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

by 해림

한 번은 애정하는 동생들을 만났다. 참 열심히 사는 동생들로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 각자 활동 반경이 달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만나며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그날도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모임이 그렇듯 어느 순간 각자의 연애사를 공유하게 되었다. (나만 그런가?) 내 차례가 되어 예전에 괜찮게 여긴 사람을 재회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예전과 달리 다시 만나보니 대화가 재미없더라, 별로더라.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 1이 내 아킬레스 건을 건드렸다.


"누나, 근데 누나 2년 사이에 에너지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야."


...?

내 에너지가 줄었다고?


나에겐 변함없는 모토가 있다. 열정. 에너지. 파이팅. 늘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에너지 있게 살아가 고픈 게 내 꿈이다. 그런 나에게 에너지가 줄었다는 말은 무방비한 상태에서 맞은 폭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동생의 폭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체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꼈냐고 물었더니,


"예전에는 누나가 통통 튀어서 같이 있으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거든? 근데 지금은 누나랑 더 친해져서 그럴 수 있는데 많이 차분해진 느낌이야."


나 혹시 노잼 된 거야? 나이가 들어도 통통 튀고, 유쾌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삶에 찌들어 현실에 익숙해진 사람이 되어 버렸나?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 말이 너무 깊게 박혀서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예전부터 별별 것에 관심이 많았다. 일단 재밌어 보인다? 그러면 시작했다. 그게 내게 어떤 성장을 가져다줄지, 어떤 도움을 줄지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분야를 접한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오랜 시간 이런 방식으로 살다 보니 내게는 늘 새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일을 전해줄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고, 그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또 새로운 걸 찾아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체감을 느끼고 콤플렉스가 생겼다.


나는 한 분야를 통달한 사람이 부럽다. 그 사람에겐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이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뾰쪽한 관점 말이다. 건축가는 공간과 건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회계사는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고, 디자이너는 색과 조형미로 세상을 파악한다. 나는 무엇으로 세상을 이해하지? 질문에 들어갈 무엇을 선뜻 말할 수 없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나만의 방식이 갖고 싶어졌다. 자연스럽게 시선의 폭을 좁혔고, '이야기'를 발견했다. 이제는 저 멀리까지 내다보던 관심의 폭을 반경 이야기로 줄여 여기만 파야한다.


삶에 새로운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는데 고민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보다 실패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새로운 걸 시도하면 실패할 확률이 낮다. 해보고 그만두면 그만이니까. 반면 하나를 깊이 파다 보면 실패가 많아진다. 나는 앞으로 뛰어난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텔러가 되어야지? 나는 스토리텔러로서 재능이 있나? 실력을 기르려면 무얼 해야 하지? 아니,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 거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어야 했다.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고 영역을 늘려가던 모습으로 살다가 넓이를 포기하고 깊이를 택하다 보니 예전과는 다른 방식에 적응해야 했다. 실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실패해도 그만둘 수 없고 될 때까지 해야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만든 영상의 조회수가 낮아도 또 만들어야 하고, 쓴 글에 아무런 댓글이 달리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언젠가는 반응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갖고 계속해보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르면 무엇이든 변한다. 나도 변했고 그게 디폴트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다움이란 걸 말할 수 있을까?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지점이 내가 겪은 혼란의 핵심이었다.


내가 참 애정하는 친구 두 명을 만났을 때 일이다. 우리는 일 년에 몇 번 서로에게 편지를 써준다. 십 년을 알다 보면 서로 통하는 게 있나? 가장 최근 이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에는 소름 돋게 같은 말이 적혀있었다.


시행착오를 겪을지언정, 그걸 양분 삼아 또다시 도전하는 사람.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그 일련의 과정에서 경험을 얻는 사람.


친구들은 내가 도전한 것에서 나를 발견하기보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자체로 나를 기억했다. 그 도전 정신을 내 가치이자 특별함으로 여겼다. 아무리 내 삶의 방식이 변한다 해도 나는 도전하는 사람이다. 그 도전 정신이 나를 작동시키고, 변하는 모습 속에서 나를 나로 완성시킨다.


나는 여전히 도전하는 사람이다. 예전만큼 다양한 분야를 시도하고 시작하지는 않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여러 길을 두드리고 있다. 스토리텔러가 되는 방법엔 정도가 없다. 라이선스를 얻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대기업을 들어가야만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로서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다양한 길을 가보는 수밖에 없다.


실패해도 도전하기. 그 정신 자체가 내 본질이다. 조금 느려서 돌아갈지라도 빠른 길보다 내가 좋아하는 길을 선택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고, 내가 가진 특별함이다. 예전만큼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를 주지 못할 수 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말을 건네고, 힘과 용기를 주려고 노력한다. 나와의 대화를 통해 상대가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기를 바란다.


방식은 바뀌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그걸 명심하며 마음껏 나답게 살자.

이전 07화당신은 인싸입니까 아싸입니까? 아니면 올라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