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다. 연속 삼일 약속이 있어도 끄떡없고, 여행에서 2만 보를 걸어도 다음 날 새벽부터 눈이 떠지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랬던 나인데... 이제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강제로 쉬어야 한다. 내 의지와 별개로 몸이 쉬라고 명령한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며칠 정도 일어나지 못할 만큼 아픈 식으로 호되게 갚아준다. 아픈 와중에 가만히 앉아있을 때면 불현듯 불안해진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데 이렇게 체력이 쓰레기 같아서 어떡하지? 나중에 체력이 안 돼서 아무것도 못하는 거 아니야?
어떡하긴 어떡해. 운동해야지! 취업하기 전 떨어진 체력을 올려보자는 마음으로 러닝을 시작했다. 러닝을 하기로 하긴 했는데... 어떻게 뛰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평생 워킹만 해봤지 러닝은 아주 먼 이야기였다. 우선 공원을 뛰었다. 걷는 옆 사람에게 추월당할 정도였는데도 10분 정도 뛰고 나니 숨이 찼다. 얼마나 뛰었으려나..? 워치를 확인했더니 딱 1km가 나왔다. 앞으로 이 정도 뛰면 적당하겠다. 숨이 차긴 해도 뛸만한 정도가 딱 1km 러닝이었다.
1km 러닝도 나름 여러 감정이 든다. 내가 달리는 곳은 살짝 경사져 있다. 한 바퀴를 기준으로 처음 반 바퀴는 살짝 올라가 있고, 나머지 반 바퀴가 되어서야 내리막 길이 나온다. 이런 이유로 처음 반 바퀴를 달릴 때는 잡생각이 많이 든다. 특히 평지에서 경사 진 곳이 나오면 다리가 무거워지고 그만 뛰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지점만 지나 내리막 길이 나오게 되면 뛰는 것이 수월해진다. 첫 바퀴를 뛰고 다시 오르막을 향할 때면 진짜로 위기가 찾아온다. 조금만 딴마음먹는다면 언제든 뛰기를 멈출 수 있다. 그때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여기만 지나면 된다고. 여기만 지나면 다시 숨 돌리는 순간이 오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보자고. 오르막이 끝날 때까지 만을 기다리며 계속 달려야 한다.
신기하게도 한참 달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얼마큼 뛰었고, 앞으로 얼마큼 더 뛰어야 하는지 잊고 뛰는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 발걸음이 가볍고, 뛰는 것이 신난다. 자석에 이끌리듯 공중에 올라간 발은 땅으로 착지하고 땅에 있는 발은 공중으로 향한다. 그 몰입의 순간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아쉽게도 이 몰입의 순간은 무한정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체력의 한계로 몰입이 깨지게 되면 자석처럼 이끌리던 다리에 다시 고통이 느껴지고 이제는 정신력과의 싸움이 된다.
처음 1km를 뛰었을 때가 거의 10분이었는데,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기록은 점점 단축되었다. 며칠이 지나 9분대 초반을 찍더니 2주가 지나고 나니 8분대 초반까지 당겨졌다. 현재는 7분대 진입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시간만 빨라진 건 아니다. 속도가 붙으니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도 늘어났다. 컨디션만 좋으면 한 번에 2km나 뛴다!
사실 나는 기록을 의식하며 뛰지 않는다. 뛰는 것에 큰 의의를 두기 때문에 기록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집 가는 길에 속도가 빨라져 있고, 더 많은 시간을 뛰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때면 신기하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꾸준히 1km를 뛴 것 밖에 없는데 달리는 시간이 쌓이면서 저절로 기록이 좋아진 거다. 만약 내가 첫날부터 마라톤 출전을 목표로 러닝을 시작했다면 그 목표에 압도되어 러닝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에만 집착하게 되어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서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1km만 뛰기로 했다. 42.195km 중에서 1km만 뛰기로 했고, 어느덧 2km까지 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 나는 꾸준한 것에 약했다. 빠르게 결승선에 다다르고 싶어 초반부터 전력을 다했다. 1만 하면 될 걸 3을 해버렸다. 단거리 경기를 할 때는 이 방법이 맞다. 명확한 기간이 있어 빠르게 내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일에는 보통 이상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마라톤처럼 결승선이 저 멀리 있을 때는 이 방법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초반부터 내 한계 이상의 스퍼트를 내면 결승선을 보기도 전에 지쳐 포기하게 된다. 이때는 오히려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장거리 경기가 힘든 이유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 기다리는 것보다 빨리 끝내버리는 게 더 편하고 쉽다. 하지만 인생의 큰 기회는 존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의 쓴맛을 몇 번 맛보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나는 한 번에 3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1만 한다. 대신 매일한다. 매일 1을 한다. 그 꾸준함의 힘을 믿고 당분간은 계속 1km를 목표로 뛸 예정이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면 마라톤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