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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희 Dec 14. 2018

온양 봉곡사, 그리고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

여행지나 술자리에서의 두서없는 토막 잡썰(雜說) ⓸


오래전 온양에 있는 봉곡사에 처음 걸음한 것은 다산 정약용 때문이었다.

우연히 책에서 본 후였다. 이번이 4번째쯤이다. 다산이 봉곡사를 찾은 건 정조의 무한 신임을 얻어 정치적으로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10년의 한가운데 토막인 1795년이었다. 그해에는 중국인 신부 주문모의 밀입국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시기였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조참의의 신분으로 정조의 현륭원 행차에 동행했었던 다산은 당시 금정역(지금의 충남 청양) 찰방으로 좌천된다. 천주교 논란의 소나기는 피하고 가라는 정조의 배려도 한몫했다.     


어디에 있든 가만히 앉아서 쉬고 있을 품성이 못 되는 다산은 시골에 좌천되어 와서도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온양에 있는 봉곡사에서 남인 학자들을 모아 성호 이익의 유고 편찬대회를 직접 주도한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무슨무슨 콘퍼런스쯤 될 터이다. 발제와 토론, 검토를 통해 성호의 글들을 정리해 한 권의 책, 『가례질서』를 엮었다. 그의 나이 34살 때였다.     


성호는 다산이 태어난 다음해에 죽었으니 생전에는 만날 일이 없었다. 

물론 성호와 다산은 같은 남인 계열 집안이었고, 성호의 수제자인 녹암 권철신은 다산의 집과 가까운 양평에 살고 있었다. 녹암은 다산에게 자신의 스승인 이익의 유고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실제로 16살 이후에 다산은 녹암이 신유사옥으로 죽기 전까지 그의 양평 집을 자주 찾았다. 다산은 16살에 성호의 저작을 처음 접하고 성호를 사숙한 지 18년 만에 성호의 유고를 스스로 정리한 셈이다. 내 발길을 이곳으로 끈 것도 그것이었다. 

    


봉곡사를 찾은 건 다산 때문이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성호 이익이다.

『성호사설』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익은 대사헌을 지낸 아버지 이하진이 유배된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죽자 어머니와 함께 고향인 안산으로 내려와 살았다. 이하진은 책 읽기를 좋아해 집안에는 수천 권의 장서가 있었다. 일설에는 중국에 사신으로 간 이하진이 임무를 너무 잘 수행해서 조선과 청에서 일종의 성과급을 준다고 했더니, 돈이 아니라 책으로 달라고 했다고 한다.    

  

1706년 9월, 이익의 형이자 첫 스승인 이잠이 장희빈(남인 세력을 등에 업고 중전까지 오른 장희빈은 갑술환국 때 남인과 함께 몰락한 후 죽음을 맞는다)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역적으로 몰려 투옥당한 뒤, 18차례의 고문을 받다 47세에 옥사한다. 그러자 이익은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몰두했다. 후일 다산은 이때의 불행을 두고 “성호 선생께서 집안에 화를 당한 뒤로 이름난 학자가 되셨으니, 권세 있는 부호가의 자제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고 평했다. 우리는 다산의 이 말을 그에게 다시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다산 또한 스승처럼 집안에 화를 당한 뒤로 이름난 학자가 되고,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발원지의 물이 내려오면서 중간중간 지류를 흡수해 큰 물줄기가 되어 바다로 들어가듯, 흔히 실학은 반계 유형원과 성호 이익을 거쳐 연암 북학파라는 큰 물줄기가 되어 다산학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평가받는데, 그 중심에는 이익이라는 거대한 폭포가 있었다.    

  

이익의 제자로는 안정복, 권철신, 권일신 등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천주교 수용 문제로 천주교를 반대하는 안정복 등의 공서파와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건 물론 그로 인해 고난과 죽음을 맞게 되는 권철신 형제와 이가환 등의 신서파로 분열되었다. 물론 익히 알듯이 다산의 집안은 신서파의 길을 걸었다. 1801년의 신유사옥으로 다산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순교한다. 둘째 형인 정약전은 신지도로, 다산은 경상도 장기로 유배된다. 그리고 그해 가을, 황서영 백서 사건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전남 강진으로 멀고도 긴 유배길을 떠나게 된다.     


P.S 봉곡사는 우리나라 사찰 진입로 중에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올라가는 소나무길 중에 이만한 곳은 드물다. 찍어온 사진이 앞엣말을 증명하지 못해 첨부하지 못함이 아쉽다. 직접 가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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