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여행자로 살기로 했다
나는 이곳저곳 다니는 것을 참 좋아한다. 특히 집 앞의 산책로를 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걸 좋아한다. 같은 길을 걷지만 때에 따라 변해가는 계절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어쩌다 비행기를 타는 날은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다. 바쁜 일상을 벗어나 나의 생활의 경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매우 신이 난다. 그 기대감은 소진된 나의 체력을 원래의 상태로 순식간에 회복시킨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사람들은 분주하다. 일찌감치 들어와서 짐을 넣고 자리를 잡은 사람, 여행에 들떠있는 사람, 잠을 자려고 준비하는 사람, 지각해서 가쁜 숨을 내쉬는 사람등 긴 비행을 앞두고 제각기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하면 비행기의 창가 자리에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고, 비행기를 처음 타는 듯 중앙 통로 의자에 앉아 곁눈질로 창가를 응시라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의자에 부착된 모니터로 지도 위 경로를 손끝으로 따라가며, 비장한 표정으로 긴 여정을 맞는 사람도 있다.
모두들 '이동 중'이지만, 여행을 맞이하는 '태도'는 모두 다르다.
나는 비행기에 탄 사람들을 승객과 여행자로 구별하여 생각해 보았다.
1. 목적지에만 집중하는 삶, 승객
승객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눈엔 지금 지나치는 풍경보다, 몇 시에 도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들은 창밖을 흘끗 보지만, 그보다 더 자주 보는 것은 비행기 화면에 표시된 ‘도착 예정 시간’이다.
빠르게 승진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누군가가 정해준 성공의 좌표에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안심하는 사람들. 그들은 ‘잘 살고 있는지’보다, ‘남들보다 늦지 않았는지’를 더 걱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문득 생각한다.
"내가 지나온 길은 어디였지?"
2. 느리지만 나아가는 삶, 여행자
반면 여행자는 다르다. 그는 지도를 손에 들고도 방향을 틀고, 예상치 못한 골목에서 멈추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끔은 길을 잃고, 때로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지만, 그 순간을 ‘실패’라 부르지 않는다.
여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풍경이고 느낌이며 기억이다. 여행자는 ‘언제 도착하느냐’보다 ‘지금 이곳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를 묻는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조금 느려도, 때로는 뒤로 물러나도 자기만의 페이스로 걸어가는 사람은 결국 풍성한 이야기를 가진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걸어온 인생을 기억해."
우리는 모두 출발과 도착 사이에 산다. 하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승객처럼 살면 편하고 빠르지만, 공허할 수 있다. 여행자처럼 살면 힘들고 불안하지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어느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여행자가 되어 길을 잃고, 돌아서고, 때로는 멈춰 설지라도 그 모든 과정이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길을 헤매는 일이 줄어들진 않았지만, 한비야 책에 나온 글처럼 "길을 잃으면 헤매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생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여행자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