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나 술자리에서의 두서없는 토막 잡썰(雜說) ⓻
현대인의 식탁에 없으면 섭섭한 김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에서 처음 김을 시식한 유래는 몇 가지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광양 태인도 시식설을 믿는다. 섬진강 하류 근처에 제철소가 세워지면서 지금은 광양과 육지로 연결되었지만 예전에는 태인도라는 섬(지금의 광양시 태인동)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김을 시식한 곳이다. 그 유래를 재구성하면 이렇다.
17세기 중엽 김여익이라는 사람이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에 항복하자 낙향해 태인도에 정착한다.
그가 처음에 어떤 경로로 김을 먹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개의 시작이 그렇듯 아마 우연한 기회에 바닷가에 햇볕에 말려져 있는 김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먹어보니 맛이 나름 괜찮다. 밥때가 되면 자꾸 생각난다. 필요는 혁신을 부르는 법이다. 계속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그러다 생산 방법을 알아냈을 것이다. 잉여는 교역을 낳는 법이다. 어느 날 생산한 물건을 가지고 제일 가까운 하동장에 가서 팔았다. 처음 보는 음식일 텐데도 꽤 팔린다. 다음 장에도 내다 팔았다. 그러다 어느 날은 사정이 생겨 장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자 이미 맛에 길들여진 하동 사람들이 아무리 찾아도, 그 물건을 팔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들이 찾는 음식의 이름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태인도의 김씨가 팔던 그것... 뭐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이름을 얻게 되는데, 김씨가 파는 것이라 해서 ‘김’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김은 한자로는 해의(海衣)라고 한다. 말 그대로 하면 ‘바다 옷’인 셈이다. 왠지 느낌이 좋은 이름이다. 지금도 전라남도 쪽에서는 해의(혹은 발음이 변형되어 ‘해우’라고 한다)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요즘은 광양김을 볼 수가 없다.
제철소 건설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누구는 완도김을, 누구는 광천김을 최고로 치지만, 나는 아직도 광양김을 최고로 친다. 그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내 부모는 한때 건어물 장사를 하셨다. 당연히 김도 팔았다. 그래서 어릴 때 나는 김을 무지하게 많이 먹고 자랐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어디 김이 제일 좋은 김이에요?” 어머니는 고민도 없이 말씀하셨다. “당연히 광양김이지!”
그 맛나던 광양김은 다 어디로 갔을까?
P.S 전남 광양은 관리되는 문화재가 있는 곳이면 거의 문화해설사 분들이 상주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경험상 모든 분들이 유독 친절하시고 박학하시고 성의가 있는 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