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소통이 여행을 깊게 한다
여행을 하며, 많은 나라와 도시를 돌아다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 우와, 부러워요! 세계여행이라니.. 저도 가고 싶은데... 전 영어가 안돼서요.. 영어 하시죠?
- 영어요? 그게.. 한국에서 영어회화 가르치긴 해요. 근데,
- (중간에 말을 끊으며) 역시! 영어 하니까 갈 수 있는 거네요!
- 영어 하면 좋지만 꼭 잘해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에..
- 에이! 영어 하시니까 그런 말 할 수 있는 거예요!
대부분 현지인들은 여행자인 내가 현지 언어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거의 안 한다. 솔직히 모국어 이외의 언어를 완벽하게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우리가 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이들에게 한국어를 기대하진 않듯이 말이다. 관광이 목적인 여행을 하게 된다면 굳이 언어를 할 필요는 없다. 바디랭귀지와 필요한 말 몇 개만 알면 충분히 여행을 할 수 있다. 그에 맞춰서 여행을 왜 못하는가? 영어를 해야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지금껏 여행을 떠났던 수많은 영어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존재했겠는가? 영어를 못한다고 주저하지 말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났으면 좋겠다.
다만, 이번 세계여행은 단순히 세계를 둘러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함께 살아보고 싶었다. 난 체감했다. 의사소통이 가능할 만큼 또 하나의 언어를 하게 되니, 그들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세상은 확실히 넓어졌다. 내가 영어를 할 수 있었기에, 이번 여행이 더욱더 재밌을 수 있었다. 더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너무 즐거웠다. 바다 건너 다른 문화권에 사는 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신기했고 꿈꾸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영어를 공부한 건 일생에서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학창 시절 가장 못했던 영어,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영어. 억울했다. 영어 이게 뭐라고 내 인생을 방해하는지 화가 났다. 실제로 영어로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할 것도 아닌데. 그러면서도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영어가 또다시 발목을 잡지 않길 바랐다. 만약 영어가 내 발목을 붙잡는 일이 또 한 번 생긴다면, 난 영어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실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영어를 놓지 않았다. 학창 시절 열심히 했어도 늘지 않았던 영어. 영어만큼은 단시간 내에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은 당연히 없었다. 대신, 길게 시간을 잡았다. 꾸준히 해서 20대에 영어를 할 줄 알게 되면 그것만으로 감지덕지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수 있게 됐다. 예상보다도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운 좋게 군대도 카투사를 나오며 영어를 했다. 영어는 안 쓰면 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꾸준히 쓰고 싶어 그럴 상황을 만들었다. 영어 과외를 시작으로 지금은 초심자를 위한 영어회화 과정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놓지 않기 위해. 그게 나중에 할 여행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운이 좋았다. 여행 동안 영어를 쓸 기회가 많았다. 여행 중 날 호스트 한 친구들이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렇다고 난 영어만 쓰지는 않았다. 여행하는 나라 말을 하루에 한 두 개씩 배워가며 소통을 했다. 우리나라에 찾아온 여행자가 한국어로 한 두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은가? 이번엔 내가 반대의 입장이니, 반대로 영어를 기반으로 언어를 배우며 지냈다. 덕분에 언어가 다르다는 불편함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며 여행했다.
그런데, 모스크바에서 나와 함께 생활을 한 니키타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처음으로 언어가 안 통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러시아에서 티무르와 케이트 등 몇 명이 영어를 하기에 그들과 함께 할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함께 지내는 니키타와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안타깝다. 러시아뿐만이 아니다. 스페인과 남미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사전과 구글 번역으로 대화를 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깊이 남는다. 언젠가 니키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영어 이외 다른 언어를 내가 또 익힐 수 있을까?
예전에 20대에 영어, 30대에도 하나의 언어를 더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영어 다음 언어로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스페인어를 30대에 익혀야겠다. 스페인어 역시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히 익혀가는 거다. 굳이 빠를 필요 없다. 잘할 필요도 없다. 차츰차츰 소통의 깊이를 내면 된다. 내겐 고맙게도 스페인어 익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친구들이 많으니. 좀 더 재밌게 익힐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은 외국어가 새로운 세상을 깊이있게 만들어준다는 걸 체감케 해준다. 즐거운 세상을. 사람을. 저 먼 세상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