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법칙들이 있다.
우산을 챙기면 비는 오지 않고, 급할수록 버스는 천천히 달리며, 안 하던 짓을 하면 꼭 사고가 난다.
법칙을 알면서도 매번 당하는 건 왜일까?
나는 10살 때부터 안경을 꼈다. 눈이 원체 나빠서 내 앞에 최애 티모시 샬라메가 지나가도 안경 없이는 알아보지 못할 거다. 평소라면 안경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지만, 가끔 이 점을 이용할 때가 있다. 러닝 할 때가 그렇다. 안경 없이 뛰면 초점이 사라지고, 오로지 땅과 내 걸음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 몰입감이 좋아서 러닝을 할 때엔 주로 안경을 벗고 뛰었고 가져간 안경은 주머니 속에 넣어놨다.
그런데 한 번은 허벅지 옆쪽에 고리가 달린 바지를 입었다. 평소처럼 안경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되는데 그날은 바지 고리에 안경을 끼워 넣었다. 안경다리가 꽤 기니까 고리에 안경을 걸어도 빠지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의 나를 제외한) 모두가 예상하듯 잘못된 생각이었다. 반 바퀴 정도 뛰었을까, 안경이 잘 있나 바지 옆을 확인해 보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안경이 사라졌다. 그전까지 러닝 중에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러닝에 너무 심취했나. 뭐가 떨어진 느낌은 없었는데...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400m 정도 되는 공원에서 안경을 찾아라.
안경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달렸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이라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아 핸드폰 후레시를 의존하게 되었다. 달리다 보니 문제 2가지가 발생했다. 첫 번째, 눈이 잘 안 보인다. 이 점이 좋아서 안경을 벗고 뛰었던 건데, 안경을 찾게 되니 이 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도 실눈을 뜨면 형태 정도는 보이는데 하필 또 안경이 투명색인 거다! 자체 보호색을 장착한 안경 덕에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악조건이 있었지만 계속 달렸다. 달리면서 찾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처음 한 바퀴를 뛰면서 안경 같은 물체가 여럿 있길래 확인해 보니 모두 돌부리였다. 안경 없이는 안경과 돌부리도 구분 못하는 게 내 상태였다. 한 바퀴를 돌아도 안경이 보이지 않자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다음 바퀴를 뛸 때부터는 다행히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 뛰기 시작한 지점과 안경이 사라진 지점을 계산하고 그 지점을 좀 더 샅샅이 찾기로 했다. 혹시 누군가가 안경을 발견하고 벤치에 올려뒀을 수도 있으니 벤치도 확인했다. 하지만 희망과 달리 안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느새 1.5km를 뛰었지만 안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목에서는 땀이 흘렀고 다리는 피로해졌다. 몸이 힘들어지니 꼭 찾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사라졌다. '일단 집에 가고, 내일 다른 안경을 끼고 다시 올까?' 공원 바닥에 떨어진 안경은 아무도 가져갈 거 같지 않았다. '어차피 안경 하나 더 있으니까 그냥 잃어버릴까?' 하지만 꽤 좋은 안경이라 막상 포기하기가 아까웠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한 바퀴만 더 돌기로 했다. 러닝 하다가 안경을 찾고 있는 이 상황이 그저 웃겼다.
처음에는 무작정 찾게 되지만 찾다 보면 점점 요령이 생긴다. 마지막 바퀴를 뛰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마침 옆에 어머니 두 분이 지나가셨다. 어머님들께 다가가 지나가다 안경을 보셨냐고 물었다. 그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 안경 우리가 저기 벤치 위에 올려놨어요."
순간 벙쩠다. 이런 우연이 다 있을 수 있나? 어떻게 여기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이분들이 마침내 옆을 지나갔고, 그 타이밍에 내가 물어볼 생각을 했을까? 서로 다른 두 톱니바퀴가 하나로 맞물리듯 모든 우연의 요소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안경을 찾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마치 하늘이 준 선물 같았다. 어머님들이 알려주신 곳으로 가자 눈이 보이지 않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벤치 위에 안경이 안전하게 올려져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모든 상황을 복기해 보자. 만약 평소처럼 안경을 주머니에 넣어두었으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랬다면 평소처럼 러닝을 했을 테고, 큰 고생도 하지 않았을 거다. 결국 안 하던 짓을 했기 때문에 안경을 잃어버렸고 고생 끝에 안경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안 하던 짓을 했기 때문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겼고, 이걸로 포기하고 싶을 때 한 번 더 해볼 만하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이야기꾼에게 이런 잼얘를 얻는다면 두 바퀴 뛴 수고는 별 거 아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사고가 난다는 법칙은 역시나 존재했다. 그렇지만 안경은 돌아왔고, 나는 그보다 더 소중한 이야기를 얻었다. 부모님께 칠칠맞다며 한 소리 들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우연의 순간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적당히) 사고 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