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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봉희 Apr 12. 2019

부와 명예, 그리고 이미선 판사

채현국 선생님과 범려로부터 배워야 한다

부와 명예는 어쩌면 인간의 DNA에 박혀 있는 욕망의 가장 화려한 피날레이다. 

문제는 그것이 피날레임에도 그 끝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적정한 부나 적절한 명예에서 멈출 줄 모른다. 멈추지 못하는 건 중독이다. 중독된 욕망은 탐욕이 된다. 탐욕은 욕망의 마지노선을 허물어버리고, 자신의 것이 아닌 데도 추구하게 만든다. 한때 엄청난 부를 쌓았던 채현국 선생님은 “권력과 명예와 돈은 확실히 중독이야. 사랑도 중독이고 노동도 중독이 되지만, 돈, 권력, 명예는 그에 비할 수 없이 심한 중독이다”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부와 명예는 모두 권력으로 향한다. 

사실 권력(힘)은 부와 명예보다 먼저 인간의 DNA에 새겨진 이름이다. 사바나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초기 인류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었다. 다른 생명체로부터 목숨을 지키고, 먹을 것을 찾아 사냥을 하고, 잡은 고기를 뺏기지 않는 방법은 오로지 힘뿐이었다. 그러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한곳에 정주하기 시작하면서, 그러다가 자연스레 국가라는 통치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권력은 정치권력으로 진화하여 동류 집단의 인간들에게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 또한 정착 생활이 식량 등 재화의 비축으로 이어지면서 부의 편중이 일어나고, 언어와 학문이 발달하면서 명예 관념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둘은 모두 곧바로 권력화되었다. 그리고 요즘처럼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인간관계가 다양해지면서 어느 순간 부와 명예의 권력화가 가속화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현대사회의 모든 욕망은 권력으로 통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듯 부와 명예와 권력은 삼위일체가 되어, 덩치가 너무 커버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인간의 모든 욕망을 빨아들인 지 오래다. 

그런데 사실 부와 명예가 각각은 권력화되더라도 부와 명예는 양립하기가 쉽지 않았다. 채현국 선생님이 어느 순간 깨달음으로 돈의 중독에서 벗어남으로써 명예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듯이 말이다. 또한 근본적인 속성상 부는 자신만의 노력으로도 쌓을 수 있지만, 명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외부에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즘은 부를 이룩한 사람들이 명예마저도 거머쥐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사달이 나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물론 역의 사례도 부지기수다. 


요즘 이미선 판사의 청문회로 시끄럽다.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지만, 사회적 잣대로만 봤을 때는 명예를 선택한 사람의 (판사가 헌법재판관이 되는) 일반적인 승진인 줄 알았다. 물론 그 승진으로 일정의 권력이 주어지지만, 그거야 자연스러운 일이다(기본적으로 권력이 부정적인 단면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명예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미 이전에 엄청난 부마저 축적해놓은 것에 대한 심리적 배신감일까. 물론 주식 투자가 나쁜 건 아니고, 부를 축적하는 게 한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 부를 축적하는 방식과 과정이 (판사, 특히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판사는 다른 직업에 비해 사회적 명예에 더 가깝다는 전제하에) 이미 명예를 얻은 사람이 선택할 방식이었냐는 점과, 명예와 부와 권력을 모두 거머쥐려는 인간에 대해서는 좀 더 높은 잣대가 요구된다는 사회적 인식(국민의 눈높이) 때문이 아닐까. 내 기억에도 그 세 가지를 모두 거머쥔 사람을 떠올리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만큼 힘들기도 하고 양립하기도 쉽지 않다는 의미일 테다. 이명박근혜는 부와 권력을 취하고 명예 따윈 헌신짝처럼 버렸고, 고인이 되신 노회찬 의원은 명예를 지키려고 부의 작은 흠집마저도 감당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가장 변방 중 하나인 월나라의 책사 범려를 보자.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왕 구천은 춘추오패의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범려는 구천의 만류를 뿌리치고 월나라를 떠났다. 그가 떠나면서 한 말이 바로 저 유명한 토사구팽의 고사이다. 월나라를 떠나 이름을 바꾸고 제나라로 갔다가, 다시 도(陶)라는 지역으로 옮겨 이름을 주공으로 바꾸었다, 그는 농사와 장사를 하며 19년 동안에 세 차례나 천금을 벌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난한 친구들과 먼 형제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여기서 유래된 사자성어가 ‘삼취삼산(三聚三散)’이다. 즉 ‘재물을 세 번 크게 모아 세 번 베풀었다’는 말이다. 이는 “부유하면 그 덕을 즐겨 행한다”는 중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도주공(범려)을 ‘상성(商聖, 상업의 성인)’ 혹은 상신(商神, 상업의 신)으로 부르며 존경했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대에 부만 쫓는 사람들이 새겨 들어야 할 이야기이다. 


결과적으로 토사구팽과 삼취삼산이라는 고사성어를 낳은 범려는 현재까지도 중국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이는 그가 꼭 엄청난 부를 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권력을 가졌으나 그 권력을 미련 없이 놓음으로써 자신을 지켰고, 억만금을 모았으나 주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권불십년’임을 알았고, ‘돈은 써야 다시 모인다’는 지극히 단순한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부와 명예, 권력이 마치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이를 모두 가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채현국 선생님처럼 부를 놓지도 않으면서 명예를 얻으려 한다. 범려처럼 정당한 부의 축적도 아닌 사람들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명예와 권력도 가지려고 한다. 명예는 가지려고 해서 가져지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니 부와 명예와 그에 따르는 권력 모두를 거머쥐려는 사람들은 채현국 선생님과 범려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범려조차도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는 없었다. 권력을 놓았을 때 부를 축적했고, 그 부의 쓰임새로 인해 명예를 얻을 수 있었을 뿐이다.    

 

P.S 개인적으로 범려가 부러운 건 그의 부나 명예나 권력보다도 민간설화에서 전하는 그와 서시의 이야기다. 

원래 서시는 범려가 미인계를 쓰기 위해 오나라 왕 부차에게 보낸 여인이었다. 경국지색이란 사자성어는 거기서 나온다. 결과적으로 계책을 성공시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를 떠날 때 범려는 오나라에 있던 서시를 구출해 함께 떠난다. 그리고 삼취삼산으로 부와 명예를 얻고 나서 은퇴한 후에 둘은 강호에 묻혀서 평생 함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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