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받기 위해 한의원을 찾았다가 맥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바람에 그날부터 공식적인 마음 앓이를 호되게 하고 있다. 진료 중 맥을 짚어보시던 한의사 선생님께서 심장이 꽉 막혀 있다며, 내게 무슨 고민이 있냐 물으셨다. 그 순간 눈시울이 뜨겁게 차올랐는데, 차마 진료실에서 울 수 없어 꾹 참았으나 열심히 참았던 눈물은 침대에 누워 침을 맞으며 터져버리고 말았다. 선생님께서 침을 놓으시며 정말 성의껏 나를 위로해 주셨는데, 사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진 않았지만 누군가 나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그 사실에 가슴이 벅차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버렸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나는 천장을 바라보고 바른 자세로 누워 머리부터 발끝까지 침을 꽂은 상태였고, 팔을 움직일 수 없어 눈물을 닦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맥없이 흐르던 눈물은 귓바퀴를 가득 채우고도 멈추지 않아 베갯잇을 흠뻑 적셨다. 낯선 한의원 침대에 누워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던 그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깊은 한숨의 시작이었다.
내가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모험을 쫓는 사람이었다면, 상황이 좀 달랐을까? 내 앞에 놓인 현실이 자꾸만 나를 옥죄어 온다. 이게 다른 사람의 일이었다면, 아마 나도 좋은 경험일 테니 좋게 생각하라고 위로를 건넸을 텐데 이건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라서 도저히 좋게 생각을 할 수가 없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땅, 중국에 가서 사는 일이 내 앞에 성큼 다가오니 자꾸만 숨이 막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남편을 혼자 보내는 것도,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모두 함께 가는 것도, 그 어떤 선택도 내겐 쉬운 것이 아니라 속이 터질 것 같다. 내 마음이 온전히 바로 서야 아이들을 데리고 씩씩한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내 마음이 너무도 위태롭다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점이다. 어떻게 해야 힘이 날까…
일단은 내가 가장 잘하는 것, 회피를 시작했다. 이제는 진짜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준비를 해야 할 때인데 속이 터질 것 같으니 잠시만 일보 후퇴. 책으로 도망쳐 다른 세계를 살며, 잠시나마 나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러고도 나아지지 않는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좋아하는 꽃을 사고, 달디 단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나는 지독한 회피 전문가이지만, 나를 위로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 오늘도 이렇게, 성실하게 나를 위로한 하루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