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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Nov 16. 2016

#26 소소한 일상이란 #해시태그 2

그리운 친구, 내 친구 밥


#NoBATTERY #NoUSB


- 밥! 나 리마 시내 가고 싶은데, 언제 갈까?

- 내일 바로 가자! 오늘 카메라 배터리 다 충전해야겠다. 안 그래도 나 내일 그 근처에 미팅 있어서 가야 했는데 잘 됐다!

- 그래? 타이밍 딱이네! 알겠어 그럼 내일 가자.


 아침이 밝았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옷을 갈아입고 챙길 것을 챙겨 나왔다. 큰 백팩을 메고 나온 밥은 내게 잊은 것 없냐고 물었다. 시내까지도 한 시간은 걸렸다. 거리가 멀고, 밥 업무 미팅이 있기에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 가서야 도착했다. 걸어가다가 밥이 잠시 멈추라 했다. 다리가 잘 보이니 이곳에서 사진을 한 장 찍자는 거였다.


- 어? 왜 안 찍히지? 어? 어? 설마...

- 왜 그래? 밥? 뭐가 안돼?

- 도영... 배터리가 없어...

- 뭐? 다 충전했다며? 진짜? 안 챙긴 거야?

- 하아.. 책상에 두고 왔나 봐.. 미안해.. 오늘 사진 못 찍겠다..

- 괜찮아. 나 리마에 있는 기간도 긴데 뭐. 다음에 다시 와서 찍고 오늘은 구경만 하자!


 밥은 혹시나 싶어 가방을 몇 번이나 더 뒤적거렸다. 역시 없는 건 없는 거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미팅 때 필요한 USB마저 놓고 왔다. 미팅은 연기가 되었다. 시내를 구경하면서 난 내내 시무룩해진 밥을 위로해줄 뿐이었다.



#NoName


- 도영! 이번 주 토요일 밤에 공연 있는데 보러 갈래? 나 거기 사진 찍어야 하거든. 근데 내가 한 명 더 공짜로 데려갈 수 있어!

- 그래? 좋은데? 가자 가자! 재밌겠다. 근데 너무 늦게까지 있진 말자.. 잠을 제때 자야 해

- 걱정 마! 12시에 끝나고 바로 집 오면 돼!


 공연 시작하기 1시간 전 우리는 공연장에 도착했다. 티켓을 사서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표 확인하는 사람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 도영? 들어가도 됩니다. 이름 있네요. 데이비드 밥? 없는데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 네? 뭐라고요? 꼬레아노 여행객 이름이 있는데, 여기서 오늘 사진 찍으러 온 내 이름이 없다고요? 말이 돼요 그게?

- 전 여기 명단에 있는 것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당황했다. 결국, 밴드에 사진 일을 부탁한 기타리스트에게 전화를 했다. 여러 절차를 거쳐 간신히 들어올 수 있었다. 밥은 참 하루하루 쉬운 날이 없다. 얘 혼자 잘 지낼 수 있겠지?




#4000


 여행을 하며 아무리 아파도 병원을 피했다. 약으로만 해결하려 했다. 병원비가 비싸기에. 남미에서 팔꿈치를 다쳤을 땐 어쩔 수 없이 병원을 갈 수밖에 없었다. 


- 밥! 나 팔꿈치 이거 못쓰는데.. 병원을 가야겠어. 데려다줘

- 가야지! 팔을 굽히지도 못하니.. 우리 집 근처 병원 있어 가자!


 10분 후, 병원 앞에 도착했다. 이상했다. 계단을 오르는 곳 옆에 작은 데스크가 있고, 두 명이 비좁게 앉아있었다. 거기서 접수를 받는다. 페루 병원 걱정이 된다.


- 밥.. 나 이 병원 믿음이 안 가는데, 큰 데로 가면 안 될까?

- 왜? 여기 괜찮아. 일단 가격부터 물어볼게

- 아니, 내가 병원 올 정도면 진짜 중요해서야. 여기 이상해


 밥은 이미 데스크로 향했다. 셋이서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 도영. 의사 진료받는 게 30 솔(약 12,000원)이고, 엑스레이 찍는 게 4000 솔(약 1,600,000원)이래

- 뭐? 엑스레이가 4000 솔이라고? 확실해? 포 싸우전드? 4 thousands? 진짜?

- 응! 포 싸우전드 (4000). 의사 진료는 써티 Thirty (30)

- 안 되겠다. 잠깐 나와봐


 왜? 를 외치는 밥을 이끌고, 길을 걸었다. 다행히, 계단 오르는 곳이 데스크, 길가인 셈이라 바로 피할 수 있었다.


- 밥! 4000 솔(160만 원)로 엑스레이 찍는 거면 한국 왕복 비행기 하서 엑스레이 찍고 여기 다시 올 수 있어!

- 엥? 뭐? 어떻게..? 아... 40 솔... 포티 Fourty (40) 이야... 잘못 말했네..


 보통 14 Fourteen과 40 Fourty를 발음 실수하거나 헷갈려하는데, 밥 너무 하잖아!


 P.s. 결국 큰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별 문제가 없다고 5일이면 낫는다고 말했다. 팔은 낫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검사를 받았을 땐 뼈 끝부분이 부러졌고, 골절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페루 병원은 추천을 못하겠다.



#7.5


- 밥! 나 신발 살까 하는데 많이 비싼가? 

- 아니! 여기 그렇게 비싸진 않아! 미국에서 세금 없이 들여와서 불법으로 파는 데 있거든. 대신, 가짜도 있으니까 잘 봐야 해. 내가 같이 가면 되지!


 우리는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신발을 봤다. 신발가게는 많았고, 볼 신발도 많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내 발 사이즈는 255. US 사이즈로 7.5 다. 이 사이즈를 찾을 수가 없었다.


- 어떻게 발 사이즈가 7.5 야? 애들용 사야겠네. 우리는 그런 사이즈 없어

- 헐. 왜? 이거 정말 좋은 사이즈야! 딱 좋은 사이즈라고! 

- 훗. 난 9인데? 9 정도 돼야 남자 사이즈지! 7.5는 베이비 걸이야

- 와! 완전 황당하네. 아니거든? 7.5 야말로 환상적인 사이즈거든?!


 리마 시내에 안 가본 신발 가게가 없었다. 심지어 페루 강도들이 훔친 걸 파는 어둠의 시장도 찾아가 봤다.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틀을 신발가게를 전전했다. 결국, 난 8 사이즈를 살 수밖에 없었다. 그것마저도 얼마 없었다.


- 진짜 이해 못하겠네! 255 사이즈가 왜! 7.5 진짜 이쁜 사이즈라고!!!

- 푸하하하하. 베이비 걸 같으니라고.



#Badhaircut


 여행을 떠나온 지 5개월에서 반년 가까이 지났을 무렵이다. 페루 오기 전 아르헨티나에서 찍은 영상을 본 동생이 내게 단발이 되어간다고 말했다. 단발이란 말에 충격을 먹은 나.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밥! 나 머리 잘라야겠어! 지금 너무 긴 것 같아

- 그래? 나 미용하는 친구들 많아! 게이들이 하는 곳이 조금 더 싸. 이발소 바리깡으로 금방 하지. 아니면 미용실 갈 수도 있어. 거긴 조금 더 비싸고 오래 걸리지. 다 나 친구 있어. 어디로 갈래? 게이?

- 흠.. 난 미용실 갈래! 게이라서 피하는 건 아니고, 조금 돈 더 주더라도 제대로 자르고 싶어!

- 에이. 게이라고 도망치는 것 같은데?

- 아니라고! 


 밥이 당당하게 자기 친구네 가게로 날 데려갔다. 친구에게 나를 소개시켜줬다. 사람이 많아서 예약을 잡고, 시간 맞춰 다시 왔다.


- 어떻게 잘라줄까요? 여기 사진첩 있으니 골라보세요.

- (사진을 골랐다) 밥! 여기 이 사진! 그냥 지금 머리 그대로에서 조금씩 짧아진 거네! 무난하고 괜찮다. 그리고 여기 페루 사람들 보면 옆에만 자르더라? 제발 그렇게 자르지 말아 줘. 그건 나한텐 아냐. 자! 통역 고!

- 아! 알겠어. 걱정 마. &#$%^$#$^%&^&^%^$#@@#@##


 약 30분 후 끝났다. 안경을 쓴 후 내 상태를 확인했다. 하아.. 사진을 왜 보여준 거지? 밥은 제대로 설명했을 텐데.. 설마 했는데 우려했던 결과가 나왔다. 옆은 확실히 자르고, 앞머리와 뒤 꽁지머리를 남겼다. 여기 막 자르는 구만


- 밥! bad haircut! 대체 왜 사진을 고르라고 한 거야? 사진이랑 이건 완전 다르잖아.

- 푸하하하. 그래도 오늘의 해시태그는 Nice haircut 이야. 이것도 좋아 보이네!

- 으! 아니라고!!!




 밥과의 하루하루는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특별한 일이 생긴 건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자신의 일상이 즐겁지 않다면, 아무리 큰 꿈을 꾸고, 큰 일을 한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상은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항상 마주할 수 있다. 난 일상을 즐겁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여행을 더 잘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우리 인생은 결국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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