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전을 갔다 왔다. 전시를 보러 간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그냥 여행이 그리웠다. 당일치기 일정이라 지도에 빽빽하게 표시해 둔 곳 중 꼭 해야 할 것만 추렸다.
1. 크루아상 맛집에서 점심 식사
2. 미술관 관람
3. 카페에서 까눌레 먹기
4. 뼈구이 맛집에서 저녁 식사
전시보다 먹으러 떠난 여행 같긴 한데... 원래 여행은 그런 거니까!
1시쯤 대전에 도착하고 곧장 크루아상 맛집으로 향했다. 가게에 가까워지니 향긋한 버터 풍미가 느껴졌고, 어떤 녀석을 혼내줄지 설레었다. 하지만 빵집에 도착했지만 웬걸? 'sold out'이란 안내와 함께 빵 매대가 휑했다. 아니, 오후 1시부터 솔드아웃은 아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빵 두 가지 중 그나마 맘에 드는 녀석을 하나 사서 미술관으로 향했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니 3시 30분쯤 되었다. 일단 저녁을 먹기로 한 뼈구이 집으로 갔다. 웨이팅이 길다고 하여 웨이팅을 걸어놓고 카페에 가서 디저트를 먹을 예정이었다. 지금까지 먹은 거라곤 빵 반쪽이 다여서 배가 무척 고팠지만 이런 게 여행의 묘미 아니 인가? 스스로를 다독이며 가게에 도착했지만 아까 겪었던 일이 또 일어났다.
아니 무슨 5시도 안 됐는데 재료가 소진돼요? 또 믿을 수 없어 일단 가게 문을 열었다. 직원 분께 확인 차 물었더니 저녁 웨이팅 대기가 꽉 차 더 이상 대기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연이은 계획 실패에 멘붕이 왔다. 우선 카페에 가서 허기를 채우기로 했다. 이쯤 되니 골라둔 카페도 불안했지만, 두 곳 중 하나는 열었겠지... 동생과 서로를 북돋우며 카페로 향했고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두 곳 모두 closed였다.
대전... 우리한테 왜 이래? 4 연속 겪은 방문 실패가 믿기지 않았지만, 짜증은 내지 않기로 했다. 그래... 원래 여행이 이런 거잖아. 어차피 배고픈 거 조금 더 배고프자며 각자 헤어져 가고 싶었던 곳을 갔다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 동생은 소품샵을 둘러본다고 했고, 나는 대전근현대사사진관으로 향했다.
지도를 보며 가고 있는데 마침 목적지 근처에 저장해 둔 까눌레 맛집이 있었다! 여행 동선 상 방문하기 어렵겠다 싶었는데 목적지에서 5분 거리...? 이건 가야지! 지도에 적힌 표시가 행운의 네잎클로버처럼 보였다.
사진관 구경을 끝내고 까눌레 집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매장 문을 봤지만 closed나 sold out이란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곳엔 그토록 찾았던 까눌레가 남아있었다.
까눌레와 휘낭시에 몇 개를 산 후, 근처 벤치에 서둘러 앉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까눌레를 한 입을 베어 물었더니 콰작- 소리와 함께 겉바속촉한 까눌레가 입안에서 느껴졌다.
마법의 까눌레인가? 지금까지 먹었던 까눌레 중에 가장 훌륭했고, 그때부터 여행이 잘 풀렸다. 다시 동생과 만나 대전 3대 닭볶음집이라는 곳에서 저녁을 거하게 먹었고, 서치를 하면서 봤던 초콜릿 전문 카페를 발견해 초코 젤라토로 입가심도 마쳤다.
모든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 행복한 미소와 함께 이번 여행을 돌아봤다. 따지고 보면 처음 계획과 전혀 다른 여행이었다.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삐끗했고, 4가지 목표 중 3개가 실패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다. 계획을 우회했을 때에 발견할 수 있는 행운 말이다.
그런데 그 행운은 내가 미리 만들어 둔 지도 리스트 덕에 가능했다. 이번 여행을 반전시켜 준 까눌레 집부터 닭볶음탕집, 초콜릿 카페 모두 지도에 저장해 뒀거나 서치 하면서 봤던 곳이었다. 만일 미리 알아보지 않았다면 이만큼 행운을 얻을 수 있었을까? 역시 행운은 준비하는 사람의 편이다.
사실 이 모든 건 여행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가능했을 수 있다. 일상에서 이 정도로 실패했다면 진작 화가 났을 테지만 '여행이니까' 하고 예상치 못한 많은 순간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적어도 썩소 정도...?) 여행은 그런 힘을 갖고 있다. 실패나 실수도 여행 안에서 웃음 포인트가 되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그 회복력을 매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여행 끝에 하는 다짐이 있다. 매일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보자고!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도 여행이다. 매일을 여행자로 살아가면 짜증이 나는 순간도 애써 웃어넘길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살다 보면 이 결심을 까먹게 된다는 건데.... 그럴 땐 다시 여행을 떠나면 된다.
인셉션의 꿈속의 꿈 같이, 여행 속 여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