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봉희 Mar 19. 2019

과도한 이익 VS. 적절한 균형

승리와 정준영의 기사를 읽다가


한비자는 인간의 행동이 철저히 이익을 추구하는 관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그는 당연히 ‘인간이 선하지 않다’는 스승의 학문을 받아들였고, 단지 이익에 의해서만 인간은 움직인다고 했다. 『한비자』에는 이와 관련한 일화가 나온다. 기도를 하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대략 이렇다. 


아내는 가족이 건강하고 무사하게 해달라고 빈 다음에, “삼베 백 필을 얻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 그러자 남편이 물었다. “아니 왜 그렇게 적게 빌어요?” 이왕 비는 거 더 많이 달라고 빌라는 것이다. 이에 아내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그것보다 더 많으면 당신은 첩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행동에 이익의 키워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아내의 소원에는 적절한 균형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돈(삼베)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이익이겠지만, 인간의 삶은 돈만으로 구성된 건 아니다. 아내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즉 가족(부부)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은 셈이다. 배우자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 배우자를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찾을 수 없는 균형이다.


연일 도배되고 있는 승리과 정준영의 기사를 몇 개 읽다가 이 일화가 떠올라 몇 자 적는다. 

젊은 나이에 얻은 엄청난 부와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몇몇 연예인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연예 산업에서 파생되는 엄청난 부와 인기가 자리 잡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대중적 인기가 부와 연결되는 건 일견 당연한 듯 보이지만, 경계 없는 과도한 부의 제공이 과연 합당한지 또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연예 산업 또한 우리 사회의 일부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과 능력, 창의성, 생산력 등등의 가치들을 제공하고 그에 합당한 이익을 얻는다. 자신이 제공한 가치를 한참 넘어서는 과도한 이익에는 일화 속 아내가 걱정하듯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한 과도함은 마약과 같다. 한 순간에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그것은 시간과 공을 들여 자연스럽게 만든 오르가슴이 아니다. 승리나 정준영은 적절한 균형을 찾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그 이익에만 취한 사람들이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직업 1순위가 로또나 도박의 오르가슴을 꿈꾸는 산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인간이 선하든 선하지 않든, 이익에는 적절한 균형이 함께 할 때만이 나름의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 

브레이크 없는 이익은 파멸로 가는 고속도로일 뿐이다. 누구라도 마약에 취해 고속도로를 질주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 그 도로에는 우리도 달리고 있고, 우리 가족도 달리고 있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