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끌어가는 법
SOAP란?
S-subject. 주관적 판단에 따르는 사항. 증상이 처음 생긴 때, 증상의 강도, 불편한 정도 등이 속한다.
O-object. 객관적 검사 내용. 한쪽 얼굴이 마비된 안면마비 환자가 검사 항목에 따라 이마와 눈을 찡긋거려 본다거나, 신경이 눌려 팔이 저린 환자에게 이런저런 팔 동작을 하며 정확한 지점을 찾는 것 등이다.
A -assessment. S와 O의 결과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단계. Subject 때에 허리가 너무 아파서 걷지 못하겠다던 환자가 object 검사할 때 바닥에 누워 다리만 몇 초씩 들어 올려도 허리에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호소하는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단계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P-plan. 이 모든 정보를 모아 환자의 치료계획을 세운다.
보다시피 S에서 대강의 방향을 정하고, O에서는 S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몇 가지 감별점만을 갖고 들어간다.
이제 서로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대화를 시작하자. 어디서부터 물어보아야 할까?
했던 말 또 하세요
몇 년 전 인기 있는 소개팅 대화법으로 상대방이 앞서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이 있었다.
"저는 스쿠버다이빙이 취미예요."
"아,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세요?"
하고 상대방의 말을 반복하면서 긍정하고, 더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것이 포인트이다.
이것을 진료에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다.
예진 설문지가 있다면 거기에 대강의 내용-쉽게 귀찮아하는 환자라도 목, 허리 정도의 위치는 적게 마련이다-이 기록돼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줄줄 읽으면 전문성이 없어 보인다. 주요 내용 2-3가지만 다시 한번 물어보고, 거기에서 갈래를 좁혀 들어간다.
처음 3번째 질문까지는 얼추 갈래를 정해두자.
그리고 이 과정은 환자 스스로가 생각하는 질환의 원인과, 실제 나타나는 증상이 연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추가 질문 대본 쓰기
예시 1.
Q. "허리가 오늘부터 아프신 거예요?"
A-1. '원래 무거운 걸 많이 드는 일해요.'
A-2. '아니 사실 예전에 디스크끼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A-3.'오늘 아침에 쌀독 들다가 삐끗했어요'
추가 질문
01-1. '무거운 것 많이 드시면 평소에 다리까지 찌릿찌릿 저린 적은 없으세요?'
> 단순한 근육통인지, 디스크와의 감별점을 찾는다.
01-2. '디스크 이야기 들었으면 혹시 몇 번 척추라고 했는지 기억나세요?' 혹은 '언제 진단받으셨어요?'
> 각 신경절마다 지배하는 피부 부위가 서로 다르다. 신경절이 눌린 정도, 디스크 질환 부위가 넓어졌는지에 대한 감별점이 된다.
01-3. '허리 펴고 걸어오실 수 있으셨어요?' '다리까지 찌릿찌릿하지는 않으세요?'
> 통증의 강도, 디스크 질환이 기저에 있었는지 등을 감별한다.
+가끔은 '대변보실 수 있으세요?'도 묻는다. 허리 통증이 심하면 실제로 배에 압력을 높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며칠씩 대변을 못 보는 경우도 흔하다.
예시 2.
Q. "요즘 갑자기 찐 살이 잘 안 빠지세요?"
A-1. "작년에 아이 낳고부터 살이 계속 비슷하게 쪄 있어요. 팔다리도 많이 부어요."
A-2. "네, 이번에 여행 가서 좀 먹었더니 입이 터져서 계속 먹게 돼요."
추가 질문
02-1. '팔다리 붓기가 하루 종일 가는 것 같으세요 아니면 저녁에만 부으세요?'
혹은 '다리 부은 부분 한번 눌러봐도 괜찮을까요?'
> 붓기가 단순히 체력 저하가 이유이거나 잘 붓는 음식을 먹어서인지, 신장 기능의 저하 때문인지 등을 감별한다. 한 번 꾹 누른 피부 부위가 다시 차오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신장기능의 저하를 의심해볼 수 있다. 체력 저하가 심한 경우 커피나 녹차같이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시면 오히려 붓기가 오래가는 경우도 많다.
02-2. '한 끼 식사량이 1 공기 기준으로 얼마나 되는 것 같으세요?'
혹은 '야식을 드시거나 하루 마무리를 맥주로 하시나요?'
> 과식이나 야식 등 생활패턴에 따른 치료계획을 세운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증상의 시작은 영어로는 on set이라고 불린다.
on set은 급성과 만성을 가르고 병증의 심각성을 짐작하며 무엇보다도
치료 기간을 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자면서 돌아눕다 뒷목에 담이 온 환자, 그리고 진단받은 지 10년 넘은 디스크 환자가 각각 내원했다고 생각하자.
당장 통증 강도는 담 결린 환자가 더 심하겠지만 치료에 오랜 시간을 소요하는 쪽은 당연히 디스크 환자일 것이다.
소화기나 심리적인 질환도 비슷하다. 어젯밤에 치킨을 먹고 체한 환자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배에 가스 잘 차고 속이 더부룩했던 환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증상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환자가 치료도 빨리 된다.
근골격계의 경우 대략적인 증상의 변화 루틴이 있으나, 오래된 내과질환-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내원하는 경우-은 개인차가 크다.
근골격계가 아닌 만성질환의 경우, 병을 앓았던 기간만큼(혹은 그 기간의 1.5배)를 대략적 치료 기간으로 정한다.
병은 초반과 후반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불편도 차이가 많이 난다.
오래된 질환은 그로 인한 육체 피로가 함께 누적되어 치료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초보 한의사들은 진료경력이 짧기 때문에, 혹은 한약을 길게 먹으라고 말하면 환자가 다른 곳으로 갈까 봐 짧게 한 달 정도를 권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비보험 치료인 한약을 지을 정도의 결심을 했다면 그때부터 환자가 원하는 것은 소위 '가성비' 치료가 아니다.
비용을 지불한 만큼, 확실한 치료효과를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의사도 미리 주눅 들지 말고 본인이 판단한 치료기간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환자의 거부에 상처받을 필요 없다. 사실 거부라는 말도 어폐가 있다.
치료는 어차피 의사의 제안에 환자가 동의해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이미 발을 뗀 여정을 끌고 나가는 사람이 의사인 것이지 치료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는 사람은 환자인 것이다.
우리는 환자가 그 결정을 잘 내리도록 이야기를 잘 전달하면 된다.
물론 잘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스스로 계속 복기해야 할 것이다.
환자가 말하지 않는 것 - 손을 보자
환자는 병과 함께 살기 때문에 오래되면 오히려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치료 경과 중에도 조금씩 나아지지만 여전히 병이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되짚지 않으면 나아진 것도 잘 모르기도 한다.
(그런 환자들이 '똑같다'면서도 한의원에 장기 내원하는 단골이 되시고는 한다)
그러나 환자의 손은 의외로 정확하다.
내원해서 받은 첫 질문에 보통 환자는 무의식적으로 자기가 가장 아픈 곳을 짚는다. 위에 쓴 예상 답변들을 활용할 수도 있고, 지금 손으로 짚은 그 부위를 파고들어도 된다.
왼쪽 허리를 짚는지, 아랫배를 움켜쥐는지에 따라 큰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통증 환자는 좌:우 통증 강도 비율을 진료 때마다 묻고 변화를 기록하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