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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영 Mar 07. 2016

#1 여행이란? 두려운 것.

 나는 다음 주 수요일 여행을 떠난다. 그런 내게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유럽, 남미, 아시아를 여행한다고? 거의 세계일주자나! 일정은 어떻게 돼? 뭐 반 년? 좋겠다! 부럽다! 설레겠다! 나도 떠나고 싶다! 여행을 떠나기 약 일주일 전 내 심정은 어떨까? 사람들 말처럼 설레고 마냥 좋을까? 아니, 복잡 미묘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무섭다. 나는 여행을 잘 하고 올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 요즘 들어 여행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예민해진다. 여행을 꼭 가야 할까? 집 보증금마저 빼가는데 굳이 이래야 할까? 불안함이 밀려든다. 보통 여행 가기 전이면 설레야 하는 게 아닌가? 난 왜 이렇지? 란 생각에 잠긴다. 이 두려움은 거짓이 아니기에.


 여행이 대체 뭐길래? 나는 이렇게 불안해하면서도, 떠나려 하는가? 여행 정말 떠나도 되는가? 얼마 되지 않는 그동안의 내 여행을 떠올려보면, 이번 여행에 대한 확신이 생길까?





1. 22살, 필리핀 세부로 어학연수를 가장한 도피 여행

 

 그 누구라도 항상 행복한 시간만 누리지 않는다. 슬프지만 반드시 슬프고 힘든 시련의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게는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20살, 21살 때였다. 열등감으로 가득 찼던 시기,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크게 아팠던 시기. 험난한 가정사에 부담감이 컸던 시기. 21살 후반에 난 미칠 것만 같았다.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닌, 문자 그대로 미칠 것 같았다.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걸렸었는지도 모른다. 도저히, 단 하루라도 집에 있기 힘들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대로 있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떠났다. 도피였다. 부모님께 영어를 배운다는 핑계로 필리핀으로 떠났다. 그 시절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사실 영어가 아니라 치유였다. 내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었다.

 

 필리핀 어학원에서 학생매니저로 일하며, 주말에 난 섬으로 떠났다. 자연과 만나며 나를 진정시켰다. 자연은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여행 갈 때마다 내가 원했던 건 단 하나, 바닷가에서 잠들기였다. 기껏 예약해둔 숙소에서 자지 않고, 이불과 베개를 꺼내 들고, 해가 지면 해변가로 나갔다. 선배드를 바다 가까이 옮겨놓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필리핀에서도 구석진 섬으로 떠났기에 하늘엔 별들이 가득했다. 별똥별들이 내게 인사를 했다. 밤바다이기에, 바다에 비친 별들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땅과 하늘, 내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이 별이었다. 자기 전까지 별똥별을 세었는데 항상 2~30개 정도는 셀 수 있었다. 그저 별이라고 그게 뭐 대단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별들은 날 위로해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2. 26살, 필리핀 빈민가를 가다, 후원자 필드트립


 군 시절부터 난 해외아동에게 기부를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2달이 채 되지 않아, 기부를 하고 있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후원자 필드트립에 참여해서 필리핀을 갔다. 후원단체에서 운영하는 아동센터에 찾아가고, 빈민가에 가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또 후원받는 아동이 있는 집에서 하루 묵기도 했다. 센터에 아이들은 다행히도 밝았다. 함께 밥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공부하여 가족을 살리겠다는 의지 강한 아이도 있었다. 집은 가난해도, 눈빛은 살아있었다. 참 강한 아이를 만난 것이다. 내면이 강하다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라면 저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반성과 함께 힘내서 살아가자는 각오를 새겼다.

 

 위 내용만으로도 이 여행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것은 따로 있다. 귀국하기 전날 밤이었다. 그 날은 후원 아동 가정방문을 했다. 두들린, 유들린, 굴굴, 세 명의 아이가 사는 집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잘 시간이 됐다. 방이 작아서 세 아이들 중 두들린과 자기로 했다. 가장 에너지가 넘쳤고, 나를 좋아해줬던 아이다. 그런데, 굴굴이 와서 자기도 함께 자면 안 되냐고 물었다. 가장 어렸고, 낯을 가려서 날 싫어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보다. 난 기뻐서, 같이 자자고 했다. 옆에 누운 굴굴이 등을 돌렸다. 이제 자나? 싶었던 내게 굴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 갈 때 나도 데려가면 안돼?' ....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굴굴을 끌어안는 게 전부였다. 내가 해외아동을 후원하는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내 인생을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늘었다.






3. 29살, 지인들과의 롱보드 유럽여행


 난 어릴 때부터 산책, 걷는 것을 좋아했다. 몇 년 전부터 걷는 대신, 롱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보드를 오래 타다 보니 국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서 해외 보더들과 함께 보드를 타고 싶어 졌다. 그렇게 작년 보드를 함께 타는 지인들과 유럽으로 보드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서 보드를 타고 영상을 찍었다. 보드라는 매개가 있어 외국 보더들과 어울리며 친해지기 쉬웠다. 영상을 많이 보는 애들은 우리를 알고 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선 유럽 프리스타일 대회 중에 가장 규모가 큰 롱보드 댄싱/프리스타일 대회에 참가했다. 비행기를 예매하기 전엔 우리 여행기간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 정말 더 운이 좋았던 건 그 대회에 내가 입상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첫 유럽여행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이벤트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메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독일 라이프치히. 독일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잘 가는 곳은 아니지만, 내가 스폰 받는 브랜드의 홈이다. 잘 곳을 내주고, 함께 이야기하며 교류하는 데 난 외국에 또 하나의 집이 생겼다. 이들은 날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바슬 내에서도 스폰 받는 팀을 패밀리라고 부른다. 이 여행을 통해 난 해외에 가족이 생겼고, 그들이 보드를 즐기는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내 지난 여행들을 돌이켜보니, 참 만족스러웠다. 왜 난 지금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보증금까지 빼서 가는 무모한 여행이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여행 준비가 미흡해서? 처음 해보는 장기간 여행이라서?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까 봐? 이 모든 것들이 답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두려워하는 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행을 돌이켜보니 한 가지 확신이 든다. 난 모든 여행에서 떠나기 전엔 몰랐을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다. 이번 여행 역시 그렇지 않을까? 마음을 비우고 떠나 보자. 이번 여행은 이십 대 중반의 내가 미리 선물하기로 약속한 나의 시간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여행이 가능할까? 지금이 아니면 떠날 수 있을까? 완벽한 시기란 존재하지 않으니. 무언가 얻지 못해도, 배우지 못하더라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번 여행, 최대한 즐기고 돌아오자. 최소한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지.





소중한 것을 깨달았을 때는

컴퓨터 앞에서가 아니라 언제나 푸른 하늘 아래에서였다.

- 인생을 바꾸는 7일간의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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