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_메릿(Merritt)에서 살기 ①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은 외국에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싶었다.
15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드디어 짐을 쌌다. 캐나다 밴쿠버행 싱가포르 항공에 몸을 실었다. 캐나다는 두 번째이다. 몇 년 전 달포 정도 휴가를 내, 밴쿠버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친구랑 자동차를 끌고 로키산맥을 지나 중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캘거리 그 너머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소 1년의 일정이다. 길어질수록 좋다. 베이스캠프는 역시 그 친구 집에 차렸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신세를 질 생각은 없었다. 번잡한 서울을 떠나왔지만, 좀 덜하긴 해도 밴쿠버도 큰 도시이다. 어차피 어디 한적한 마을을 찾아 속칭 짱박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간만에 친구랑 회포도 풀어야 하고, 이래저래 밴쿠버 여행도 해야 하기에 한동안 친구 집에 머물렀다.
6개월짜리 여행비자로 입국했지만 장기 체류를 대비해 캐나다 은행(TD BANK)에 계좌를 만들고, 넓은 땅에서 없어선 안 될 이동 수단을 위해 중고 자동차도 샀다. 이제 떠나야 한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프레이저 강을 따라 동쪽으로. 정해진 곳은 없었다. 막연하게 밴쿠버와 로키산맥 중간 어디쯤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다가 맘에 드는 곳이 생기면 거기 머무르면 그만이었다.
밴쿠버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평균 2천 미터 이상의 큰 산들을 넘어가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시원한 내리막길을 활강하듯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큰 산맥을 넘어서인지 기후도 완전히 바뀌어있다. 눈에 보이는 산들이 중간 중간 잡목들만 있을 뿐 그냥 벌거벗은 산이었다. (반)사막 기후였다. 도로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풍경에 나는 속으로 외쳤다. “여기다!”
어쩌면 그 얼마 전에 다녀온 몽골 여행의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몽골에서 돌아오면서, ‘언제고 다시 돌아오마’ 하고 다짐했었다. 내려다본 도시는 몽골의 풍경과는 조금 다르지만, 몽골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그곳이 앞으로 내가 1년 가까이 정 붙이며 머물 도시, 메릿(Merritt)이었다.
메릿은 인구 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로 대부분의 주민이 살고 있는 아랫동네와 일부 원주민이 목축업 등을 하는 윗동네로 나뉘어져 있다. 도시 규모는 작지만 밴쿠버에서 로키산맥으로 가는 주도로와, 온화한 기후와 큰 호수 덕에 캐나다 서부의 최대 휴양지이자 포도 등 과수원이 많은 오카나간 밸리로 가는 길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보니 모텔이 많았다. 대략 어림잡아도 20개 정도나 되었다. 캐나다의 모텔은 우리와는 다르게 보통 단층이나 2층으로 되어 있다.
낯선 곳을 가면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거처할 곳을 정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기 체류를 위해선 달방이 저렴하다. 처음에 외견상 좋아 보이는 모텔에 갔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모텔 체인이다. 역시나 이름값을 한다. 달방 기준으로 한 달에 1200달러를 달란다. 혼자 머물기에는 과할 뿐만 아니라 낭비이다. 외관이 좀 덜하긴 하지만 역시나 체인 모텔에 갔다. 1000달러. 그다음은 900달러. 마지막으로 좀 낡아보이긴 하지만, 혼자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는 곳으로 갔다. 인도인 부부가 하는 모텔이었다. 670달러를 달라고 한다. 아주머니의 인상이 너무 선해보였다. 바로 1층에 있는 방의 키를 받아서 짐을 풀었다.
그렇게 아주 많이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완전히 혼자가 된 그날, 내 나이 마흔 두 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