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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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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유주 Jan 24. 2021

32.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에 관한 기억

엄마라는 병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엄마는 자신이 행복할 때 잉태한 아이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러나 불행하고 괴로울 때 생긴 아이에게는 애정을 느끼기 어렵다. 남편에 대한 애정도 아이에 대한 애정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생긴 아이에게 엄마는 애정을 느끼기 쉽지 않다. 이런 감정이 일시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엄마와 아이의 유대감이 안정적인지 아닌지는 어린 시절 두 사람의 관계가 거의 결정하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병> p.28 -오카다 다카시




오카다 다카시의 책 <엄마라는 병>을 읽다가 어째서 외할머니가 생의 마지막에 그렇게 삶에 집착하며 죽기 싫어 했었던가,를 문득 깨닫게 됐다. 

할머니는 몇 년 전, 내가 외국에 나가 살고 있을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내 꿈에 나온 할머니는 "유주야, 죽기 싫다."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며칠 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듣고, 예지몽이었나? 신기하다. 그런데 왜 내 꿈에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에게 별다른 애착을 느끼지 못하듯, 할머니와도 도무지 '끈끈한'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나는 줄곧 외할머니가 왜 그렇게 '죽기 싫다'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멋지지도 않은 삶'이었잖아.

왜 그렇게 아둥바둥 미련을 갖는거지?




외할머니는 객관적으로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렇게 남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의 '할머니'니까, 내가 태어났던 때부터 쭈글쭈글한 '할머니'였다.

시골에서 몸빼 바지를 입고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할머니.

주름 투성이의 얼굴, 손과 발, 늘 보글보글한 파마 머리, 느릿느릿 걸어 다니면서 항상 화가 난 듯 무뚝뚝한 표정, 쏘아 붙이는 말투.


엄마, 아빠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나는 주로 밤 늦게까지 혼자 집에서 비디오, 책과 함께 방치되어 있거나 가끔 시골에 있는 외갓집에 맡겨지곤 했다.

말이 '맡겨둔'거지 외갓집에서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농사일을 나간 사이 그냥 집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부엌에 딸린 창고에 올라가서 쌀자루와 식재료 사이를 탐구하고, 거실에 놓인 쇼파 위를 타 넘어 다니면서 천장 마크라메 행잉에 달려 아래로 늘어지던 화초에 얼굴을 갖다대며 '정글'탐험을 하고 있다는 공상의 세계에 빠지기도 하고, 벽장에 기어올라가 외삼촌이 남기고 간 야한 잡지 같은 것을 읽기도 하고, 동네에 내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도랑에 가서 수영을 하기도 하고, 외할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결벽증이 있는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파리를 잡고,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집어서 버리는 걸 구경하기도 하면서 나름 즐겁게 보냈던 기억들이 남아있다.


당시 내 팔에는 사마귀가 두어 개 나 있었는데, 어느 날은 할머니의 문갑을 뒤지다가 사마귀를 제거하는 약을 발견해서 바르고는 손톱깎기로 뜯어내서 셀프 치료를 한 적도 있었다.

할머니의 화장대와 문갑을 뒤지면서 보루째 쌓인 담배나 화장품 같은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아아, 이렇게 남의 물건을 뒤지면 안되는데. 난 진짜 나쁜아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재밌어서 멈출 수 없었던 것도 생각난다. 


할머니가 해주는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어렸을 때 내 머릿속에 '외갓집'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던 건 '외갓집=맛없는 밥=끔찍한 화장실'이었다.

푸세식이었던 화장실에 가기 싫어서 외갓집에 가면 소변은 집 안에 있는 목욕탕에서 누고 재빨리 샤워기로 바닥을 씻어냈고, 대변은 보지 않으려고 거의 밥을 먹지 않았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하루는 할머니가 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라고 했다.

씽크대에 의자를 놓고 올라 서서 작은 그릇들은 할만 했는데 족히 10인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압력밥솥은 너무 무겁고 벽에 눌러 붙은 밥알을 떼는 게 힘들어서 분투했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과하게 반응하며 "오모나! 그으랬어??? 아휴~~ 불쌍해라!!"라고 오바를 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갑자기 생각나서 날씨 이야기를 하는 기분으로 이야기했던 건데 엄마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엄마는 나에게 항상 모질게 굴었으면서. 

아마도 그때 엄마는 그런 무뚝뚝한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였던 자신과 나를 동일시해서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해야 했던 '자신'을 불쌍해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밤에 잠자리에 베개를 모로 베고 누운 할머니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곤 했다.

어렸던 나는 할머니는 왜 항상 슬프지도 않은데 저렇게 울지...?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랑 같이 덮은 이불 아래에서 발가락으로 내 다리를 세게 꼬집으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발가락을 손가락처럼 자유자재로 쓰는 게 할머니의 특기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 나름의 애정표현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재밌기는 커녕 아프고 솔직히 말해서 좀 짜증이 났지만 억지로 참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안구건조증'으로 눕기만 하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누워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걸 봐와서 "아, 나도 이제 할머니가 되는가보다. 늙나봐."하고 당연한 노화증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겨우 32살이었는데.


엄마가 할머니에게도 전도를 해서 할머니가 성경 공부를 시작했을 때, 농사일로 고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돋보기 안경을 쓰고 앉아 꾸벅꾸벅 졸며 성경책과 ㅇㅇㅇ(엄마가 믿는 종교에서 발행한 책)에 꼬불꼬불한 밑줄을 긋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할머니가 내용을 이해는 하고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때 할머니는 한글을 깨우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종교의 신자가 되려면 담배를 끊어야 했는데, 할머니는 그걸 가장 힘들어 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매우 독한 담배를 피웠다.

바닥에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 오른팔을 올리고 먼 곳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긴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길게 길게 뿜어내곤 했었다.

엄마는 할머니의 흡연 습관을 '역겹다'며 경멸했는데, 그래서 할머니는 냉장고 위에 담배갑을 숨겨놓고 엄마 몰래 담배를 피우곤 했다. 


아무튼 내 기억 속 할머니는 도무지 호감형이 아니다.

엄마에게 어려서부터 마치 돌림노래처럼 듣던 '얼마나 아들만 예뻐했는지', '얼마나 무뚝뚝한 여자였는지', '얼마나 자식들한테 냉정했는지'의 영향도 적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를 그렇게나 미워한 할머니는 나쁜 사람일거야, 하고.

엄마는 '자기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말했으니까 틀림없이.




내가 외국에서 몇 년간 살기 위해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 할머니가 있던 요양 병원에 간 적이 있다.

할머니가 나를 "유주야!"하면서 너무 반가워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그리웠나?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누군가가 나를 '예뻐하고 보고 싶어하고 사랑스러워한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어색해 하고 심지어 의아해 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오랜만에 본 손녀가 반가운 건 당연한 건데도.

항상 엄마로부터 구박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게 너무 익숙해서.


병실 가득 기저귀를 찬 희고 짧은 머리의 할머니들이 마치 신생아들처럼 누워 있었다.

다만 신생아들은 '삶의 시작'이고 할머니들은 '삶의 마지막'이라는 것이 괴로웠을 뿐 할머니를 향한 특별한 '개인적인 감정'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할머니, 죽지마요!!'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역시나 '매정한 사람'이구나. 엄마가 맞네. 나는 차갑다,라고 생각했다.


병원을 나온 엄마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면서 '저렇게까지 살려고 하는'(할머니는 며칠에 한 번씩 신장 투석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를 경멸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유주야, 엄마는 만약에 저렇게 해야 하면(그러니까 병원에서 투석이나 인공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일) 하지마!"라고 말했다.

그때는 '곧이 곧대로' 듣고, 아,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막상 저런 상황이 되면 '엄마의 뜻을 따라주어야 할지' 아니면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삶을 연장시켜야 할지' 역시 고민될거야. 너무 괴로울거야. 하고 혼자서 벌써 그 상황이 닥치기라도 한 듯 고민했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하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막상 그런 날이 오기라도 해서 내가 의사 앞에서 눈도 깜빡하지 않은채 "엄마는 '이런 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걸 원하지 않아요. 그냥 보내주세요."라고 한다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면서 "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구나. 이제 니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다. 다른 집 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엄마를 하루라도 더 보려고 하는데...."하면서 난리를 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되면 분명 자기가 했던 말은 이미 잊었을거다.




<엄마라는 병>에서 아이가 엄마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눈치를 보고 자기를 맞추면서 기를 쓴다,는 부분을 읽는데 문득 무뚝뚝한 할머니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를 썼을 엄마의 유년시절이 왠지 짠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하고 어째서 할머니는 '그런 엄마'가 되었을까 하는 깨달음도 찾아왔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구나!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

단 한 번뿐인 삶에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것 자체가 할머니에겐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다. 


애정 없는 결혼생활, '쓸모없는' 딸만 줄줄이 낳으며 눈치를 보고, 끝도 없는 고된 농사일에 지치고, 힘들게 얻은 외아들은 양아치가 되어서 부모의 재산만 호시탐탐 노린다.

할머니는 삶에 진저리가 난다.

모든 것이 싫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그 모든 화를 자식들에게 푼다.

"밥만 축내는 버러지같은 기지배들 다 나가서 뒤져버려라!!"고 소리를 지르고, 자식들에게 낫을 던진다.

'멋지지 않은 삶'이었기에 더 아둥바둥 미련을 가졌던 것이다. 

꿈꿔보던 삶의 언저리에 단 한 번 어슬렁거려 보지도 못한 채 이렇게 눈을 감는다는 게 너무나 원통해서.

이제야 할머니의 마음을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할머니의 인생과 죽음을 애도하며 잠시 울었다.


우리가족의 '얽힘',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엄마라는 병'이라는 트라우마가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다는, 내가 나의 '상처'를 잘 치유해 나가고 있다는 증거인 걸까?

지금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니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할머니의 마음까지 공감하고 같이 슬퍼할 수 있게 된 것은?




엄마라는 병이 치유되면 누구나 따뜻한 인간으로 변한다. 타인과 공감하게 되고,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부모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그동안 자신과 타인을 증오하고 원망하게 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좀먹고 있던 독이 수정처럼 투명한 결정이 되어 마음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럴 때 우리는 깨닫는다.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왔던 것이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는 것을. 그 괴로움조차도 지금의 자신이 되는데 꼭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라는 병> p.222 - 오카다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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