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봉희 Aug 24. 2017

캐나다_메릿_세상 처음 하는 자원봉사_FOOD BANK

캐나다 _메릿(Merritt)에서 살기 ③

가끔 어딘가 떠나고 싶어질 때면 구글에서 세계지도를 검색한다. 그때그때 떠오른 곳을 찾은 후 그 주변 지명들을 따라 내 눈은 방랑한다. 그러고 나면 들썩거리던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된다. 예전 여행의 기억을 되새김하는 것도 어쩌면 그와 같은 행위일지 모른다.     


도서관 영어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한다. 그러니 나머지 시간에 할 거리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시내를 혼자 떠돌다 찾아간 곳이, 지금은 그 명칭이 기억 안 나지만, 무슨 일자리 지원센터였다. 애초에 돈을 벌 생각이 아니었기에(취업 비자도 없고), 자원봉사를 할 곳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들이 알려준 데를 찾아갔다. 다운타운에 있는 민간자율방범대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생겼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곳에서는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머리를 쥐어짜 간신히 말을 하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런 곳에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응급 전화일 터였다. 잘못하다간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다. 미안하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고는 그곳을 나왔다.     


도로에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를 좀 더 해둘 걸 하는 후회를 약간 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건 잊는 게 상책이란 걸 먼 캐나다까지 와서 또 깨닫는다. 그래도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는 건 아닌가 보다. 담뱃불을 끄자, 바로 맞은 편 1층에 있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FOOD BANK. 익숙한 이름, 저곳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터였다.     


푸드뱅크의 문을 열기 전에 한 번쯤 심호흡을 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 대략 스캔하니, 나이 많은 어르신 몇 분이 계셨고 여기저기 상자나 봉투에 음식들이 담겨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흔한 말로 격하게 반기셨다. 혼자 생각으로, 아무래도 그곳의 일이 사람의 힘이 필요한 일이 많을 터인데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 많은 어르신들뿐이었다. 갑자기 덩치도 크고, 힘도 쓰게 생긴 넘이 제 발로 찾아와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으니, 환대할 만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또 새로운 놀 거리를 찾았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친절하고 늘 웃는 얼굴이었다. 푸드뱅크는 일주일에 4일, 오전 10시쯤부터 4~5시간 정도 운영했다. 공간은 2개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고, 주로 뒤쪽 공간에서 작업하고, 앞쪽 공간에서 나눠주었다. 도착하면 새로 들어온 음식들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부피가 큰 것들은 배분하기 좋게 미리 위생봉지에 나눠놓고, 가족 형태에 따라 봉투나 상자에 담았다. 즉 1인용, 2인용, 패밀리용으로 나뉘는데, 1~2인용은 종이봉투에, 패밀리용은 박스에 담는 식이다. 그렇게 담아서 앞쪽 공간에 갖다 놓으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나는 주로 힘이 필요한 뒤쪽 공간에서 작업을 해 앞쪽에 가져다 놓는 일까지 했으나, 가끔 앞쪽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했다. 때론 음식을 제공해주는 곳에 가서 가져오기도 했고, 사정이 있어 나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직접 가져다드리기도 했다.     


푸드뱅크를 전체적으로 책임지는 분은 따로 계셨고(가끔 들르셨다), 사무실 운영은 여성 매니저 분이 도맡아 하셨다. 이 분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안타깝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다른 분을 통해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메일을 받은 것이다. 지금도 내 PC에는 이 분과 찍은 사진이 여럿 있다. 옆에 있으면 따뜻함이 묻어나는 분이셨다(Rest in peace).     


그리고 사무실 운영을 늘 함께 하는 또 한 분이 계셨다. 내가 가기 전까지는 유일한 남자였다. 사람 좋기로는 이 분도 두 번째라면 서러워하실 만한 분이었다. 틈만 나면 나에게 “you bet” 과 “gotcha”를 번갈아 남발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갓차 아저씨'로 그를 기억한다.  한 번은 동네 대형 마트에서 기부로 들어온 쿠키를 먹어보라며 나에게 몇 개 준다. 내가 맛있다고 하자(처음 먹어보는 캐나다 쿠키인데, 실제로도 엄청 맛있었다. 나중에 그 마트에 가서 사먹기도 했다), 몇 개를 위생봉투에 담아 주면서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마트는 팔려던 쿠키의 유통기한이 다가오면 가끔씩 기부를 했다. 그래서 나도 종종 맛있는 쿠키를 먹을 수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 혼자 와 살고 있는 걸 아니, 연어나 참치 같은 캔이나 스파게티 재료 등을 챙겨주시곤 했다. 어쩌면 푸드뱅크의 취지로 보면 나도 배급 대상자였는지 모른다. 물론 그렇기에 챙겨주신 건 아니다. 같이 부대껴본 사람은 그 마음을 안다.      


지금도 거기서 놀멍쉬멍 살았던 시절이 그립다. 뒷문으로 나가 함께 피던 담배 맛도 그립다.

그리고 내 사주에 “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난다”는 것이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얼마 후 이곳에서 나는 귀인을 만난다


푸드뱅크 앞쪽 공간 풍경
갓차 아저씨. 늘 손은 저렇게 잡고 계신다.


어제 알았다.

최근에 내가 쓴 책에 대한 기사가 <내일신문>에 실렸다.

내일신문  » 뉴스보기    ...by 이신재 국회도서관 사서                                                                                                                 

[사서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나는 엄마와 함께 살기로 했다] 원하는 삶 선택해 현재를 살다 


관련 기사: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47295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_메릿_도서관에서 영어 배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