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5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후, 아침 일찍 나는 올란의 집을 나섰다. 밖은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지만, 난 퐁텐블로에 가야만 했다. 그곳은 파리에서 날 호스트한 친구, 제프의 홈타운이다. 단 하룻밤에 불과하지만, 날 호스트한 제프의 집을 꼭 가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 창 밖으로 센강이 보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어느덧 아름다운 퐁텐블로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그의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짐은 많았지만, 무리없이 갈 수 있었다. 올란의 집과 다르게 크다고 자랑한 그의 집은, 단순히 크다고만 말할 수 없었다. 너무나 이쁘게 집을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난 하나하나 구경하기 여념이 없었다. 그가 자랑하는 프렌치 런치를 먹고 잠시 여유를 만끽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바로 퐁텐블로 성을 구경하고, 숲을 산책하기 위해서였다. 집을 나와 조금 걸으니, 산책로에 들어섰다. 쭉 펼쳐진 길은 높고 파란 하늘과 강, 풀, 나무들로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작기 퐁텐블로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전 만났던 미국인 노부부 여행객이 생각났다. 그들은 스페인 순례길을 간다고 했다. 그때 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보드가 편하지만, 보드를 타기 전에 난 매일 걷는 시간을 따로 가질 만큼 걷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미국인 노부부가 미래를 예견한 것인지, 이렇게 걷기 좋은 길을 눈 앞에 두게 됐다. 보드를 탄 이후 걷는 게 귀찮아지고 보드 타기 좋은 길로만 다녔는데, 퐁텐블로는 내게 잠시 보드에서 벗어나 두 다리로 걷게 만들었다. 사박사박 자연 속에서 한 걸음씩 옮기며 제프의 동네 추억 이야기들을 들었다.
기분 좋게 들어선 성은 오랜 세월을 견딘 묵직함을 보여줬다.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고즈넉함을 즐겼다. 마치, 옛 왕이 이 길을 걸을 때와 같이. 제프는 그런 나를 기분좋게 바라보았다. 내가 정말 좋아할 것 같은 곳을 소개해준다고 했다. 여행객들은 잘 모르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 했다. 그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지만 어찌 안갈 수 있으랴? 성을 빙 둘러, 그가 말하는 곳에 도착했다.
운좋게도 비는 금방 그쳤고, 난 내 눈에 비춰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성과 호수, 자연이 그대로 내 눈에 담겼다.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그저 바라만 보았다.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선선히 부는 바람, 뜨겁지 않게 내리쬐는 햇빛, 호수에 비친 성과 하늘, 주변 많은 나무들과 함께 신선한 공기와 함께 멍하니 있는 시간. 딱 내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난 최근 날 괴롭히는 생각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저 가만히 있음에도 행복해질 수 있는 곳, 여행 10일차가 되는 이 날, 난 이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 누구도 계속 달리기만 할 수는 없다. 잠시 멈추어 멍하니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을 결코 낭비가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더불어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성은 베르사유 궁전이지만, 내게 더 어울리는 성은 바로 퐁텐블로 궁전이었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제프는 내게 최고의 호스트였다.
# 퐁텐블로 : 두산백과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65km 되는 '퐁텐블로의 숲' 한가운데 있는 휴양지이다. 12세기부터 왕실의 수렵지였으며, 특산물로는 포도와 퐁텐블로치즈가 알려져 있다. 16세기에 프랑수아 1세가 왕의 사냥숙소였던 곳에 궁전을 세우고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퐁텐블로궁전은 이탈리아의 건축가·조각가·화가들을 초빙해 와 1528년에 착공하였으며, 마니에리스모 양식으로 장식한 '프랑수아 1세의 회랑', 앙리 2세가 만든 '무도회실'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후 19세기 초 나폴레옹 1세가 퇴락해 있던 궁전을 복구하고 안뜰을 개방하여 난간을 설치하는 등 개축하여 애용하였다.
1814년 나폴레옹 1세는 이곳에서 퇴위하여 엘바섬으로 유배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중(中)유럽군 총사령부가 설치되었다. 1981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