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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Nov 14. 2016

#24 내 인생의 파도를 잡는 법

Catching your wave

 올해 초 여행을 떠나기 전, 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포스팅을 했다. 그때 라트비아에 살고 있는 알치에게서 연락이 왔다. 라트비아에서 매년 하는 축제인 플레이그라운드에 초대한다는 거였다. 2박 3일 내내 축제를 한다. 낮에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밤엔 뮤직 페스티벌을 하는 곳. 유럽여행의 마지막 나라로 재밌겠다 싶었고, 반드시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라트비아에 가서 직접 만난 알치는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였다. 집에 들어가니 다양한 보드가 보였다. 서핑보드, 스킴보드, 웨이크보드, 스노보드, 롱보드 등 엄청났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보드를 가진 사람은 처음 만났다. 인상적이었고, 여행과 보드를 좋아한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밖에 없었다. 알치는 집을 구경시켜주면서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정신없다고 말했다.

 

 짐을 풀고, 자리에 앉은 우리. 알치는 내게 그동안 여행은 잘 다녔냐고 어땠냐고 물었다. 난 신나게 그간 중국과 유럽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알치에게 지난 여행은 어땠냐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도영, 네가 유럽이 궁금했듯이, 난 아시아가 궁금했어. 그래서 아시아로 여행을 갔지. 여행기간 동안 가능한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고, 서핑을 배웠어!

 

오? 서핑? 나도 서핑하고 싶은데, 나한텐 진짜 어렵더라고. 넌 잘 배웠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부터 서핑하면서 지내긴 했는데, 솔직히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나로서도 서핑이 어렵더라고! 운 좋게 바다에서 만난 서퍼가 파도를 잡는데 헤매는 날 보며 조언을 해줬어

 

조언? 오! 서핑 잘하는 사람 인가 보네. 그 팁이 뭐였어?

 

 나중에 나도 서핑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서퍼의 팁이 궁금했다. 서퍼는 생각지도 못했던 답을 내놓았다.

 

알치. 내가 너 타는 거 봤는데, 모든 파도를 다 잡으려고 하더라? 그러지 마. 그러면 에너지만 소모되고, 파도는 아예 잡지를 못해. 너의 파도를 잡아야 해! 너도 알겠지만, 인생도 마찬가지지.

 

흠.. 내가 그랬나? 근데 어떻게 내 파도인지 아닌지 알아?

 

바다에서 가만히 있지 마. 파도들을 자세히 봐봐. 어디서 부서지는지, 어떤 포지션을 원하는지 결정해. 그리고 그 파도가 오는 순간, 온 힘을 다해 패들 해서 잡아버려!



 알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서핑 후, 저녁 비치에서 맥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한 남자가 지나갔다. 알치 친구가 그를 불렀다.

 

헤이! 어디 가? 여기 내 친구(알치)도 롱보드 타는데 이야기하면서 같이 술이나 마시자!

 

 알고 보니 그는 롱보더였다. 술이나 마시며 복잡한 머리를 잠시라도 비워보자는 생각으로 알치는 여행 이야기를 그에게 했다. 그동안 즐거웠던 시간뿐 아니라 앞으로 캄보디아, 라오, 베트남, 타이로의 여행 계획에 대해 말했다.

 

그 나라들에는 왜 가는 거예요? 그 나라들이 중요해요? 옆 섬인 발리로 가요! 발리 로컬 다운힐/프리라이딩 씬에 당신을 소개해줄 친구가 있어요. 그리고 필리핀 가는 걸 고려해봐요. 아마 아시아에서 최고로 큰 롱보드 이벤트가 있어요. 3주나 하는데 보더인 당신에게 딱이죠. 재밌지 않겠어요?

 

 알치는 앉아서 잠시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필리핀과 발리를 여행하고 왔다. 다시 갈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필리핀과 발리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왔다. 아! 이게 내 파도구나. 이걸 잡으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왜 너 일생 전부를 너한테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쏟는 거지? 모든 파도를 잡으려 하지 말고, 정말 중요한 너의 파도를 잡아.라는 메시지는 그의 여행을 바꿨다. 가능한 많은 나라를 여행하는 것을 포기했다. 발리로 돌아갔고, 그가 좋아하는 롱보드 캠프에 참여했다. 같은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과 어울려 영상을 찍었다. 저녁엔 좋아하는 기타와 노래를 부르며 버스킹을 했다. 지금은 돌아와서 파도에 대한 이야기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이렇게 알치의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이때가 내 세계여행의 절반이 왔을 무렵이었다. 적기에 찾아온 좋은 생각거리였다. 그의 이야기는 여행,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계기가 됐다. 

 

 여행하다 보면 수많은 기회들이 있다. 보통 여행을 한다는 건 어떤 걸까? 가능한 많은 나라를 가고, 모든 산을 오르고, 모든 사원을 방문하고, 모든 도시에서 파티를 즐긴다. 모든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가능한 많이, 다른 사람들이 여행 와서 하는 것은 모두 다 하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파도들은 그대로 재밌다. 사람들을 홀리게 할 만큼.



 그. 런. 데.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지려 해서가 않을까?

 내게 좋은 것이 아니라 단지 좋아보여서 가지려 하는 건 아닌가?

 무언가 좋아 보인다면 나도 꼭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 눈에 들어보는 모든 파도에 욕심을 내서는 아닐까?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좋아 보이는 걸 포기할 용기, 각오가 없나 보다. 그게 선택 장애를 부르기도 한다. 좋아 보이는 것들을 많이 포기할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 텐데 말이다. 좋아 보이는 것이 내게 좋은 게 아닐 수 있을 텐데. 포기하는 용기는 때론 반드시 필요하다.

 

 알치의 이야기 덕분에 남미로 떠나면서 남들이 꼭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들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게 되었다. 한 번 더 내게 물어보고, 진짜 하고 싶은 것들에 더 시간을 쓸 수 있었다.

 

 포기하는 용기와는 반대로, 눈 앞에 정작 중요한 파도가 왔을 때, 그걸 붙잡을 용기가 부족할 때도 있다. 망설이고 또 망설이게 된다. 이래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안 사는 것 같은데. 정말 도전해도 되는 걸까. 내 인생,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두려움에 망설인다. 망설이는 순간, 파도는 이미 흘러가버린다. 뒤늦게 패들링을 한다쳐도 잡을 수 없다. 새로운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

 

 다른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 자신의 삶을 위해서. 난 조금 더 용기를 내고자 한다. 겁쟁이지만, 용기있게 살아갈테다. 그리고 그 용기가 다양한 파도를 타는, 좋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 내 세상과 좋은 사람들의 세상이 만나 더욱 더 따뜻해질 수 있도록.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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