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_메릿(Merritt)에서 살기 ②
메릿에서의 첫날, 아침을 대충 해먹고 주변을 산책했다.
혼자 걷는 낯선 곳이 늘 그렇듯, 도시는 생각보다 넓었다. 벌건 사막에도 생명은 계속되듯, 황량한 풍경 속에서도 사람들의 움직임이 이방인의 눈에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건물이 주는 시각적인 차이나 사람들의 생김새로 인한 이질감을 제외하면 삶은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골목에서, 혹은 어느 건물을 기웃대다가 마주치는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지레 얼굴 표정이 부자연스럽다는 걸 느끼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모텔로 돌아와 잠시 쉰 다음 차를 끌고 나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도시 전체를 스캔하려면 차가 필요했다. 마당에서 눈이 마주친 인도 여주인은 얼핏 봐도 부지런한 사람 같았다. 작은 다운타운을 지나 눈에 보이는 대로 언덕 위를 오르기도 하고, 외곽의 대형마트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시내 도서관으로 향했다. 알아볼 것이 있었다. 이곳에서 일 년 정도 놀거리를 하나하나 찾아야 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놀란 것 중 하나는 아무리 작은 동네일지언정 어느 도시나 3가지는 잘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도서관, 박물관, 인포메이션 센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곳의 사람들은 모두 아주 친절하다.
깔끔하게 꾸며진 도서관은 한산했다. 미적미적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마음을 먹고 직원처럼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물었다. 입으로 하는지 몸으로 하는지 구분이 안 되는 그날의 대화는 대략 이랬다. 그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사실 아무리 웃고 있어도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영어로 말하는 사람이 친절해보이진 않는다)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응대를 해줬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데, 그런 프로그램이 있나요?”
“있었는데 얼마 전에 없어졌습니다.”
“왜요?”
“배우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배우고 싶은데... 어떡하면 되나요?”
“선생님에게 확인해봐야 합니다. 연락처를 주면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습니다.”
“전화가 없습니다.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언제 오면 되나요?”
며칠 후 다시 도서관에 가니 그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반긴다. 선생님이 가능하다고 했다면서 이번 주 토요일 오후에 올 수 있느냐고 한다.
선생님은 내가 만나본 외국인 중에 가장 선한 인상과 말투를 가진 남자 분이었다. 현직 선생님이 자원봉사로 일주일에 이틀 도서관에서 영어를 제2외국어로 쓰는 사람들을 위해 영어회화를 가르쳤다. 선생님은 도서관 안에 있는 강의실에서 약 2시간 정도 내게 영어를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나자(선생님과 일대일로 네댓 번 수업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지역 신문에 광고를 게재했다.
‘도서관에서 영어 강좌가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오라’는 광고였다.
아무래도 도서관 측이나 선생님 생각에 내가 얼마나 계속 수업을 들을지 확신을 못했는데, 보아하니 계속 올 거 같으니 이 참에 광고를 내 사람들을 모으려는 심산이었다. 광고가 나가고 다음 수업 시간에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왔다. 스위스 노 부부, 퀘벡에서 온 아주머니, 인도인 처자, 중국에서 온 아주머니 등이 영어를 배우러 도서관에 왔다. 사람이 많아지자 선생님도 한 분 늘었다. 마찬가지로 자원봉사하는 현직의 여자 선생님이었다. 나중에는 한국에서 일하러 온 남자 둘이 합류하기도 했다. 이 동네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상 좋은 스위스 노 부부의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술 한잔이나 이야기 풀 생각이 나면 한국사람 둘이 함께 사는 집에 가서 밤새 놀기도 했다. 첫 시작으로 도서관을 찾아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