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좀 격조했지요?
결국 유튜브에 아주 정을 붙이지는 못했다.
요즘은 모두들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에 열광하고, 숏폼 콘텐츠가 압도적으로 느는 추세라고 한다. 나는 오히려 유튜브 구독목록을 조금 정리했으며 이제는 알고리즘 추천을 받지 않으니 딱히 새로운 영상을 많이 보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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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뭐라도 읽는다. 어떤 글자든지.
어릴 때는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글 읽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신문을 읽고 세상 돌아가는 추세를 파악하거나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이북을 읽거나-두껍고 무거운 일론 머스크의 전기를 이북리더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잘 쓰인 글 말고 그냥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이야기가 궁금하면
네이버 블로그를 찾은 지 오래되었다.
아, 심기일전 브런치스토리로 거듭난 이곳에서 무슨 경쟁사 이야기냐고?
이유가 있다.
네이버 블로그는 글쓰기 푸시알람이 없어도 시간 날 때마다 들어가고 구독하는 블로거들의 새 글을 읽었다.
그만큼 브런치에는 발을 들이기 꺼려졌기 때문.
승인받기 위해 두 번이나 도전했고, 그만큼 꿈이 컸던 브런치인데 왜일까.
브런치 작가 심사에 처음 도전하던 때는 참 희망찼다.
새벽에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누워서 쓰기에는 너무 열정에 차 있었다-폰을 또닥거리며 목차를 써 내려갔다.
한의사 면허만 있을 뿐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졸업생이 점차 직업인으로 커 나가는 과정을 정리하려던 곳.
지금은 번역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과정을 모아두는 장소이기도 하다.
생각할 것도 쓸 것도 많은데 이상하게 접속을 잘하지 않는다.
왜일까.
블로그에는 글을 쓰지도 않는데.
어디든 관심분야가 일정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은 톤 앤 매너라는 것이 존재한다.
다른 말로는 '콘셉트'.
드레스코드 있는 파티에 사람들이 한 콘셉트로 옷을 정해 입고 모이듯이 브런치에도 톤 앤 매너가 있다.
언젠가 출판작가 되기가 소망이라 브런치에 지원할 때에는 오히려 이곳의 톤 앤 매너를 몰랐다.
작가로서 가입이 승인된 이후 인기글과 새 글모음을 둘러보면서 문득 든 생각.
'여기는 뭔가 글을 멋지게 써야 할 것 같은데?'
=나 막 쓰면 안 될 것 같은데?
인스타는 슬픔이 없고, 브런치는 망글이 없다
애초에 글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그런가 한 편 한 편 신경 쓴 글이라는 티가 났다.
보편적 주제이며 모두 공감하기 쉬운 에세이에서 더욱더 느껴졌다.
브런치에서는 퇴사의 홀가분함도 너무 들뜨지 않은 채 차분했고 이혼이나 육아의 어두운 면마저도 너무 어둡지 않게 잔잔했다.
그게 얼마나 신나고 기쁜지, 그게 얼마나 눈물 나고 가슴 치게 만드는 일인지 우리 모두 이미 아는 주제인데도.
그게 문제이다.(저와 여러분이 문제라는 것이 아닙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렇게나 써서 올리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나중에 다듬어 올리려다가 그냥 아예 안 쓰게 되는 것.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던 기간에도 나는 계속 스마트폰 일기장에 글을 썼다.
일기장에서는 말도 안 되게 막 쓴 글이 판친다. 한 문장으로 끝나버린 날도 있고, 쓰다가 갑자기 뚝 끊겼는데 몇 달 뒤에 와서 결과를 통보하듯이 이어 쓴 일기도 많다.
브런치는 그렇게 쓸 수 없다.
어느 공간에서 수준 높은 글이 자주 나오려면 조악하게 막 쓴 글, 메모 수준의 끄적임이 그의 몇십 배나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글 리젠'이라는 표현이 있다.
새 게시물이 올라오는 속도를 의미하는 은어로, 글 리젠이 적은 커뮤니티는 망한 것으로 친다.
좋은 글 못 쓴 글은 둘째치고 일단 뭐라도 올라오는 게시물이 많아야 활성화된 커뮤니티이다. 소위 망글이 많이 깔려 있어야 그 안에서 좋은 글이나 인기글도 튀어나오는 것이다.
보통 브런치를 비판할 때에는 글의 주제가 협소한 점이 주로 꼬집힌다. 하지만 사실, 나만 해도 다른 한의사 글보다는 퇴사해서 누가 외국 갔다는 글에 사진이라도 구경하게 눌러본다. (죄송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 갖는 내용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통속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통속적인 내용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예술이 되기도, 그냥 일기로 끝나기도 한다.
주제는 아주 주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느낌에는 오히려 브런치의 톤 앤 매너가 너무 무겁기에,
문체가 가볍다 못해 의식의 흐름으로 ㅋㅋㅋㅋㅋㅋ대며 써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네이버 블로그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리라 본다.
(방금 윗 문장에서 ㅋ을 무려 여섯 번이나 친 것에 대해서, 그리고 내 브런치에 저 문장을 쓴 데 대해서 전문직이자 부업 번역가이자 출간 작가 지망생에게 알맞은 톤 앤 매너인지 고심하는 중이다.)
출간 작가가 목표라 여기에 발을 들였으니, 한 편 한 편 미래 작가(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보여줄 거야!
하는 마음에 힘을 빡 주고-그놈의 힘 빡빡 주는 습관은 근무와 일상생활뿐 아니라 글쓰기 습관에서도 여전했던 것이다-쓰다 보니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많이 써 보지도 않았으면서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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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래 쓰던 대로 아무 말 막 던지고 나와도 되는 스마트폰 일기장으로 다시 쏙 숨었다.
그리고 남의 생각이 궁금할 때는, 내 일기장과 비슷한 수준의 글과 막 던진 생각들이 넘실대는 네이버 블로그에 들어갔다.
네이버 블로그의 평균적인 포스팅은 브런치의 평균과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우선 그 곳은 자유롭다. 내돈내산 후기나 광고 댓글마저도 당당하다.
그리고 웃고 넘기는 글 속에서 번뜩이는 생각들이 있다.
지금 브런치는 조금 무겁다.
아까 방금도 브런치에 음-그래-번역가로서의 한 땀 한 땀을 기록해야지-하며 들어왔다가,
아 글이 너무 짧고 네이버 블로그스러운데 여기에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생각하다가,
구독자 20명이면서 무슨 자기 검열이 이렇게 '빡빡'한지 고민하다가,
오늘은 의식적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썼다.
언제 다시 후회하며 출간 작가 지망생으로서 한 편 한 편을 습작이라 여기며 무게감 있는 글을 남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브런치가 '흥'하려면, 우선 아무 말이 더 많은 공간일 필요가 있다. 작가 지망생의 등용문으로서 권위를 갖고 빠르게 자리 잡은 브런치이지만 지금은 그 무게감이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약간의 부담이 되고 있으니. 퇴고의 퇴고를 거친 글도 너무 좋지만 가볍고 산뜻하고 반짝이는 브런치를 보고 싶기도 하다.
팔딱팔딱 뛰는 생각이 채 식기 전 휘갈긴 글이 더 많아지고, 독자들이 그들과 더 즐겁게 만나면 좋겠다.
이 또한, 오늘 브런치의 작은 망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