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해보자는 당찬 결심은 디자인 툴 공부로 이어졌다. 마침 한 출판사의 책을 구매하면 출판사가 진행하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스터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았다. 오랜만에 내돈내산으로 책을 구매하고, 어도비 구독도 다시 시작하며 스터디에 참여할 준비를 마쳤다.
스터디 첫날, 포토샵의 기본적인 기능 20가지를 익혔다. 책이 떠먹여 주는 설명을 그대로 받아먹기만 하면 됐다. 책을 순조롭게 따라가던 중,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합성하는 실습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미지를 불러와 그라데이션 효과를 넣어야 하는데 그라데이션 방향이 자꾸 다르게 나왔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충 이것저것 만져본 끝에 그라데이션 순서를 잘못 설정해서 그런 거였다! 실습 하나 마쳤을 뿐인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도 결과물이 제법 그럴듯하게 나와 신기했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과정조차 재미있었다.
6주 만에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끝내는 과정이라 진도가 빠르게 나갔다. 한 번에 많은 양을 공부하다 보니 복습이 필수적이었다. (나름) 모범생처럼 실습을 몇 번씩 반복하고 이론도 정성껏 정리했다. 하지만 복습만으로는 실력을 기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습과 실전이 다르듯, 실습을 반복하는 것과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르다. 포토샵의 여러 기능을 익혀도 진짜 실력을 기르려면 내가 스스로 구상하고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포토샵을 꾸준히 사용할 수 있을까? 그때 매거진이 팍! 하고 떠올랐다. 원래부터 인스타그램 매거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올릴 콘텐츠가 없다는 핑계로 미뤄두기만 했다. 뭔가 매거진 하면 특정 분야에 조예가 있어야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관심 있는 분야는 많은데, 그것들을 덕후 수준으로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애매했다. 음악도 애매하고, 패션도 애매하고, f&b도 애매하고. 사실 지금도 예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달라진 건 매거진을 만들려는 목적 하나이다. 나는 매거진으로 성공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 매거진 만드는 과정을 통해 포토샵을 연습하고 싶다. (물론 성공하면 땡큐다!) 그렇게 내 일상을 콘텐츠로 매거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상 올리는 게 무슨 매거진이야? 많은 에디터 분들이 반발할 수 있지만, 콘텐츠를 큐레이션 하고 이를 일관된 톤 앤 매너로 전달하는 것이 매거진에 대한 나의 정의이다. 그렇다면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 생각, 취향을 큐레이션 해서 사람들에게 느낌 있게 보여주는 것도 매거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실험 정신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2월의 마지막 날,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2월을 돌아봤다. 별거 없다고 생각했던 일상에서도 의외의 아이템들이 나왔다. 그것들을 정리해서 '매거진스럽게' 편집했다. 나름 마감 기한도 정하고 서둘러 만들었다. 애초에 세상을 뒤바꿀 매거진을 만들겠다 목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괴로움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첫 번째 매거진이 완성되었고, 이제 올리기만 하면 됐다. 2025년 3월 7일.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게시하기'를 눌렀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걸 알아서인지 마음이 편안했다.
일단 매거진이라고 했지만 사람들도 이걸 매거진으로 볼지 확신이 없었다. 형식은 매거진 같은데 내용은 일상 블로그 같은 혼종이랄까? 뭐가 됐든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로 했다. 콘텐츠의 가치와 정체성은 결국 콘텐츠를 보는 이가 결정한다고 생각하기에,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이건 매거진이다 vs 블로그다> 하는 질문을 함께 올렸다. (4명이 참여하긴 했지만) 100% '매거진'이라고 답했다. 독자들이 만장일치로 매거진이라고 정해줬으니 매거진의 정체성을 갖게 된 거다.
정리하자면,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담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문제는 한 번 올리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 현재 3월 호를 작업 중인데, 전보다 나은 디자인을 하는 게 목표다. 그새 직업병(?)도 생겼는지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편집 디자인을 다시 한번 보게 되고, 패션 브랜드에서 만든 매거진도 읽어봤다.
하고 싶은 걸 하다가도 어떤 때는 지금 '쓸 때 없는 걸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든다. 최근 타일러 라쉬가 '한국이 굉장히 걱정된다'라고 말한 영상을 보았다. 타일러가 진로 강연을 자주 다니는데 강연 때마다 늘 나오는 질문이 '좋아하는 걸 찾는 방법'이라고 했다. 누구나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모를 수 있지만, 그걸 찾는 방법조차 모르는 게 충격적이라고 했다.
슬프지만 나도 그런 방법을 찾아본 적이 있다. 사실 내 경우 찾는 방법을 몰라서라기보다 확신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잘할 수 있고, 미래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외의 것을 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가치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꼭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하면서 즐거우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 아닐까? 스티브 잡스도 뜬금없이 캘리그래피를 배웠고 그것이 나중에 매킨토시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도 잡스처럼 언젠가 일하면서 매거진을 만들었던 경험을 사용하게 될 수도..?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음을 감사하고, 그 자체를 좀 더 즐겨보자!
(일단 매거진 완성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