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싸입니까 아싸입니까? 아니면 올라운더?

by 해림

게임을 하다 보면 아이템이 필요하다. 아이템을 얻어야 경험치가 쌓여서 레벨이 올라가고, 능력치가 쌓여 궁극기 스킬을 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좀 더 나은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얻는 파밍이 필요하다. 파밍은 게임 세계에만 필요한 건 아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스스로의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파밍을 할 수 있다.


내 관찰에 의하면, 사람은 파밍 방식에 따라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인싸와 아싸, 둘을 아우르는 올라운더. 인싸는 자신이 가진 인맥과 사람들을 이끄는 힘으로 필요한 것을 얻는다. 적중률 100%인 시험 족보, 생일에 쏟아지는 기프티콘. 모두 인싸라면 갖게 되는 것들이다. 이들은 사람에게 쏟는 에너지를 높이는 방식으로 아이템을 얻는데, 실패 확률이 낮고 비교적 쉽게 레어템 획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아싸는 아이템을 얻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A to Z를 혼자서 해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모든 크레딧을 혼자 누릴 수 있다. 아예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은연중에 '인싸는 좋은 것, 아싸는 부정적인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 듯 보이지만 둘은 방법의 차이일 뿐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올라운더는 두 방식 모두를 활용하는 것이다.



나는 타고난 광대이다. 어릴 때부터 남을 웃기는데 진심이었다. 내가 조금 망가질지언정 누군가 그 모습으로 웃는다면 그걸로 행복했다. 피식이든 깔깔이든 상관없다. 그저 사람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면 미션 성공이었다. 한창 전성기 때는 친구들에게 장차 개그우먼이 되어 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십 대 때 나는 꽤 웃긴 사람이었다. 이러한 살신성인 정신(?) 덕에 내 주변에는 사람들이 꽤 모였다. 요즘엔 사회적 자아가 많이 성숙해져 예전만큼의 개그 퍼포먼스를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예전 버릇이 남아있는지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무리와 어울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나는 인싸이더에 가까울지 모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싸로 오해(?)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순도 100% 인싸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나는 아싸가 되기 쉬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남에게 큰 관심이 없다! 오해는 말아 달라. 사회성이 없거나 반인격성 뭐 그런 건 아니니. 그보다 나라는 사람은 관심사가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대학교 때 TCI라는 심리 검사를 했었다.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알아보는 검사인데, 내 기질은 '자극 추구' 최상, '위험 회피' 최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도파민 중독자란 뜻이다. 태어나길 도파민 중독자로 태어났으니 성인이 된 후부터 세상에 여러 도파민을 찾아다녔다. 대학교 1학년 때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튀어 갔다. 소설 안에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 얘기가 많은지. 예술병과 허세에 찌들어 망나니로 사는 주인공부터 말도 안 되는 억까로 사형 선거를 당한 주인공까지... 교과서 문학 시간에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가 쌓여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술자리 가거나 사람들과 친목하는 걸 시시하다고 여겼다. 사람들이랑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할 바에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 속 주인공과 소통하는 게 더 가치 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주인공과의 (내적인) 대화를 통해 내 안에 내공(?)이 꽤 많이 쌓였다. 이 사람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드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버스를 타거나, 산책을 할 때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부딪치며 내적 파도를 만들어냈다.


물론 사람들과 아예 단절한 건 아니다. 그때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잘 지냈다. 다만 깊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오는 인연, 가는 인연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마음 맞으면 잘 지내는 거고, 떠나겠다면 여기까지인 거고. 이런 이유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받을 건더기가 없었다. 오히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지의 영역처럼 사람으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주변 사람을 볼 때면 그들의 삶이 의아할 뿐이었다. 아마 나에게 몰입해 있어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이제 단절과 고독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엊그제까지 아무 문제없던 사람 만나기가 합법적으로 금지되었다. 가족 외에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이 어려워졌고, 디지털을 통해서만 연락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참 이상한 게 아무렇지 않다가도 하지 말라고 하면 하고 싶어진다. 원래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던 사람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과의 만남이 제한되자 내 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있는 지도 몰랐던 타인에 대한 관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몇 년 동안 묵혀둔 만남의 열정이 샘솟아 사람을 향해 관심의 화살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점차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자 게임 속 궁극기 상태처럼 사람을 폭발적으로 만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잘 지내...?" 같은 아련한 연락을 보내고, 새로 만난 사람들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소우주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은 각자 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 나와 비슷한 세계를 가진 사람도 있는가 하면 지구 반대편 남미에 거주하듯 나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도 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세상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 일인지 깨달았다. 소설 속 인물과 대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자극이자 배움이었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제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걸 위해 내가 찾은 아이템은 소통이다. 대신 소통의 방식이 단편적일 필요는 없다. 내면의 나와 소통하는 것도 나라는 사람을 깊이 알아간다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고, 외부의 세계와 소통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방식을 배우기 때문에 그 역시 도움이 된다. 요즘엔 스스로와 소통을 많이 하는 편이다. 새롭게 생긴 꿈을 이루기 위해 외부와의 소통을 줄이고 내공을 쌓고 있지만 얼른 쌓은 내공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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