부릅뜨고 참던 나는, 인간답지 않았을까.

<추억이 뭐라고> p.96 - 사노 요코


하레에게 옷을 입히거나, 손톱을 깎아줄때 문득 어린 시절의 영상들이 플래시백처럼 찾아오곤 했다.

잊고 지내던, 잊고 싶었던, 혹은 잊어야만 해서 억압했던 반갑지만은 않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스스로 옷을 못 입고, 손톱도 못 깎을 만큼 어렸을 때 느꼈던 엄마의 손길.


내 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다.

내 옷의 지퍼를 억세게 주워 올리고는 양 손으로 내 몸을 훽!하고 돌려서 등을 세게 떠민다.

손톱을 깎을때도 손을 마치 터트리기라도 할듯이 꾹 눌러쥐고는 신경 가까이까지 바짝 잘라서 손톱을 깎는 일은 늘 '너무 아프다'라고 생각했었다.

목욕을 할 때는 마치 싱크대의 묵은 때라도 벗겨내듯 억센 때타올로 등 껍질을 다 벗겨내고는 뜨거운 물을 부어 아파하는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때를 밀어낸 것을 후련해했다.


나는 하레의 통통하고 작은 손을 잡고 혹시라도 연약한 손톱을 잘못 자를까봐 늘 조심조심하는데, 내 기억 속에 엄마가 나를 어루만지는 손길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거칠고, 분노를 억누르고 있고, 그럴싸한 명분만 있다면 한 대 후려치고 싶다라는 호전성마저 느껴졌다.


아마도 내가 5,6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얇은 쇠로 된 어른용 밥숟가락이 내 입엔 너무 커서 입가 양 옆이 살짝 찢어졌던 적이 있었다.  

나도 작은 어린이용 숟가락을 갖고 싶었다. 

엄마는 사주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마다 찢어진 상처에 숟가락이 닿아 너무 아팠다.

하지만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나는 게 더 무서워서 꾹 참고 먹었다.


어른이 되고나서 내 자취방에 놀러왔던 엄마가 이제는 '필요하지도 않은, 원하지도, 갖고 싶지도 않은' 식판을(어렸을때 식판에 밥을 먹고 싶어서 엄마에게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자꾸만 사주겠다고 해서 됐다고 만류하며 그때의 숟가락 사건을 이야기하자, 엄마는 "어머, 그랬니?? 난 몰랐어!!"라고 했다. 


그땐 엄마가 정말 몰랐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하레를 돌보다보니 자기 아이의 입이 찢어진 걸 몰랐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아이가 매일매일 미묘하게 키가 자라는 것까지, 몸무게가 느는 것까지 느낄 수 있다.

자고 일어나서 얼굴에 뭐 하나만 돋아 있어도 이불 진드기인가 싶어 침대 이불을 다 뒤집어 빨고, 작은 상처 하나만 생겨도 예민해지는데, 버젓이 입가가 찢어져있고 밥을 먹을 때마다 고통스러워 하는데 몰랐다고?


이런 게 엄마가 주장하던 '사랑'이었구나.

게다가 그 '사랑'이라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내가 좀 더 잘하면 이번엔 정말 엄마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평생을 매달렸던 게 허탈하고 화가 나고 또 슬펐다.


그래도 이제 이런 가슴아픈 사건들을 '떠올려도' 될만큼 내가 어른이고 '안전'하다는 것에 안도감 또한 느꼈다.

긴 기간동안 나를 돌보면서 내가 '알아도 될만한 사건'들만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라는 걸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곱 살 때 이미 아줌마였다.

<사는 게 뭐라고> p.139 - 사노 요코


나는 누나를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컸어.

동생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심지어 하레엄마와 신혼일때, 나한테 잘하라며 '나한텐 누나가 엄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나도 그렇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인데, 하레를 돌보면서 마치 손주를 키우는 할머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때가 많았다.

6살 터울인 동생을 '아들'처럼 키웠고, 그 아들이 낳은 아들.

어쩌면 나는 내 아이를 키우는 게 두려웠던 게 아니고 너무 어린나이부터 엄마도, 동생도 내 아이처럼 돌봐야해서 진저리가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레야말로 '처음'으로 '진짜 어른'이 된 내가 '아이'를 돌보는 거라 다르게 다가오는 걸수도.


동생이 태어나고 병원에서 처음 집으로 왔던 날이 기억난다.

그 날 포대기에 돌돌 감은 동생을 품에 안고 엄마가 나에게 보냈던 눈빛도 생각났다.

'나한텐 이제 새로운 아기가 생겼어. 넌 필요 없어.'


그때 나는 7살이었다.

동생이 오기전까지 나는 엄마랑 아빠랑 한 방에서 같이 잤다.

아빠는 '니가 하도 몸부림을 치면서 자니까, 아기를 깔아뭉개 죽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너는 '다 컸으니까' 오늘부터 니 방에서 혼자 자야한다고 했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혼자 자야 하는 것도 무섭지만 내가 '아기를 깔아뭉개 죽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그럼 '벽에 붙어서 따로 떨어져서 자는 건 괜찮냐'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원래 내가 누워자던 자리엔 엄마, 아빠, 아기 동생이 자고 나는 방 가장자리 벽 근처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창문 바로 아래 누운 내 얼굴 위 커튼 사이로 11월 초겨울의 찬 공기가 느껴졌다.

그렇게라도 혼자 자지 않아도 되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도, '다 큰' 내가 어두운 게 무서워서 혼자서 잠도 못잔다는 게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어린 동생을 업고 데리고 다니며 키웠다.

동네 아줌마들이 '애가 애를 업고 다닌다.'며 놀랄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소리야? 난 다 컸는데.'




"걱정 마세요, 그를 죽여 버릴 거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제제? 네 아빠를 죽이겠단 말이냐?"
"그래요. 전 이미 시작했는걸요. 꼭 빅 존스의 권총을 빌려 빵, 하고 쏘는 것만이 죽이는 게 아녜요.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에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언젠가는 완전히 죽게 되는 거에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J.M.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계속 들었다.

어렸을때 굉장히 슬프면서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는 느낌은 어떨까 궁금했다.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빈민가 대가족의 화받이를 하는 한 소년, 제제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제제를 사랑해 주는 '정신적인 아버지'였던, '뽀르뚜가' 아저씨와의 우정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제제는 자신안의 '악마'가 충동질한다,며 툭하며 말썽을 부린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만, 지금보니 고작 '다섯살 반'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일곱 살이다.

이런 아이가 스타킹으로 뱀을 만들고, 바닥에 초를 칠해서 누군가 넘어지길 기다리고, 공을 던져서 무언가를 깨는 건 그 나이 또래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 아닌가?

그런데도 '나쁜아이'라고 온갖 욕을 듣고 모진 매를 맞는다.


제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받아서 속상한 나머지 '가난한 아빠'를 원망하다가 그걸 듣고 의기소침해진 아빠를 위해 구두통을 메고 나가 번 돈으로 아빠에게 담배를 선물한다. 

선생님이 준 돈으로 산 음식을 자기보다 가난한 아이와 나눠먹고, 자기 동생을 '왕'이라고 부르고 아끼면서 '나도 저 나이땐 그랬으니까'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애늙은이다.


직장을 잃은 아빠를 위로하기 위해 '다섯살 반' 아이가 뜻도 모른채 그냥 아름다운 노래라고 생각해서 불러준 '난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라는 노래를 듣고 아빠가 아이를 모질게 때리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읽어 내려가기가 힘들었다.  


다섯 살 반인 제제는 벌써 '생을 마감할 생각'을 다각도로 한다.

기차에 몸을 던질까?

아빠를 도발해서 맞아 죽을까?


뽀르뚜가 아저씨에게 '나를 아들로 데려가 달라'고 호소한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뽀르뚜가 아저씨는 불의의 기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나도 어린 나이부터 죽음을 생각하고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옥상에서 뛰어 내려서 엄마를 '후회하게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딘가로 입양되고 싶어하고,

집이 무섭고,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내가 '제제'의 이야기에 공명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내가 학대아동이라는 자각조차 없었는데도.


나에게도 뽀르뚜가 아저씨같은 존재가 있었더라면, 어쩌면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헤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이 있었더라도 제제처럼 칭찬을 받으면서도 '이 아저씨는 형이 말하는 것처럼 정신이 이상한게 틀림없다'고 믿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됐다, 다 지난 일.

지금은 알았으니 됐어.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으니 됐어.

지금은 나의 학대자를 분명히 인지하고 거리를 두며 나를 지키고 있으니 됐어, 라고 생각했다.




제제의 상처와 고통은 누구라도 분명하게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내가 겪은 학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너무나 미묘한 것이라 나 스스로도 '심증'밖에 없었고, 감히 엄마의 '사랑'을 의심한다는 이유로 한평생 나는 참 '나쁜 아이'라는 자책을 안고 살았다.

같은 일을 겪은 동생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아직까지도 이유도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오랜 이간질로 사이가 소원해졌던 동생을 다시 만나 날이 밝아오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그 날, 나는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얼마전에 구의동 고3 존속 살인사건에 대해 자세히 읽어 봤는데...난 그 아이의 심정을 너무나 이해할 것 같은거야. 만약에 정말 엄마가 나를 굶기고, 잠까지 안재우고 계속 후달궜다면, 내가 '그 아이'같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겠다고 생각했어. 난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차타고 어디 먼데라도 가는 날이면 이대로 사고가 나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어.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나쁜 아이'같아서 괴로웠어."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동생이 말했다.

"나도...그랬어."




아마도 나는 정말 '착한 아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그렇게까지 '나쁜 아이'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아이'였다.

가끔은 말도 안듣고, 거짓말도 하고, 장난도 치는.


엄마, 아빠와 거리를 두면서 친척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내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대해 증언해 줄 제대로 된 어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생각에 허탈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하레를 돌보면서 어린시절의 내 모습을 막연하게나마 상상해볼 수 있고, 그때 있었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새록새록 떠올라서 어쩌면 이런 식으로도 나의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시절에 자기가 해소하지 못했던 이슈들과 대면하게 되면서 '같이 성장'한다고 하던데, 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하레 나이일 때, 떠오르는 기억들은 죄다 아픔과 슬픔, 고통과 공포뿐이다.

나는 하레가 어른이 되어서 유년기를 떠올릴 때, 아픔보다는 따스함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능한한 따스함으로 아이의 가슴속을 가득 채워주고 싶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부모가 싫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너무너무 밉기도 합니다. 

분노도 느낄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그 감정을 두려워합니다. 

버리지도 못하고 미워하지도 못하는 부모에게 갖는 그 당연한 감정에 오히려 자신이 더 불안해하고 괴로워합니다. 

사실 그런 부모 밑에서 미움이나 분노보다 두려움을 더 크게 갖는다는 것은, 이미 '나'는 그 부모보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증거에요. 

스스로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 많은 순간 자신을 채찍질해 왔을 겁니다.


<오은영의 화해> p.25 - 오은영

매거진의 이전글 24. 너와 함께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