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글을 쓰는 두 가지 큰 동기가 있다.
표현의 욕구와 소통의 욕구.
누구나 살아가면서 아무 이유 없이 어떤 감각이나 감정을 느낀다. 좋다, 별로다, 행복하다, 즐겁다, 서럽다, 속상하다 등등.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떠오르는 경험 몇 가지가 있을 거다.
이런 당연한 일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대답들이 나온다. 가끔은 유레카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대답을 굳이 글로 정리한다. 그냥 흘려버리기 아까우니까!
어느 여름날, 과식의 죄책감을 지우고자 몇 정류장을 걸어가고 있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을 지나 광화문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행복해졌다. 행복할 타이밍이 아닌데 느껴지는 이유 모를 행복에 의문이 들었다.
‘나 지금 왜 행복하지?’
이후 '걷기'와 관련한 책을 찾아보고, 계속해서 그 의미를 생각했다. 실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걷고 있는 내 모습에서 낭만을 느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걸을 때, 피부를 스치는 바람과 시시각각 변하는 시야. 청각, 촉각, 시각의 콜라보가 나를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꽤 만족스럽게 정리된 답은 꼭 글로 남겨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만 뭉텅이로 퉁쳐버린 생각이 명확해지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러한 표현의 욕구외에도 소통의 욕구가 함께 존재했다.
친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나와 달리 자신이 쓴 글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았다.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내 글을 유통시키는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만으로 만족해. 나는 이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냥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글을 쓰는 거야.”
진정한 아티스트가 이런 걸까? 남들이 꼭 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의미가 개인적인 간직에서 멈추지 않고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로 의미를 발견하고 기뻐하듯, 다른 누군가도 내 이야기로 같은 기쁨을 느꼈으면 한다. 대화를 나눈다는 말처럼 사람들과 의미를 나누고 싶은 마음속엔 소통의 욕구도 존재했다.
예전에는 두 욕구가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일차적으로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지만, 소통이 되려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조금 과장해서, 독불장군이 되거나 아니면 아첨꾼으로 남아있어야 될 것 같달까?
애초에 잘못된 접근이었다. 욕구에만 충실하려고 했으니 사고의 오류가 생긴 거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한다. (욕구가 있으니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기왕 쓰는 거 좋은 글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나를 표현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글 말이다.
그래서 오늘 그 목표에 도달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노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