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속 개인이 자존심 세우는 법
자동 업데이트를 설정해 놓은 유튜브 어플.
오늘 접속해 보니 메인 화면이 백지이다.
무작위로 뜨던 메인화면 추천 영상들이 사라졌다.
몇 번을 새로고침해도 빈 화면. 안내 팝업을 누르면 시청 기록에 관한 여러 도움말이 뜬다.
그렇다. 유튜브에서 배짱을 부리는 것.
당신의 취향을 우리가 기록하도록 체크해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쉽사리 보여 주지 않겠다.
시청 기록을 수집할 수 있게 허가하라는 것이 요지이다.
피로감이 밀려든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한 지도 벌써 몇 년 되었다.
멜론 top 100에 수년간 익숙해져 처음에는 순위표 없는 유튜브 뮤직이 어색했지만, 알고리즘을 흐르며 무한히 추천되는 음악의 향연에 곧 적응했다.
광고 없는 쾌적한 영상 재생은 오히려 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조그만 자존심을 부려 왔다. 시청 기록만큼은 불허한다는 것.
안다. 전세계 유튜브 사용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개인 기록 하나 빠진다고 큰 흐름이 변하지도 않을 것이고,
데이터라고 해 봐야 모래사장에서 모래 한 알 집어 백사장 옆 도로로 던지는 정도 무게감이라는 것도.
하지만 초상권 약한 일반인이라고 해서 남의 브이로그 뒷배경으로 맨얼굴 나올 이유가 없듯이
빅데이터 속 몇 바이트를 누군가는 그저 비워두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그 사소한 '시청 기록' 남기기를 왜 이렇게까지 싫어할까?
남에게 밝혀서는 안 될 은밀한 취향이라도 있어서?
내가 유튜브의 끈질김이 불쾌한 이유는
그저 고객으로만 남고 싶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매대 상품으로 진열되는 것 말고.
그들은 나를 위한 서비스를 더 잘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당연히 그 너머의 의미가 더 크다.
서비스를 잘 제공받지 못하면 내 손해인데 기업이 이렇게 끈질긴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시청 기록은 알고리즘 개발에 반영되어 개인의 서비스 이용시간을 늘리고, 더 많은 고객을 끌어모으는 데 쓰인다.
뉴진스와 함께 MZ 양대산맥인 걸그룹 아이브가 노래했다.
'매일 너의 알고리즘에 난 떠'라고.
80년대생 이전 라떼들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를 부르며 자랐을 것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는 것과 너의 알고리즘에 내가 뜨는 것은 어떠한 차이일까?
TV에 나오는 사람은 대중의 선택을 받은 자이고,
알고리즘에 뜨면 그 알고리즘을 고른 당신이 선택한 존재라는 뜻이다.
알고리즘 속 인플루언서에 대한 감정이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상관없다.
이미 당신의 취향은 그를 '안 누를 수 없는 썸네일'로 인지했다.
도박판에 호구가 안 보이면 내가 호구라던가? SNS 세계는 그렇다. 상품이 안 보이면 내가 상품이다.
그래서 불쾌하다.
나는 상품을 이미 구매했기 때문이다.
유료 고객을 다시 상품으로 활용하려는 태도.
그 야심을 숨기지도 않는 오만함.
백지 화면이라니, 신문이라면 1면을 백지로 발행할 수 있겠나?
유튜브는 언젠가부터 대중의 취향이 반영되는 인기 급상승 동영상을 '굳이' 찾아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다른 칸으로 빼냈다.
메인 화면은 알고리즘 추천으로 채웠다. 혹은 '다른 시청자들이 시청한 동영상'으로.
그리고 업데이트 때마다 문제의 시청기록을 계속 요구하더니 이제는 회사에서 직원 책상 빼며 압박 주듯이 메인화면에서 영상을 뺀 것.
한때는 유튜브가 결국 신문이나 방송국 등의 레거시 미디어를 집어삼킬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업데이트로 생각이 바뀌었다.
세분화, 개인화를 추구하는 서비스는 절대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위 개념으로 올라갈 수 없다.
영향력이 예전만은 못하겠지만 레거시 미디어는 자기들의 입지를 공고히 유지할 것이다.
유튜브 스타가 방송국에 발 들이면 진정한 성공으로 평가받고, 연예인이 유튜브 채널에 등장하면 큰 걸음한 분으로 모시는 분위기가 뒤집히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자아탐구' 과잉 시대를 살고 있다.
잘 보아야 한다. 자아성찰이 아니라 자아탐구이다. 알고리즘도 넓은 의미로 기업이 제작한 자아탐구이다.
요즘은 자신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만 보이고 남이 하나도 안 보여서 더 큰 문제다.
기업들이 남을 볼 수 없게 손으로 친절히 가려 주기도 하고 말이다.
알고리즘이라는 상냥한 단어를 써서.
나는 최근 스스로 성벽을 쌓기보다 오히려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시도 중이다.
올 초부터 종이신문을 다시 구독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
‘안 누를 수 없는’ 썸네일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궁금해졌다.
방 안에만 있다 보니 거리의 사람들이 그리운 심리?
유튜브로 부동산 읽어주는 채널들만 봤었는데 신문을 읽으면서 평생 모르던 미국의 금융계나 우리 조선업의 현주소를 접했다.
**님이 관심 없을 것 같아서 '추천'받지 않는 다른 세상은 대체 얼마나 넓을까?
아마도 유튜브는 며칠 더 반응을 지켜보다 슬그머니 '다른 시청자들이 시청한 동영상'을 메인에 띄우며 다음 기회를 기약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앞으로도 개인의 취향을 요구하고, 또 거절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내 취향을 빅데이터 속 상품으로 가공할 생각이 없다.
그렇게 되더라도 스스로 결정할 일이고, 지금은 그저 충실한 고객으로 남을 생각이다.
그러니 개인으로 남고 싶은 사람들을 조금만 더 그대로 두기를.
에디터 픽에 선정되어 많은 분들께 읽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