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던 사람들
당신이 처음 걸었을 때, 말했을 때, 울었을 때 항상 그 옆에 있던 사람들. 당신은 그 부모님의 젊었던 얼굴을 기억하시나요?
부모는 늘 푸른 존재였다. 자식을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쉼 없이 일하셨고, 지친 기색 없이 웃음을 보여주셨다. 부모는 원래 그런 존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는 젊은 날의 푸르름을 나에게 먹이셨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가족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지으시고, 나의 숙제를 함께 봐주시며,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내게 나눠주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시간을 나의 내일로 바꾸셨다. 30년이란 세월을 새벽 어스름에 나가 해가 저물 무렵 돌아오시던 아버지는 거친 바람으로부터 자식들을 막아주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푸르름을 내게 건넸다. 빛나는 젊음도, 하고 싶은 일도, 누리고 싶던 여유도 다 뒤로하고.
나는 그들이 부모라는 이유로 이미 완성된 어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진 속 젊은 그들을 보며, 문득 알게 되었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이였고, 설레는 연애를 했으며, 세상을 향해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그 모든 찬란한 시간을, 나를 위해 서랍 속에 고이 접어 넣었다는 것을.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늙히고, 자식은 그 늙음 속에서 자란다. 한 세대의 푸르름이 사라질 때, 다른 세대의 나무가 뿌리를 내린다.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자란다.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 속에서, 나는 어머니를, 아버지를 본다.
그들이 내게 해주었던 작은 배려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흘러간다.
나는 그들의 푸르름을 먹고 자라 지금 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가 또 내 그늘 아래에서 자라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돌고 돈다. 그들이 쏟아낸 젊음 위에, 내가 서 있고, 내가 내어주는 그늘 아래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이어진다. 한 사람의 희생은 또 다른 사람의 자람이 되고, 그 자람은 다시 새로운 생명을 위한 그늘이 된다.
나는 안다. 내가 지금 이만큼 설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가 자신의 젊음을, 웃음을, 시간을 나에게 건넸기 때문이라는 걸. 우리는 부모의 푸르름을 먹고 나무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푸르름을 내어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