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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희 Sep 05. 2017

캐나다_메릿_귀인을 만나다

캐나다_메릿(Merritt)에서 살기 ④

영화 제목으로 익숙해져서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인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원말은 ‘달마서래의(達磨西來意)’이다. 아직도 많은 구도자들이 붙잡고 있는 불가의 화두이다. 어느 날 달마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걸어갔지만, 나는 한국에서 캐나다로 날아갔다. 굳이 달마가 아니어도 어째 동쪽으로 간 까닭 한두 가지쯤 없겠는가. 가끔은 모든 걸 끄집어내지 않고 꾹꾹 눌러놓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이니,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다.     


메릿에 온 지도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갈 때였다. 푸드뱅크 뒤쪽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앞쪽 공간에서 어느 할머니가 간사님하고 무언가 대화를 나누면서 내 쪽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처음 보는 분이었다. 작은 동네에 낯선 사람이 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그들의 속을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왜 이런 마음이 없었겠는가. “저 사람은 왜 저 먼 서쪽 땅에서 이 시골까지 왔을까?”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조금 있다가 할머니가 내게로 오셨다. 

“어디서 왔느냐?”를 시작으로 궁금하신 걸 물어보신다. 몇 가지 물어보신 끝에, 어디서 사냐고 묻길래, 모텔에서 산다고 했다. 그랬더니, 왜 비싼 돈 주면서 그런 데서 사냐고 하신다. 마땅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살짝 웃어드렸더니, 자기 집에 들어와 살 생각이 없냐고 하신다. 2층집인데 1층이 비었으니 모텔에 주는 돈의 반 정도만 내고 들어와 살란다. 그 소리에 마음은 콩밭이지만, 냉큼 그러겠다고 하기도 뭐해서 살짝 미적거렸더니, 일 끝나고 함께 가서 집을 보자고 하신다.      


할머니 댁은 푸드뱅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전형적인 캐나다의 2층짜리 목조주택으로 앞쪽은 잔디밭이 있었고, 뒤쪽은 넓은 마당에 창고가 별도로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서 2층에 살고 계셨는데, 1층은 비어 있다고 했다. 1층은 깨끗한 침실에다 넒은 거실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었고, 화장실과 세탁실이 있었다. 세탁실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내가 머물던 모텔방에 비하면 거의 천상의 공간이었다. 아무 때나 이사와도 된다고 하시면서, 내일(금요일) 집에서 친구들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함께 먹자고 하신다.      


금요일 저녁에 나는 마트에 들렀다. 저녁 초대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이 없었지만, 그냥 빈손으로 가기는 그래서 내 어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예쁘장한 화분을 하나 샀다. 할머니 댁에는 다섯 분의 친구가 이미 와 계셨다. 캐나다 현지 가정에서 저녁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모두들 아들뻘 되는 사람을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마지막 후식으로 주신 아이스크림까지 배부르게 먹고, 집을 나서는 길에 짐 가지고 내일 들어오겠다고 했더니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운이 맞았는지 타이밍도 좋았다. 이틀 후면 모텔에 다시 한 달치 비용을 지불해야 했으니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는 진즉에 1층에 사람을 들이고 싶어 하셨으나 감히 엄두를 못 내고 계셨단다. 캐나다의 작은 동네지만, 거기에도 마약이나 알콜중독자가 있다 보니 함부로 사람을 못들이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푸드뱅크에서 간사님과 쏙닥거린 건 간사님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신 거였다. 할머니 나름의 사전 조사와 면접을 보신 거였다.     


그렇게 해서 네덜란드 출신 할머니와 미국 출신 할아버지와의 행복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엄마와 동갑이셨고, 할아버지는 그보다 열 살 위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동쪽으로 오길 잘했다.

할머니 댁과 내가 타고 다니던 중고차


내게는 천상의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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