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아, 미안해.
지난 주, <그것이 알고싶다 - 정인이는 왜 죽었나? 271일간의 가해자와 방관자>를 보는 내내 참 많이 울었다. 시청하는동안 너무 고통스러워서 신체적인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로 괴로웠다.
극한 공포와 고통속에서 말도 못하고 죽어갔을 예쁘고 작은 아기 정인이를 생각하니...참담했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아동학대의 가해자에게는 공통점이 없다'며 정인이의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렸던 '편견'과 '통념'을 조심하자고 여러 번이나 강조하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마치 '친엄마'가 아니라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16개월 입양아 사망사건'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이미 사람들의 '편견'을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이건 그냥 '정인이 살인사건'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사건의 본질은 '성에 찰 만큼 대단하지 못한 자신을 도덕적 우월감과 천사표 인간으로나마 포장하기 위한 미친부부의 악성/병적 나르시시즘에 소도구로 희생되고 버려진 아이'이지 '양부모'나 '입양'따위의 '피가 섞이고 안 섞이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을 '혈연이 아니어서 일어났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양모 장씨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주장했던 '입양가족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가슴으로 낳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훌륭한 부모, 가정을 욕되게 하는 일 말이다.
정인이의 상처들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기고 신고를 하고, 정인이가 죽기 전 날까지도 세심하게 아이를 살피고, 지랄발광하는 엄마 몰래 병원에 데려갔던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위탁모, 학대 의심 신고를 했던 의사, 시민, 이 사건에 공분하는 온 국민들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정인이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슬퍼하고 애도한다. 이렇게 예쁘고 작은 아이를 아랫집에서 '덤벨을 던지는 줄 알았다'고 항의하러 올라올 정도로 때려 죽일 수 있다는 걸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이 알고싶다>팀에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던 그 '타격실험'을 하기 전까지 나는 설마, 혹시라도 진짜 아이를 실수로 떨어뜨린 거 아닐까? 그런데 아이가 구르면서 정말 사고가 일어났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정인이 사건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두 가지 의문은
- 도대체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 있나?
- 악마인가?
일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궤적을 크게 벗어난 곳에 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이 '나르시시스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들을 알아볼 수가 없다.
↑ 정인이의 양부모 두 명은 나르시시스트의 모든 특징을 전부 다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입양아를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일은 자신의 완벽한 자아상에 상처를 입힌다.
그러니 자신이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정인이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이미 사건이 다 밝혀진 지금이야 경찰과 아동보호기관, 입양기관, 소아과 의사 등에게 왜 구할 기회를 놓쳤냐고 맹비난하기 쉽다. 하지만 나는 막상 보통 사람의 사고방식을 초월한 정인이의 양부모가 앞에서 '멀쩡한 척하며 주둥이를 털어대면'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하는 깊은 의문을 갖고 있다.
"사실이 아니야!" "꿈이라도 꾼 거 아냐?" "거짓말, 네가 언제 나한테 그랬니?"
심리 조종자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사실이 빤히 밝혀진 후에도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허위 발언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 이러한 경험 자체가 몹시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상대가 아니라고 끝내 고집을 피우면 혹시 자신의 기억이나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닐까 의심하곤 한다. 감정에 귀 기울이기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부인이 극도로 미묘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굿바이 심리조종자> p.41 - 크리스텔 프티콜랭
정인이가 아무리 야위고 멍들고 아프고 안색이 어두워져도 사람들은 이중으로 눈이 가려질 수밖에 없다.
1. 두 얼굴을 가져서 바깥에선 대단한 부모 코스프레를 하며 방송출연까지 하고 그럴싸하게 번지르르한 말과 태도를 가진 부모의 현란하고 모호한 말솜씨에 일단 정신이 쏙 빠지고
2. 아이를 키우다보면 눈깜짝할 사이에 아이가 다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공감, 짐작해 버리는 것이다. '설마' 이렇게 작은 아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일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을 갖는 일조차 보통 사람들에겐 불가능하다.
또 이 사건의 한가운데서 간과되고 있는 또 한 명의 학대 아동이 있다.
바로 이 부부의 친 딸이다.
이 두 미친 나르시시스트 부부의 모든 '부정적 투사'가 정인이에게로 집중되는 동안 이 아이는 동생이 엄마, 아빠에게 학대당하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지켜 봐야하는 비인간적인 환경(심지어 이 미친 부부는 학대동영상을 800개나 촬영했다는 걸 보면 이 상황을 꽤나 즐긴 것이 분명해 보인다!)에서 극단적으로 오락가락하는 감정상태를 가진 부모를 견뎌내야 하는 정서적 학대를 당했을 확률이 높다.
심지어 양쪽 조부모들도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알고도 방치하거나 혹은 동조한 정황이 포착된다.
이 아이 주변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알려줄 제대로 된 어른이 없어 보인다.
정인이보다 '조금 나은 상황'이었을 뿐이다.
이 아이에 대한 신속한 구조와 지원도 진행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실험조차 너무 비윤리적이라고 욕먹는 요즘 나르시시스트 엄마를 가진 유아의 '모성 박탈 실험'을 실제 두 눈으로 본 사람은 아마 희귀하겠지.
그래서 내가 실제로 봤던 것들을 지금부터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정인이가 죽기 바로 전 날, 어린이집 CCTV를 본 전문가는 '무감정' 상태를 지적한다.
나는 이런 아이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바로 내 조카 하레다.
결국 아빠가 이혼을 결심해서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전까지 자기 엄마에게 시달려서 눈 속이 텅 비어있고, 아무런 반응도, 동요도 하지 않고, 울지도 않고, 무기력하게 바닥에만 가만히 누워 있는 아이를.
그리고 그 아이의 친엄마는 정인이의 양모 장씨와 모든 면에서 소름돋게 똑같았다.
심지어 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렇게 자기가 뭔가를 처먹고 있을때(배달음식 좋아하고 집에 쌀도 없는데 쌀벌레 나오는 것까지도 똑같았다!) 아이는 안중에도 없는 것, 아이는 영양실조로 나날이 아프고 야위어 갔던 것, 심지어 식탁과 의자까지 그 여자랑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맘 카페/쇼핑 중독, 보여주기식 SNS 중독, 멀쩡한 인간인척하기, 헌신적인 엄마 코스프레, 사치, 성형수술 중독, 과시욕, 욱하고 충동적인 성질머리, 폭력적인 성향, 두 얼굴, 불리하면 눈물로 호소하기...
어쩌면 정인이의 사건을 보면서 이 여자에게 조카를 인질로 잡혀 있는 것 같았던 나날들이 생각나서 더더욱 감정이입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가슴 아프게도 집 안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특성상 학대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비극적이게도 '바깥'으로 문제가 불거져 나온 후에는 아이가 이미 사망한 뒤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해자의 신상을 까발리고 분노하고 울고 욕해봤자 이미 떠난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적어도 이 글을 통해서 혹시라도 주변에 이런 징후를 보이는 아이가 있다면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단 한 명이라도 '아이의 부모말만 믿고' 정인이같은 아이를 만들어내는 방관자가 되는 일을 예방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을 담아 본다.
이 세상 어느 동물보다도 유아기가 길고 신체적으로도 연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아이가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이는 살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이에게 애착은 중요한 생존 본능이다. 자신을 돌봐주고 보호해줄 더 강한 존재를 찾아서 생존을 의지해야 한다.
(중략)
아이는 자라날수록 젖을 먹기 위해서가 아닐 사랑을 나누고 친밀감을 느끼고자 어른에게 달라붙고,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슬퍼하고 좌절하며 공포를 느낀다. 심지어 젖을 먹지 못할 때 굶어 죽는 것처럼 이러한 유대감을 느낄 수 없을 때도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0~5세 애착 육아의 기적 - 이보연
만에 하나 본인이 주장하는대로 모든 게 다 사고였고 신체적인 폭력이 없었다고 치더라도 아이를 혼자서 방과 차에 방치하고 몇 시간이고 자리를 비웠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모 장씨는 강력한 아동학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러지거나 찢어지는 외상이 없다고 해서 학대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은 명백히 개선되어야만 한다.
심지어 정인이에게는 쇄골 골절과 온 몸에 멍이라는 외상이 있었음에도 전부 다 무시되었다는 게 정말 억장이 무너진다.
유아에게 '정서적 박탈'이란 곧 '발육 정지'와 '사망 선고'나 동일하다.
그걸 제공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살인'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져야 한다.
실제로 정서적 말살이니까.
인간에게 필수적인 감정적 자양분인 공감과 동조를 입양된 이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을 정인이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심지어 다 큰 성인에게도 고의적인 정신적 괴롭힘이나 따돌림같은 사회적 고립은 여러가지 신체적, 정신적 질환의 원인이 되며 성적,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해롭다. 혹은 그보다 '더 해롭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개는 자신을 때리는 손을 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손은 동시에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손이기 때문이다.
<3096일> p.166 - 나타샤 캄푸쉬
'아이가 아빠에게 잘 안겨있었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경찰의 판단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자기 상황이 비정상인지도 모르고 다른 옵션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16개월짜리 아기가 자기가 아는 유일한 어른인 아빠에게 매달려 있는 것 외에 도대체 무슨 선택을 할 수 있나?
심지어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된 아이들도 경제적, 신체적, 감정적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부모에게서 분리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주어져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도 '충분한 애착'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학대자의 애정을 갈망하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만 3세였던 하레에게 새로운 보호자가 생겨서 '진정 사랑받는 느낌'이 뭔지, 누가 자기를 진짜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눈치채자마자 바로 친엄마에게 전혀 애착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도 다 안다.
다만 정인이는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걸 알기에 너무 어렸고, 안타깝게도 실제로 아무런 대안도 주어지지 않은채 생을 마감해야 했다.
엄마의 오랜 방치와 학대로 감정적 마비, 유아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조카 하레가 보였던 증상들이다.
하레도 3돌이 되기 전까진 외할머니가 돌봐줘서 해맑은 아기였지만, 엄마, 아빠가 분가해서 아빠는 직장에 가고 엄마랑 단 둘이 있는 나날동안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야위어갔다.
'도대체 엄마랑 단 둘이 있으면서 아이가 무슨 일을 겪은 걸까...' 애가 탔지만 하레는 방치가 너무 심했던 나머지 그 나이에 당연히 해야 하는 간단한 말도 못했다. 또래보다 1년 넘게 말이 뒤쳐졌다.
말 못하는 아이의 이상행동을 관찰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유추해 보았던 내용들이다.
정인이와도 놀랍게도 유사한 것들이 있어서 정리해 보았다.
1. 울지 않는다.
스스로 욕구를 조절하고 떼쓰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한 뇌 발달은 만3세가 넘어야 이루어지며, 심지어 엄마와의 수없이 많은 훈육과 조율이 거친 이후에야 발달되는 능력이다.
그런데 말도 못하는 아기가 자신의 욕구와 의사를 표현할 유일한 방법인 '울음'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건 울때마다 강력한 '처벌'이 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하레는 정작 참지 못해 울어야 할 때가 오면 마치 누군가 입을 틀어 막고 있기라도 하듯 소리도 못내고 눈물만 줄줄 흘리면서 겁에 질린 눈으로 울곤 했다.
2. 지나치게 고분고분하고 절도 있다.
1번과 이어지는 맥락이다.
이비인후과에서 콧물 석션을 하는데도 미동 하나 없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그만 가지고 놓으라고 하거나, 유모차에 타라고 하는 모든 지시에 잘 훈련받은 절도있는 군인처럼 반응한다.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 강력한 '처벌(학대)'이 있고 길들여진 아이가 보이는 반응이다.
3. 대변을 보면 안절부절 못한다.
엄마 장씨가 정인이에게 했던 짓들이다.
- 똥냄새와 뒷처리가 싫어서 돌 지난 아이에게 이유식과 떡뻥, 분유만 먹임.
- 어린이집에는 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먹이지 말고 직접 만든 이유식을 먹여달라며 챙겨서 보냄. 그 이유식은 보기에도 냄새도 이상하여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추측하기 어려웠음. 일주일 내내 같은 메뉴, 살코기는 거의 없었고 비계덩어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음. 어린이집에서 장씨 몰래 밥을 먹여서 그게 똥으로 나오면 밥을 왜 먹였나며 어린이집에 난리침.
기저귀 갈기가 귀찮으니 너무 이른 나이에 배변훈련을 시도하고 똥을 쌀때마다 애를 쥐 잡듯 잡은 듯 하다.
그래서 아이가 대변을 볼때마다 급격하게 겁에 질린 눈과 얼굴로 내 눈치를 보며 밀쳐내고 구석에 가서 숨곤 했다.
아기에게 자연적인 생리 현상 조절까지 강요하다니,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에 피가 거꾸로 솟아 올랐었다.
식단도 매우 부실했는데, 오뚜기 사골육수용 인스턴트 멀건 국에 밥만 말아 먹이거나 김을 싸먹이거나 오징어 다리 끝부분만 먹이거나, 라면 면만 먹이는 날들이 많았다.
보다못한 어린이집 친구 엄마가 짜장밥을 해다 준적이 있었는데, 그 날 하레가 엄청 잘 먹었다고 했다.
나중에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고나니, 하레는 짜장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날은 배가 고파서 먹었던 건지, 혹은 안좋은 기억으로 남은건지는 몰라도.
4. 호기심,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텅빈 표정과 눈)
한창 자아와 세상을 탐구해야 하는 것이 일인 아기가 세상에게서 호기심을 거두어 들인채 자기 안에 침잠해 있다.
자신의 표현하는 감정들에 동조받지도 못한채 공포에만 익숙해진 나머지 스스로를 마비시킨 상태다.
눈을 마주치거나 웃거나 울거나 하는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을 전혀 하지 못한다.
눈이 텅 비어 있다.
5. 기운이 없이 누워 있거나 잠을 지나치게 많이 잔다.
만3세 남자아이를 키워 본 엄마들은 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기운이 넘쳐야 할 아이가 하루종일 누워 있는다.
어린이집에서도 키즈카페에 가서도 누워 있는다.
밤엔 눕자마자 고꾸라져서 자고 지나치게 많이 잔다.
낮에도 누워서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6. 발육 부진 + 계속 아프다.
하레는 동네에서 맨날 아픈 애, 어린이집 와서 감기/폐렴 옮기는 민폐 끼치는 애, 어딘지 낮빛 어두워서 기분나쁜 애였다.
엄마한테 학대 당하고, 제대로 못먹고, 사랑도 못받으니 '당연한 결과'다.
엄마가 사라지자마자 얼굴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뽀얗게 생기 넘치게 피어나 전혀 다른 아이가 되서 동네 사람들이 다 놀랐을 정도다.
이 나이대의 아기들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쑥쑥 자란다.
주말 이틀동안 못본 사이에 쑥 커져 있는 게 느껴질 정도로.
그런 유아에게 심지어 몸무게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면 분명한 학대징후다.
아파서 밥을 못먹어서 몸무게가 줄어 들어도 제대로 돌봄을 받는다면 며칠 이내로 바로 원상복귀된다.
7. 강박적 행동과 집착
단순히 애착 인형이나 이불같은 자기 물건이 없으면 잠을 못 자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고 '무서운 집착'을 보인다.
물건들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하나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폭력적으로 짜증을 냈다.
친구집에 가서도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꼭 가져와야만 성에 찼는데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증상들은 애가 '막돼 먹어서가' 아니라 뭐 하나 질서정연하지 않은 세상에서 불안을 느끼는 아이가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절박한 시도라고 한다.
엄마가 사라지고 정서가 안정되자 이런 증상들이 전부 사라졌다.
하레네 엄마와 함께 어울리던 어린이집, 동네 아파트 단지 엄마들은 하레 엄마가 '하도 멀쩡한 척'을 하고 돌아다녀서
1. 정말로 멀쩡한 줄 알았다. 전혀 이상한 줄 몰랐다.
2. 언뜻언뜻 드러나는 언행 불일치가 어딘지 좀 꺼림칙했다.
3. 진작 알아보고 피했다.
로 나뉘었는데, 3번은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리고 1번과 2번이 반반이었다.
안타깝게도(!) 1번 반응을 보이는 사람일수록 '착한 사람', '좋은 엄마'인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하레네 집에 놀러갔다가 지진이 난 것 같은 집구석과 거실 바닥에 곰팡이가 핀 딸기 꼭지를 보고도 '아이를 키우는 집이니까 그럴 수 있지'하고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고 넘어간다. 그 이상으로 '사고력'이 뻗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하레엄마의 모든 만행을 다 듣고도 '그래도 아이에겐 엄마가 필요하다. 하레 엄마가 이제라도 싹싹 빌고 다시 돌아오면 안되냐.'라고 너무나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물어봐서 나는 그냥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아마도 정인이의 수사했던 경찰, 아동보호기관 등의 사람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실은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라서 '설마' 그 이상을 생각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짐작해보는 이유다.
혹시라도 주변에서 이런 증상을 보이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애 엄마가 아무리 멀쩡해 보이고 우리애가 특이하다고 주장을 하더라도 꼭 한 번 유심히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또 한 가지!
일반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아동학대의 80%는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러니 '설마'하는 편견에 또 한 번 눈이 가려져 구해낼 수 있는 아이를 못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할 때 '해리'전략을 통해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마음을 마비시켜서 그러한 순간들을 견뎌냈던 아동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긴장되고 불안할 때 이전과 같은 해리 증상을 보입니다. 그러면 대인관계 부적응자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은 가장 위험하고 힘든 순간에 도움이 되었던 대처 전략을 쉽게 포기하려고 하지 않죠.
처음 보자마자 매달리고 신체를 밀착하려는 아동은 매달리는 대상에 대한 인식 없이 마치 굶주린 아이가 헐레벌떡 눈앞에 놓인 음식을 먹어치우듯이, 안전과 보살핌을 얻고자 하는 절박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아동이나 또는 주변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면서 누구와도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는 아동은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싶지 않은 아이일 수 있습니다.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별이 된 아이들 263명, 그 이름을 부르다> p.67
#정인아미안해
예쁜 아가야, 고통 속에서 아프고 외롭게 세상을 떠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도 말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정인이같은 아이들이 더는 없도록 우리가 노력할께.
약속할께.
※극도로 고통스러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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