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_메릿(Merritt)에서 살기 ⑥
캐나다의 담뱃값은 한국보다 꽤 비싼 편이다.
그리고 똑같은 담배라 하더라도 가격이 동네와 가게마다 천차만별이다. 우선, 주마다 담배 가격이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마다 담배에 붙이는 세금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담뱃값 인상을 위해 하는 게 세금을 올리는 것이니, 그걸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같은 주라고 해서, 더 좁게는 같은 동네라고 해서 담뱃값이 동일한 게 아니다. 처음엔 그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담뱃값만큼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제주나 울릉도나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캐나다는 그렇지 않다. 파는 가게마다 다르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캐나다에 오래 산 지인에게 물어보니, 주 세금도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얼마에 팔 것인지는 담배를 파는 가게 주인이 정해서 그렇다고 했다.
메릿에 살면서 그걸 실감했다.
처음에는 당연하다는 듯 시내에 있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한 갑씩 사서 피웠다. 한 갑에 대략 우리 돈으로 9천 원 정도 했다(나는 가격 기준으로 2~3번째로 싼 담배를 사서 피웠다. 이마저도 당시 한국 담배보다 4배 정도 비쌌다). 어느 날 메릿에 일하러 온 한국 사람을 만나니, 시내 편의점보다 윗마을에 있는 부처샵(butcher shop)에서 파는 담뱃값이 더 싸다고 알려주었다. 메릿은 크게 보면 두 개의 마을로 나뉘어져 있다. 대부분의 관청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아랫마을)와 주로 원주민들이 농사짓고 사는 동네(윗마을)이다. 윗마을은 차를 타고 10여분 정도 올라가면 된다. 거기에 부처샵이 있는데, 거기서 담배를 팔았다. 시내보다 대략 갑당 천 원 정도 싸게 팔았다. 그걸 안 후로는 필요할 때면 차를 끌고 가서 한 보루씩 사다 놓고 피웠다.
담뱃값이 주마다, 가게마다 다르다는 걸 더 절실히 체험한 건, 캐나다 동부를 한 달 정도 여행할 때였다.
당시 경험을 토대로 보면, 대략 캐나다 서부(밴쿠버)보다는 동부(토론토)가 더 쌌다. 동부에서도 토론토보다는 오타와나 퀘벡이 더 쌌고, 캐나다에서 제일 싼 도시는 몬트리올이었다. 몬트리올에서는 동일한 담배가 대략 6천 원대면 살 수 있었다. 담배에 관한 한, 몬트리올에서는 운도 좋았다. 한국에서 출장 온 분들을 우연히 만났는데, 내일 귀국한다면서 남아있던 담배를 내게 모두 주고 떠났다. 담배를 안 피시는 분들은 그게 무슨 대수냐 하실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온 흡연자들에게는 꽤 반가운 일이다. 캐나다 현지 흡연자들에게도 담뱃값은 부담인 모양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마트의 넓은 주차장 한켠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주차장 반대편 도로 너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백인이 방향을 틀더니 내게로 곧장 달려왔다. 처음엔 설마 내게 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내 앞에 도착한 그 청년의 첫마디는 담배 하나 달라는 거였다.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고, 그런 경험이 처음이기도 하고, 한국식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흔쾌히 한 대를 건네주었다. 그는 밝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가던 길로 갔다. 문제는 그런 일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생겼다(나만 그런가?). 그에 따라 내 대응 방식도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주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먼 이국에 혼자 살고 있다 보니, 한국의 지인들이 가끔 소포를 보내주었다. 책이며, 김이나 김치며, 이런저런 것들을 보내주었다. 한 번은 담배 한 보루가 다른 물건들 속에 섞여 있었다. 들은 이야기로는 소포에 담배 같은 물건이 있으면 세관을 통과할 때 걸려 세금을 부과한다고 했는데, 무사통과하여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그 반가움이란~~~). 알아보니 소포를 보낼 때 내용물 종류를 다 적도록 되어 있는데, 적지 않으면 용케 안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지인이 소포를 보낸다기에 그 방법을 알려줬다. 어느 날 포스트맨이 방문했다. 소포 상자를 보여주더니 세금을 내라고 한다. 얼마나 내야 하냐고 물으니 우리 돈으로 30만원이 넘었다. 순간 고민했다. 지인이 4보루를 보냈다고 했으니,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돌고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맨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았다. 내가 잠시 고민하는 걸 보더니 그냥 상자를 들고 돌아가려고 했다. 상자 안에는 다른 물건들도 있었다. 나는 다급히 그를 붙잡아 세금을 냈다(포스트맨이 현장에서 바로 세금을 받아간다). 상자 겉면을 보니 보낸 이가 친절하게도 tobacco라고 써놓았다.
담배를 처음 피운 날을 기억한다.
대학 1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학교 앞 데모, 지랄탄이라고 불리는 최루탄이 길 위에서 발광하며 하얀 연기를 뿜어대던 그날, 연기를 피해 달아나 어느 길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최루탄이 처음은 아니었다. 매운 눈은 뜰 수조차 힘들었는데도 눈물과 콧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목이 따끔따끔 아파서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여자 선배가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우면 좀 참을 만하다고 했다. 여자 선배여서 그랬을까? 이런저런 고민할 겨를도 없이 냉큼 받아서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날 이후, 담배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에 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담배를 끊어보려 가끔 시도하지만, 시도는 늘 실패로 끝난다. 문득 궁금하다. 그 선배는 끊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